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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다시 시작하는 마음은0이 아니라 1입니다축적된 시간 위에서 내딛는 첫걸음

: 박은경

겨울은 비우는 계절이 아니라,
다지는 계절이다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다. 고난을 맛보지 않으면 성공이 그리 반갑지 않을 것이다."- 앤 브래드스트리트(Anne Bradstreet)

거리마다 점멸하는 불빛들이 한 해의 끝을 알린다. 12월의 달력을 마주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마무리'를 생각한다. 무언가 끝나간다는 아쉬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채감, 그리고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어떤 시간의 매듭을 지을 때 '0(Zero)'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한다. 지나온 시간을 모두 뒤로하고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리셋 버튼을 누르면 초기화되는 게임이 아니다. 12월의 우리는 빈손이 아니다. 지난 열두 달, 치열하게 견디고 살아낸 시간의 두께만큼 우리는 더 단단해져 있다.

사라지지 않는 시간
0이 아니라 1에서 시작한다는 것

우리는 종종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하며 과거를 부정하려 한다. 하지만 진정한 희망은 내가 걸어온 길을 긍정하는 데서 싹튼다. 실수했던 순간도, 아파했던 기억도, 남몰래 흘린 땀방울도 사라지지 않고 당신이라는 사람 안에 '1'이라는 숫자로 오롯이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아니다. 당신이 일 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험의 토대 위다. 그렇기에 다가올 내일은 두렵지 않다.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어깨를 딛고 더 멀리 내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은 '0'이 아니라, 꽉 찬 '1'이다.

미래를 향한 태도
두려움 대신 기대를 품는 법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며,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헬렌 켈러(Helen Keller)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불확실하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을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으로 번역하는 힘은, 우리가 지나온 과거에서 나온다. 겨울나무가 앙상해 보여도 그 안에서는 다가올 봄을 위한 수액이 힘차게 돌고 있듯, 우리 안에도 내일을 위한 에너지가 이미 흐르고 있다. 무언가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그 힘을 믿으면 된다. 그 믿음이 있다면, 다가올 시간은 막막한 벽이 아니라 우리가 열어야 할 선물 상자가 된다.

나눔으로 완성되는
가장 따뜻한 축적

12월이 아름다운 이유는, 쌓아온 것을 혼자만 가지지 않고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 년 동안 쌓아온 것이 비단 지식이나 성과만은 아닐 것이다. 타인을 향한 이해,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 작은 배려의 마음들도 우리 안에 층층이 쌓여 있다. 나눔은 내가 가진 것을 덜어내는 뺄셈이 아니다. 내가 쌓아온 온기를 세상으로 흘려보내 더 큰 따뜻함으로 되돌려받는 덧셈이다. 나의 '1'과 당신의 '1'이 만나 더 큰 희망이 되는 기적. 그것이 우리가 이 겨울을 따뜻하게 건너는 방법이다.

두려움 없이
한 걸음 더

달력이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등을 맞대고 있다. 우리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계절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한 걸음 더 내딛자.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하고, 당신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으며, 당신의 곁에는 온기를 나눌 이웃이 있다. 축적된 시간 위에서,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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