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진우(문화칼럼니스트)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대회 1위에 오르고, 경매에서 수억 원대에 판매된다. 시와 소설을 쓰고 작곡을 하며, 무용 안무를 구성하고, 의상을 만들어 패션쇼에 올린다. 인간 고유의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졌던 예술에 손을 뻗은 AI. 이 ‘프로그램’들은 과연 ‘예술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여행>이라는 시의 한 구절로, 누구나 공감할 법한 세련된 정제미를 갖추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시를 쓴 작가가 AI라는 것. 카카오브레인이 개발한 AI 시인 ‘시아’는 학습한 시 1만 2,000여 편을 바탕으로 입력받은 주제어와 명령어에 맞춰 시를 짓는다. 작년 8월에는 이렇게 쓴 시 53편을 모은 시집 《시를 쓰는 이유》가 출간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AI의 그림이 미술대회 1위를 차지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작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제이슨 앨런은 현직 게임 기획자로, 그가 출품한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단 몇 줄의 설명문을 입력하면 이를 이미지로 변환시켜 주는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그는 작품 출품 때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주최 측에 알렸으며, 주최 측도 해당 부문 규정에 인공지능 활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며 심사 결과를 그대로 확정했다.
그런가 하면 현대백화점에는 지난 3월 2일 AI 카피라이터 ‘루이스’가 ‘입사’했다. 백화점이 지난 3년간 사용한 광고 카피 데이터 1만여 건을 집중 학습한 끝에 본사 커뮤니케이션팀 선임이라는 어엿한 직책을 받은 루이스는 직원들이 입력한 제품과 테마‧키워드‧시즌에 맞춰 단 몇 초 만에 카피라이팅 문구를 제안한다. 덕분에 외부 카피라이터와의 협업 시 2주 내외가 소요되던 1차 카피 도출 과정이 평균 3~4시간으로 크게 줄었다는 것이 백화점 측의 설명이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국을 펼치던 2016년까지만 해도 화가‧사진작가‧작가‧성악가 등 예술 계통 직업은 자동화 대체율이 낮은 직업 순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의 대대적인 투자로 AI 기술이 급격하게 고도화된 오늘날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글‧그림‧작곡‧안무‧패션‧웹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AI의 기술이 속속 침투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지금은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방‧변형한 작품을 내놓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조만간 인간만이 갖고 있다고 믿었던 창조성까지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목소리도 상당히 높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AI가 만든 작품을 창작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탄생한 작품은 창작물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저작권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한편 저작권의 주체를 AI 그 자체로 봐야 할지, AI 개발자로 정해야 할지, 아니면 AI를 작동시켜서 작품을 만든 사람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격론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AI가 만든 작품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오래 지나지 않아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