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 명사 태평
남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나, 투시력으로 사물의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보다 어려운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아닐까.
당신의 마음은 지금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귀 기울여보자.
명상 앱 ‘마보’ 를 운영하시고, 마음챙김 명상을 많은 이들께 알리고 계시죠. 처음 명상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조직 인사 컨설턴트로 오래 일했어요. 그런데 조직의 구조나 인사 제도를 바꿔도 조직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은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구글 엔지니어인 차드 멩 탄의 책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를 읽게 됐습니다. 제가 서울대 조직 심리학 박사 과정에 있을 때 ‘긍정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굉장히 핫했는데, 그 내용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책이었죠. 그래서 명상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차트 멩 탄을 접하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그를 직접 찾아가셨다고 들었어요. 본인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 뭐였는지 궁금합니다.
제 단점이자 장점인데, 저는 행동을 먼저 하는 편이에요. 그 무모함이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무모함은 상대도 받아줘야 일이 성사될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가 차트 멩 탄에게 당신의 명상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냈을 때, 흔쾌히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만나게 되었죠. 시간이 흐른 뒤에 차트 멩 탄 님과 더 친해졌을 때 들은 얘기로는, 자신의 책이 나오고 나서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메일을 보냈지만 실제로 자기를 찾아온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챙김 명상이 기존 명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기존의 명상이라는 게 뭘까요? 그런 표현보다는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명상’이 적합할 것 같아요. 첫째로 사람들이 명상에 대해 가지는 오해는 ‘명상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또 오해하는 부분은 명상을 수단으로 해서 몸 또는 상황의 변화를 만든다는 거요. 유튜브를 통해 명상과 관련된 콘텐츠를 찾아보면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든지, 자면서 들으면 무엇을 성취한다는 명상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마음챙김 명상에서 ‘마음챙김’이라는 말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뜻이에요. 이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게 명상인 거죠.
<KOSPO Family>에서도 지난여름, 명상 체험 클래스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4~5명이 함께 싱잉볼 소리를 들으며 명상했는데요. ‘명상’하면 흔히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집중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여럿이 함께하는 명상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혼자 하거나 여럿이 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요, 운동도 혼자 하는 사람과 여럿이 함께 하는 사람이 있듯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함께 운동할 때 옆에 있는 사람이 열심히 하면 어떤가요? 나도 열심히 하게 되죠. 명상도 운동이랑 똑같습니다.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독심술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는 일은 그보다 얻기 힘든 ‘초능력’인 것도 같습니다. 자신을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의 답이 명상의 핵심인데요. 명상을 통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첫째로, 몸의 감각을 아는 겁니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자기 몸의 감각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인데, 현대인들은 몸을 쓰기만 하지 돌보지 않다 보니 몸의 감각과 단절되어 있어요.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게 왜 중요하냐면, 생각은 과거와 미래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도 감각은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여기서부터 명상이 시작됩니다.
감각은 감정으로 이어지는데요. 감정이라는 건 신경과학에 따르면 ‘우리 몸의 감각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라고 해요.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빨개지면(감각), 화가 나는구나(감정) 하고 아는 거죠. 명상을 신비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요. 그저 이 순간 내 몸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명상이죠. 내 감정을 알아차리게 되면 어떤 상황에 대해 항상 내 주관대로 판단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마치 우리가 선글라스를 끼고 하늘을 보면서 하늘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생각하다가,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렇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알아차림의 경험이 깊어지면 그다음으로, 모든 건 다 지나간다는 걸 알게 돼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올여름 더위가 어느덧 잠잠해지고 가을이 온 것처럼요.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죠. 단순한 감각 이상의 감정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요. 명상은 이 상위 인지에 대한 연습이에요.
요즘 ‘도파민’이라는 말이 유행이죠. 디지털디톡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명상이 이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마음이 공허하거나 힘들 때 그런 마음을 회피하기 위해서 거기에 빠져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잖아요. 그러면 그냥 휴대폰을 열어 숏폼만 들여다보게 되고, 시간이 훌쩍 가 있죠. 명상은 그럴 때 회피하지 않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저도 가끔 숏폼에 빠질 때가 있는데요. 그러다 문득 알아차려요. ‘내가 또 이러고 있네!’ 하고요. 그 순간, 우리에겐 선택할 기회가 생겨요. 좀 더 보자 생각할 수도 있고 이제 그만 보고 얼른 자야지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 알아차림의 순간이, 명상을 하면 좀 더 빨리 올 거예요.
