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 찐 클래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지만,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말도 있다.
글씨체는 말을 담는 그릇이기에 멋진 필체의 글을 볼 때면 어쩐지 그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이번 호 찐 클래스는 캘리그래피 수업이다. 개성을 담은 글씨를 써낸 네 명의 남제주빛드림본부의 한림빛드림발전소 직원들.
그들이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번 호 찐 클래스에 참여한 이들은 남제주빛드림본부의 한림빛드림발전소 신입사원들. 김민수‧김민지‧이가희‧이주희 프로는 캘리그래피로 어떤 말을 쓸지 고민하며 도란도란 수업을 준비했다. 무슨 말을 쓸 거냐 묻는 동료의 말에 김민수 프로는 “도망쳐?”라고 농담을 던져 모두를 웃게 했다.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말이라면 어리석은 선택을 피하고 현명한 길로 가라는 조언이 제일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들에게 아름다운 글씨 쓰기를 알려줄 사람은 공방 호다부난의 김민정 강사다. 호다부난은 제주 사투리로 ‘하다 보니’라는 뜻이다. 제주가 좋아 자주 찾게 됐고, 어찌하다 보니 제주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늘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글씨를 잘 쓰는 방법을 알고 싶어 고민하지만, 사실 글씨 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개성이다. 그렇기에 창의력이 중요하다. 오늘의 참가자 중 가장 어린 김민지 프로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풋풋한 막내다. 어린 나이만큼 창의력이 뛰어나 잘할 수 있지 않겠냐는 부러움이 담긴 시선을 받기도 했는데, 학교에서 수행평가로 캘리그래피를 접해봤다고 한다. 창의력에 경험까지 더해져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일자로 된 짧은 선부터 긴 선까지를 흔들리지 않고 그리는 연습, 가는 선부터 두꺼운 선까지 일정하게 긋는 강약 조절을 익힌다. 이어 곡선을 그리며 리듬감을 배운다. 손목에 힘을 풀고, 글씨가 떨리지 않도록 손을 바닥에 잘 고정해야 한다. 생각보다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만큼 글씨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니, 캘리그래피가 마음을 수양하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다.
선 그리기, 단어 써보기, 문장 써보기의 순서로 한 단계씩 나아가며 수업이 진행됐다. 단어를 쓸 때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나 느낌을 잘 살리면 글씨의 맛이 한결 살아난다. 예를 들면, ‘봄’이라는 단어를 쓸 때 ‘ㅂ’을 꽃망울처럼 올망졸망하게 쓰고 ‘ㅗ’는 줄기와 이파리처럼 길게 늘이고, 아래 쓰이는 ‘ㅁ’은 화분처럼 쓰는 식이다. ‘웃음’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모음 ‘ㅜ’의 양 끝을 위로 올려 쓰면 미소 짓는 입 모양처럼 보이고, 반대로 ‘슬픔’이라는 단어를 쓸 때 ‘ㅡ’의 양 끝을 아래로 내려 그리면 풀죽은 입꼬리가 된다. 문장 내에서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크고 진하게 그리는 것도 하나의 팁.
다들 열심히 집중하고 있던 그때, 김민수 프로의 사수인 윤원진 프로가 커피포트를 들고 수업 장소에 나타났다. 김민수 프로에게 빚진 커피가 있다며, 그에게 아이스 커피 한 잔을 따라준 채 홀연히 사라진 그. 스윗한 커피프린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가 집중하느라 한껏 움츠러들었던 어깨의 긴장을 풀고 유쾌하게 웃기도 했다. 한림빛드림발전소 직원들 간의 돈독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글씨와 그림 그 중간쯤에 있는 캘리그래피는 창작의 영역에 가깝기에 본인만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의 참여자들도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진 만큼 어떤 작품을 완성할지 궁금했다. 참여자 중 가장 시원시원하게 글을 쓰던 사람은 이주희 프로. 글씨가 크고 추진력이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누군가가 나중에 높은 자리로 가실 분이라 그런 것 아니냐며 농담하자 “높은 곳? 한라산?”이라며 받아치는 모습까지, 그의 호쾌한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캘리그래피에는 정답이 없다.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 이 점은 인생과도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유독 나이가 있는 분들이 캘리그래피 수업을 많이 듣는다는 게 김민정 강사의 말이다. 인생의 굴곡을 겪은 사람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며.
본격적으로 각자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쓸 차례. 연습 종이가 아닌 빳빳한 도화지를 꺼내자 다들 ‘악’ 소리를 내며 사뭇 긴장한다.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신경 쓰는 듯했다. 오늘 만든 작품은 회사 책상에, 혹은 침대 옆 협탁에 두고 매일 볼 글이니까. 세 장의 종이를 줄 테니 원하는 문구를 여러 개 적어도 된다고 했지만, 다들 하나의 문구라도 완벽하게 적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어느새 연습 종이가 각자의 문구로 가득 채워졌다. 펜을 잡은 손에 잉크가 옮겨 묻을 만큼 집중해 연습한 이들. 연습도 좋지만, 용기 있게 실전에 도전하면 오히려 글씨가 더 잘 써질 수도 있다는 강사의 말에, 재단된 도화지 위에 각자 본인만의 글귀를 쓰기 시작한다.
일단, 종이의 가운데에 잘 맞춰 글씨를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들 한두 장씩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문구에 알록달록 압화까지 붙여 한 명씩 그림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나무 액자에 각자 만든 캘리그래피 작품을 넣으니 제법 근사하다. 찐 클래스 수업 소식을 들은 선배들이 기웃기웃, 이들을 구경하러 왔다. 짧은 시간 동안 배워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퀄리티에 다들 ‘엄지 척’을 날리며 칭찬이 일색이다.
김민수 프로는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로 ‘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문구를, 황금 막내 김민지 프로는 어린 나이임에도 삶을 통찰하는 문구인 ‘인생은 마라톤’을 써서 모두를 감탄하게 했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던 이가희 프로는 소소한 하루 속에서 행복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행복하게’라는 문구를 적었고, 이주희 프로는 평소 휴대폰 뒷면에 붙이고 다니는 스티커에 써진 문구인 ‘너는 앞으로 행복한 일만 남았어’를 적었다.
수업 내내 친근하게 대화하며 장난치던 이들이지만 막상 완성품을 보니 장난기는 온데간데없다. 한 시간 남짓 배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진 작품들이다. 글씨 옆에 붙은 색색의 꽃들이 이들의 작품을 더욱 빛내주었지만, 무엇보다 빛난 것은 과거의 자신에게 따스한 말을 전해주고픈 이들의 진심이었다. 한림빛드림발전소 신입사원 4인의 찬란한 미래를 기대해 본다.
김민수 프로
발전소가 조금은 삭막한 공간이기도 한데,
캘리그래피 수업을 통해 감성을 채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김민지 프로
힐링되는 시간이었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가희 프로
취업을 준비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데만 집중하느라 제 곁에 있는 행복을 놓쳤던 것 같아요.
오늘 캘리그래피 수업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주희 프로
하고 싶은 말을 고민하면서 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캘리그래피를 배울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렇게 배울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