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효정 사진. 한정선 영상. 최의인
울산 최초의 공공미술관인 울산시립미술관이 지난해 1월 문을 열었다. 미디어아트 중심의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한 울산시립미술관. 울산은 이를 통해 산업도시 이미지를 넘어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장소로 거듭나고자 한다.
SNS에 ‘핫플’이라고 검색하면 수만 개의 공간이 나온다. 공간 체험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요즘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공간이면 긴 줄을 마다치 않고 기다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핫한 공간을 찾아다닌다. 이런 공간 중에는 기존의 공간을 새롭게 해석해 재탄생시킨 곳이 많다. 전기를 공급하다가 영업을 중단한 영국 런던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탈바꿈되어 현재는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이라도 불리고 있다. 유럽 최대의 탄광이었던 독일의 졸페라인 탄광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원형을 유지하고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되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공간이 꽤 있다. 근대 개항기 건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인천아트플랫폼, 술샘박물관에 현대 미술을 도입해 주목받는 젊은달와이파크처럼 다양한 곳이 지역의 이색 장소로 떠올라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울산에도 이와 같은 공간이 생겼다. 바로 울산시립미술관이다. 산업도시로 알려진 울산에 예술을 접목한 공간인 울산시립미술관은 지역 정체성을 바탕으로 공공미술관의 역할을 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울산을 인식시키고 있다.
울산이라고 하면 산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의 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울산은 여유를 즐기는 관광의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장소다. 특히 바닷가가 아닌 울산 중심지는 여행지로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태화강이 재정비되고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십리대숲이 울산의 대표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더불어 KOSPO영남파워에서 10여km 떨어진 곳에 있는 울산시립미술관이 지난해 개관해 원도심의 주요 볼거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동안 울산은 시립미술관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였다.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오명을 딛고 2011년 건립이 결정된 이후 11년 만에 이룬 결실이 울산시립미술관이다. 울산시립미술관 바로 옆에는 조선시대 울산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동헌과 수령이 살던 살림집인 내아가 있고, 앞으로는 문화의 거리와 젊음의 거리가 이어진다. 울산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젊음이 한데 어우러진 장소에 미술관이 있는 것이다. 이런 미술관은 디지털 기반으로 한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다. 울산이 지닌 기술에 자연, 예술을 더해 문화예술과 산업이 어울리는 공간을 꿈꾸는 시발점이 되는 곳이 울산시립미술관이다. 이를 토대로 지역 특성을 살리면서 세계화를 나가기 위한 전시들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의 첫 소장품은 백남준의 <거북>이다. 166개의 TV 모니터로 이뤄진 대형 미디어 아트를 처음으로 선택한 것에서 미술관이 가고자 하는 방향,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그 때문일까?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지하 1층의 공공미술관 최초로 설치된 실감 매체예술(미디어아트) 전용관(XR랩, Extended Reality Lab)이다. 이곳은 VR, AR, MR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미디어아트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XR랩에 들어서니 그저 텅 빈 공간만 존재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인데 라는 생각이 든 무렵 음악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정면, 좌우, 바닥에서 영상들이 펼쳐진다. 방문 당시는 신윤복 화가의 <X 미인도>가 전시되고 있었다. <미인도>, <단오풍정>, <월하정인> 등 신윤복의 대표적인 그림 속 인물들이 하나둘 살아나 뛰고, 걷고, 그네를 타고, 목욕을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각특수효과 전문가, 사진가, 한복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서로 협력해 만들어간 이 작품을 보노라면 2차원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공간감, 시각 등이 깨어나 순간에 몰입되었다. 미술관 개관 당시에는 전자융합예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알도 탐벨리니의 유작인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원주민이다>가 상영되어 빛과 어둠이 연출된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두 번째 전시로는 까마귀의 시선으로 본 울산의 모습이 담긴 <오감도>가 상영되어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고 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미디어아트를 선보인 덕에 SNS 속 많은 이의 ‘인생사진’ 촬영 장소로 XR랩의 전시들이 업로드되고 있다.
XR랩을 지나 눈길을 끄는 공간은 지하 1층에서 지하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이다. 계단 외에도 미술관의 건축물 자체도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관은 처음과 끝 부분의 높이차가 15m 정도의 언덕에 지어졌는데 경사진 땅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디자인되었다. 지하 3층, 지상 2층으로 지어진 건물의 높이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기에 층수가 제안되었다. 울산동헌과 객사터(복원 예정) 두 문화재 사이에 지어져 문화재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설계되었고, 추후 객사터가 복원이 완료되면 동헌-미술관-객사터가 연결된 공원의 형태가 된다고 한다. 설계를 한 가가건축 측에서는 역사공간에서 세워진 특색을 살리면서 작품들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또한 미술관 층과 층 사이에 판 모양은 기와집의 처마형상으로 만들면서 열린 공간으로 구현했다. 이러한 점들이 높이 평가되어 2022 우수 디자인(Good Design) 상품 공간-환경디자인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빙그르르 도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제1·2전시장이 나온다. 가장 넓은 공간인 제1·2 전시실에서는 울산의 정체성인 산업과 예술을 접목해 협력한 사례를 소개하는 특별전 <예술과 산업>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 1월 29일까지 열린 전시에서는 자동차, 에너지화학, IT, 음악, 패션, 영화, 식음료 등 다양한 산업분야와 협업한 예술작품을 선보였다. 이제는 종결되었지만 또 2월 중순부터 또 다른 다양한 기획전이 예정되어 있다. 제3전시실은 1층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어린이 기획전 기획전시 <상상하는 정원>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 중 유일하게 유리창이 있는 제3전시실은 미술관 건너편의 동헌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현대와 과거가 만나는 묘한 느낌으로 만날 수 있다. 또한 미술분야의 잡지, 도록 등을 볼 수 있는 도서자료실이 1층에 있어 전시장을 돌며 힘들었던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술관에서는 전시와 연계된 이벤트, 교육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으니 홈페이지를 주시하고 기회가 된다면 방문해보길 권한다.
처음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생겨날 당시 비평가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들이 새로운 형식의 미술을 받아들였기에 현재의 현대미술관이라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미술관은 전시로 이야기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야심 찬 포부를 품고 시작한 공공의 미술관인 만큼 더 좋은 구성의 전시로 시민의 문화적 소양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전시관이 되길 바라본다.
다니엘 카노가_빌로우 Ⅲ_2020 1
‘오늘날 컬렉션은 무엇인가’라는 주제 아래 울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전시는 실시간 몰입형 설치작품에서부터 체험 기반의 인터렉티브 작품까지 소개하며 미술의 미래와 변화하는 수집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시간을 제시한다.
: 제1전시실
: 2023.2.16.~5.21.
김환기, 30-Ⅲ-68#6, 1968 2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명작이 전시된다. 193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80년이라는 세월을 아우르는 40여 명 거장의 명작 10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 제2전시실
: 2023.2.16.~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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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수의 무빙이미지 소장기관(DVB, ZKM, HAMACA 등)과 함께 1960년대 후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퍼포먼스, 전자음악 등 매체를 활용하는 실험 영상과 사회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상, 그리고 서사성을 여전히 품은 영상 작품을 볼 수 있다.
: 지하 2층 로비
: 2023.2.16.~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