아마 독자분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아이들의 뇌에는 이러한 스마트폰 사용이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불안 세대》라는 책을 통해서 스마트폰과 SNS의 과도한 사용이 아이들의 뇌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얘기했어요. 만일 본인의 아이가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면, 아이들과 함께 명상하는 걸 추천합니다.
‘명상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는 후기를 종종 볼 수 있더라고요. 이런 분들이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가끔 명상 수업을 할 때 저에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이렇게 경험했는데 이게 맞나요?”, “이런 걸 느꼈는데 왜 그럴까요?” 하고요. 명상은 일인칭 경험이에요. 자기가 답을 알고 있어요. 그걸 저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스스로 다음번 명상을 통해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어떤 감정이 튀어나온 것인지 물어봐야 해요.
본인에게 명상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명상을 접한 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저는 명상이 제 삶을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예전과 다름없이 부족한 인간일 수도요. 명상은 그런 부족한 제가 온전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어요. 완벽한 것은 완벽하기에 더 나아질 여지가 없어요. 하지만 온전한 것은 달라요.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은 1학년대로 온전해요. 6학년은 6학년대로 온전하고요. 하지만 1학년이 성장해서 6학년이 될 수는 있잖아요. 어떤 여지가 있는 거죠.
구글 등 유명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정신 건강을 복지 요소로 고려해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그리고, 이러한 문화가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대부분 자기 생각에 갇혀 삽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생각이 조직에 뿌리박혀있으면 갈등의 원인이 돼요. 명상을 통해 나와의 소통도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소통 또한 가능해요. 그런 측면에서 명상이 조직의 생산성과 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 제가 구글 명상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한다고 했을 때 많은 기업이 관심을 보였지만, 명상을 휴식이나 이완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교육에 따로 시간을 낸다는 걸 어려워했어요. 연속되는 힘든 교육 사이에 끼워 넣는, 마치 격한 운동 사이에 잠깐 받는 마사지 같은 것으로 생각했죠. 명상은 마음의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에요. 1시간짜리 수업으로 명상을 알려달라는 것도 실은 무리죠. 헬스장에 가서 1시간짜리 PT를 받으면서 그 시간 내에 근육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PT 시간에는 운동법을 배우고, 그 이후에 내가 스스로 운동해야만 근육이 느는 거잖아요. 명상도 마찬가지예요.
최근 SBS가 만든 <내 마음 설명서>라는 다큐멘터리에 마보 팀이 함께했는데요. 실제로 7주 동안 마보 앱을 통해 명상한 사람들의 뇌가 유의미하게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어떤 자극이나 영향이 반복되면 뇌가 재조직을 통해 변화하는데 이를 ‘신경과소성’이라고 합니다. 명상을 통해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하루 20분 이상, 4주 이상 지속해야 해요. 이렇게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 있도록 회사의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하고, 조직 내에도 문화가 자리 잡아야겠죠.
<KOSPO Family> 독자들을 위해, 짬 나는 시간에 쉽게 명상하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아침에 회사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부팅될 때까지 기다리시죠? 그때 잠깐 동료와 수다를 떤다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죠. 이때 세 번만이라도 천천히 호흡하면서 자신을 알아차리면 어떨까요. 첫 호흡에는 내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어제 늦게 잤으면 눈이 뻑뻑하거나 몸이 무겁다고 느낄 겁니다. 두 번째 호흡에서는 내 기분이 어떤지 묻는 거예요. 나 오늘 약간 까칠하구나, 같은 거요. 마지막 호흡을 통해서는 앞선 호흡에서 생긴 나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오늘 까칠하니 말을 조심해야겠다’라는 결심이 설 거예요. 숨은 누구나 쉬잖아요. 별도의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니 잠시 그 세 번의 호흡을 통해 자신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해 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