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재미드림 여기 빛드림

버터처럼 부드럽게 빠져드는
맹방해수욕장

글. 이효정   사진. 한정선   영상. 최의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많은 강원도. 삼척 역시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해수욕장이 많다. 그중 2년 전부터 BTS 덕에 ‘핫’해진 장소가 맹방해수욕장이다.

여기가 BTS ‘Butter’ 촬영지?!

2년 전 뮤직비디오 공개 4일 만에 2억 뷰,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차트 1위, 빌보드 핫 100에서 통산 10주 1위를 달성한 곡. 이 부분만 소개해도 퍼뜩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을 것이다. BTS의 ‘Butter’다. “Smooth like butter Like a criminal undercover Gon’ pop like trouble Breakin’ into your heart like that.” 이 가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함께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바로 삼척. 갑자기 웬 삼척이냐 싶지만 대단한 기록을 세운 ‘Butter’ 앨범 재킷 표지 사진을 삼척의 맹방해수욕장에서 촬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고요했던 해수욕장이 삼척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여행지로 떠올랐다. BTS 팬클럽인 아미(ARMY)들은 그 현장을 찾았고, 삼척시는 발 빠르게 촬영 현장의 소품으로 쓰인 파라솔과 선베드, 비치발리볼 네트 등을 복원해 포토존을 마련했다. 그야말로 핫한 성지가 되었다.

사실 맹방해수욕장은 ‘BTS 성지’로 알려지기 전부터 삼척빛드림본부에 방문할 때마다 궁금했던 바다였다. 맹방이란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에서 오는 호기심. 이번 기회에 맹방해수욕장의 유래를 찾아봤다. 맹방은 매향 의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는 향나무를 잘라 제를 지내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묻는 의식이다. 향나무를 묻어 놓고 100여 년 후에 다시 꺼내 피우면 향이 좋아서 이를 부유층이나 관청에 진상했다고. 이런 매향들이 이 지역에서 많이 묻혀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매향을 한 곳이라는 매향방(埋香坊)이라 부르고, 맹방 주변 해안은 매향을 행한 바닷가라는 뜻에서 매향안(埋香岸) 혹은 매향맹방정(埋香孟芳汀)이라고 불렀단다. 이런 사연으로 맹방해수욕장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름의 호기심이 채워졌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날 차례다.

팬이 아니어도 좋다, 맹방해수욕장

동해는 뭐니 뭐니 해도 일출 최적의 장소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붉고 거대한 태양을 정면에서 보는 건 이곳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절경이다. 오전 4시 40분. BTS 관련 조형물 앞에서 일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어두웠던 수평선에서 푸른 기운이 서서히 퍼지더니 하늘에 보라, 노랑, 주황, 그리고 붉은색의 색상들이 조화롭게 흩뿌려졌다. 오전 5시 5분. 이윽고 동그랗게 바다를 뚫고 올라온 태양이 오메가 모양을 선명하게 그렸다. 어둠을 집어삼키는 태양의 위용을 그대로 느끼기에는 동해만 한 곳이 없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백사장에 그들의 이름 조형물과 함께 주황색의 강렬한 파라솔, 푸른 선베드, 그들이 뛰어놀았던 비치발리볼 네트, 심판의자, 서핑보드까지 BTS 촬영 현장의 모습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아침 부지런히 이곳에 달려온 듯한 BTS 팬들이 선베드에 눕고 앉고, 심판의자에 기대고 오르면 마음껏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금 놓여 있는 설치물은 2021년에는 당시 소품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해풍과 훼손 등 관리를 위해 지난해 파라솔 9개와 선베드 11개를 스테인리스 재질로 변경해 제작 설치했다. 그들이 눕고 즐긴 것은 아니지만 그런들 어떠랴. 팬이라면 그들의 ‘최애’가 왔다 간 장소를 공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지니.

