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재미드림 여기 빛드림

시작을 위한 끝
인천 정서진

글. 이효정   사진. 한정선   영상. 최의인

끝이 있기에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기에 끝이 있음을 알기에 오늘 하루의 화룡점정을 이곳으로 정했다. 일렁이는 물결을 품은 정서진의 낙조는 모든 이의 수고를 감싸주듯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했다.

정서진, 너의 이름은

신인천빛드림본부에서 3km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정서진은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다. 이 장소가 정서진이란 이름을 얻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1년 인천시 서구는 경인 아라뱃길과 연계한 관광 인프라 확보를 위해 광화문에서 정서 방향 지점을 찾고 관광지로 조성했다. 왜 정서 방향일까. 이는 강릉의 정동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정동진(正東津)은 한양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는 포구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에 대한 대칭되는 개념으로 정서진(正西津)을 찾은 것이다. 위치는 2011년 3월 18일 서울 광화문 도로원표를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 경인 아라뱃길이 서해와 만나는 경인 아라뱃길 여객터미널 부근(북위 37도 34분 8초)으로 확인됐다. 인천시 서구는 이곳에서 정서진 좌표를 찾고 이 이름을 붙였다. 이런 연유로 생겨난 정서진은 매년 새해를 맞기 전 일몰 행사가 열리는 장소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정동진 이름의 유래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산재한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정동진은 정동촌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고려의 수도가 개경이니 당시에 굳이 한양을 기준으로 한 정동 방향을 표기할 이유가 없기에 정동진이란 이름의 유래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사상가 허목의 저서에 ‘화비령 남쪽에 정동(正東)이라는 곳이 있다. … 춘분에 동쪽을 바라보면 해가 정중앙에서 뜬다’고 서술했으니 한양의 정동 방향이기보다는 해가 뜨는 방향에 대한 표기가 한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화문에서 정동쪽은 동해시 어달동 대진마을 부근이라고 한다. 정동진 이름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면 정서진의 이름 역시 그 의미가 모호해진다. 하지만 이름의 의미보다는 서해 일몰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의 편리성이 우리와 같은 여행자에게는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서해의 모습을 한눈에

잘 정돈된 정서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높게 솟아 있는 경인 아라뱃길 아라타워다. 23층(지상 76m)인 아라타워는 정서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자 부두 통합 운영센터다. 1층 홍보관 아라리움에서는 운하의 역사, 바닷물과 민물에서 만나는 지점에 사는 기수어종 등 아라뱃길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설명해 놓은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홍보관과 카페 사이의 엘리베이터를 타면 23층 전망대로 다다르는데 올라가는 동안 유리창으로 서해의 모습이 얼핏얼핏 보여 전망대에서 펼쳐질 모습에 기대를 품게 했다. 꼭대기 층에서 서해가 보이는 유리창으로 향하니 영종도, 영종대교, 아라서해갑문, 강화도, 정서진 광장 등의 풍광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 사이로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들과 여객터미널이 만들어 낸 건축의 곡선, 정서진과 영종도 사이의 갯골이 만든 선들의 모습에서 절로 일몰 때 펼쳐질 모습에 기대하게 됐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노을종

전망대에서 눈길을 끌었던 아라빛섬으로 발길을 돌렸다. 인공섬인 아라빛섬은 긴축이 200m도 되지 않는 섬이다. 섬을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망대는 방문 당시 안전사고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게 공개된 수변무대만 걸을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풍력발전기와 전망대 나무덱, 초록의 갈대가 반사된 호수의 모습은 아쉬움을 달래주기 충분한 풍광이었다. 멀리서부터 보였던 흰색의 노을종이 뉘엿뉘엿한 햇살을 받아 호수에 반사되며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가로 21.1m, 높이 13.5m의 거대한 노을종은 서해의 밀물과 썰물이 만든 조약돌을 본떠 형상화했는데 구멍이 뚫린 내부는 새로운 출발을 테마로 정서진의 낙조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 모양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노을종이란 이름은 고(故) 이어령 선생이 붙였다. 그는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갖고 있는 노을에는 모순과 대립을 어우르는 긍정의 뜻이 담겨 있으며 외자로 줄이면 놀, 즉 놀다의 뜻으로 상징물에 놀이가 갖는 장난스러움을 담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을종의 뚫린 공간 사이로 지는 태양을 함께 담는 사진이 이곳의 대표적인 일몰 풍경이다. 월별로 태양이 지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노을종 앞의 노을전망대에는 월별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이 새겨져 있어 해당하는 월이 표기된 곳에 올라서면 노을종에 걸리는 서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노을종 옆의 사랑, 행복, 소망, 설렘, 우정, 낭만 6개 주제를 담은 노을벽에는 종이 매달려 있는데 다양한 글귀가 적혀 있다.

노을종 앞으로는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출발점이 있다. 이곳을 시작으로 부산 을숙도까지 633km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이어져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석이 있는 광장은 총 길이인 633km를 본떠 633광장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광장에는 국토종주 인증 수첩에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빨강 부스가 있으며 633km를 종주한 라이더는 아라타워 1층 안내데스크에서 자전거 종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붉게 피어나는 낙조

정서진에서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곳은 크게 네 군데다. 노을종, 정서진 광장, 아라타워 전망대, 영종대교를 바라보는 633광장이다. 어떤 곳을 선택해도 석양의 모습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하다. 방문한 날에는 태양이 마니산과 강화도 방향으로 떨어져 여객터미널 앞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미 여객터미널 앞 언덕 위로 연인이 자리를 잡고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과 얽혀 있는 사랑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정서진 인근인 인천 서구 시천동은 고려시대에는 장모루(長牟樓)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개경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젊은 선비가 장모루의 한 여관에 머물다 주인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 과거 시험에서 낙방한 후 다시 여관에 들른 선비는 집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남아 여관의 잔일을 맡으며 살게 되었다. 한편 돌아오지 않는 선비를 걱정하던 아버지와 형이 선비를 찾아 이곳에 도착했고, 그들은 선비의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가족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선비는 여관 주인의 딸과 장래를 약속하고 여관을 떠났다. 그리고 3년 후 장원급제를 하고 기다려 준 연인과 재회해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 이런 사연 덕인지 젊은 연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들이 점점 붉어졌다.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시각. 아름답게 붉어져 가는 석양이 너울을 따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깊은 들숨과 날숨 한번 뜨겁게 내쉬며 아름답게 펼쳐질 내일을 그리며 아름다운 오늘을 마무리했다.

info

갯골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면?

영종대교와 함께 갯골을 촬영하고 싶다면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는 때인 물때를 알아야 한다. 물때는 바다타임 홈페이지(www.badatime.com)나 국립해양조사원(www.khoa.go.kr)의 스마트 조석예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서진의 갯골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밀물이 썰물로 변하는 시간 또는 썰물에서 밀물로 변하는 시간을 파악하면 갯골에 흐르는 바닷물과 영종대교를 모두 촬영할 수 있다.

일몰 각도를 알고 싶다면?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지만 뜨고 지는 각도는 계절별로 달라진다. 사전에 일몰 각도를 안다면 일몰이 잘 보이는 방향을 쉽게 선점할 수 있다. 날짜별 일출, 일몰 시간과 방향은 히노데 홈페이지(hinode.pics/lang/ko-kr)나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astro.kasi.r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인 아라뱃길 아라타워
전망대·홍보관

전망대 : 6시~21시, 연중무휴
홍보관 : 9시 30분~17시 30분, 명절 당일·신정 휴관

www.kwater.or.kr/giwaterway/ara.do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