조형물 뒤로 푸른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맹방해수욕장은 BTS 앨범 재킷 촬영지로 알려지기 전부터 캠핑족에게 유명한 장소였다. 캠핑하기 좋은 계절이면 바다에 맞닿아 있는 소나무 숲은 언제나 캠핑족들이 가득 들어찼다. 동해의 이런 숲을 해안림이라 하는데 지진해일, 조풍 같은 자연재해에서 마을을 보호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염분에 강하고 바닷바람에 강한 나무 중 소나뭇과의 곰솔(해솔)을 많이 심는다. 이곳 해안림에는 2km 정도의 잘 닦인 길이 있다. 캠핑장과 연결된 산책로로, 약 1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해변의 뜨거운 태양 열기를 피해 기분 좋게 걷기에도 적합하다. 캠핑족들 외에도 맹방해수욕장은 영화팬들에게도 특별한 곳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와 유지태가 바닷소리를 녹음하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 산을 만나다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다 위의 산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덕봉산을 만날 수 있다. 맹방해수욕장에서 덕봉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사이에 흐르는 마읍천을 외나무다리로 건너야 한다. 덕봉산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오를 수 없는 산이었다. 1986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경계 철책이 둘러쳐지고 군 초소와 벙커가 들어서며 출입이 금지된 것. 지난 2021년 53년 만에 개방하면서 삼척시는 해안생태탐방로를 설치해 숨겨져 왔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덕봉산은 본디 섬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덕산도(德山島)는 삼척부 남쪽 23리인 교가역 동쪽 바다 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여지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섬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육지와 확연하게 나눠진 섬이었던 것이다. 아마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파도가 싣고 온 모래가 점점 쌓여 섬과 육지가 연결되지 않았을까. 민물도 부지런히 내륙의 흙과 자갈들을 싣고 바다로 흘러가다 이 섬에 잠시 그것들을 내려놓고 바다로 흘러갔을 터다. 맹방해수욕장에서 덕봉산을 건너는 외나무다리 아래로 빠르게 흐르는 냇물을 보니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덕봉산은 두 개의 길로 나뉜다. 바다의 기암괴석을 볼 수 있는 626m의 해안탐방로와 대나무가 우거진 정상전망대로 이어진 317m의 탐방로다. 총 1km가 넘지 않아 1시간이면 여유롭게 모든 길을 둘러볼 수 있다. 맹방해수욕장의 전경을 보고 싶어 정상전망대로 먼저 향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대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설화가 하나 있다. 조선 중기에 덕봉산의 대나무가 밤마다 우는 소리를 내었다. 맹방리에 살던 홍견이란 인물이 신령에게 제사를 지낸 후 그 대나무를 찾았다. 찾은 대나무로 화살을 만들고 무과에 응시해 합격했다는 이야기. 또 그의 동생 홍학 역시 이 화살을 이용해 무과에 급제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의 자랑거리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대나무 사이의 나무 덱을 오르니 너른 정상이 나왔다. 색색의 햇빛 가리개는 정상에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충분하다. 정상에 서니 넓고 아름다운 모랫길이 10리에 걸쳐 이어졌다고 해 명사십리로 불리는 맹방해수욕장의 위용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정상을 기점으로 오른편에는 덕산해수욕장의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파노라마같이 펼쳐진 풍광을 뒤로하고 해안탐방로를 한 바퀴를 걸었다. 검은색 기암괴석의 독특한 모습은 파도와 어우러져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탐방로의 곳곳에는 옛 초소와 벙커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안탐방로를 쉬엄쉬엄 돌다 S자 모양의 외나무다리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덕산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모래사장 위 구불구불한 S자 형태의 외나무다리 때문에 사람들에게 포토존으로도 유명하기도 하다. 차로 이동하는 경우에 덕봉산을 오를 때 맹방해수욕장보다는 덕산해수욕장에서 이용해 보자. 너른 주차장과 맞닿은 덕산해수욕장에서는 S자 외나무다리와 덕봉산을 사진에 함께 담기 좋으며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걷는 걸음도 줄일 수 있다.

아래로 내려오는 이들에게는 강원도의 끝이자, 위로 올라오는 이들에게는 강원도의 시작점인 삼척의 맹방해수욕장. 숲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공기와 바다에서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를 벗 삼기 좋은 곳. 거기에 S자 외나무다리에서 촬영한 내 모습이 인생샷으로 장식할지도 모르는 이곳을 올여름 휴가 장소로 선정해 보는 건 어떨까?

TIP


맹방해수욕장에서
BTS 조형물 찾기

조형물은 맹방해수욕장 입구에서 하늘 높이 올라간 축구공 모양 타워 방향으로 가면 된다. 북쪽 거의 끝부분에 있다.




캠핑을 희망한다면, 맹방비치캠핑장

2019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캠핑장은 바닷가 옆 해안림에 있다. 캠핑 덱, 오토캠핑 공간, 독채 건물인 캠핑하우스까지 다양하게 형태로 갖춰져 원하는 방법의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차박도 매력적!

해수욕장 개장 기간인 7~8월에도 주차비가 없으며 다른 지역보다 주차장이 넓어서 차박하기 좋다. 방문객을 위해 화장실과 샤워실도 24시간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