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하루드림 남부 Dream인

전원개발처 함형봉 처장

내딛는 걸음걸음 신중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글. 이효정   사진. 이승헌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용감하게 첫걸음을 떼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간다. 때로는 내리막길로, 때로는 오르막길로 걷다가 뒤돌아보면 누군가가 내가 그린 발자국을 따라오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잘못된 길로 안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함형봉 처장. 그의 걸음은 마치 미로를 빠져나오도록 돕는 아리아드네의 빨간 실과 같을지 모른다.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11월 전원개발처장으로 부임한 함형봉입니다. 1989년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 보령, 인천 등지에서 화력·복합발전에 관련한 건설, 운영을 경험했습니다. 2001년에는 에너지 전문 교육기관인 한국발전교육원(현, 한국발전인재개발원)에서 복합발전운영 교수로 2년간 근무하다 전국의 빛드림본부와 본사 발전처에서 복합화력 기계부, 계획예방정비 총괄, 시운전, 수소융합, 신재생 등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어떤 철학을 품고 전원개발처를 이끌어 가고 싶으신가요?

전원개발처는 신재생을 제외한 전통적인 화력발전에 대한 건설을 계획하고 총괄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한국남부발전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새로운 사업이 개발, 창출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결정이 잘못된 방향이라면 회사를 일순간 위기 상황으로 내몰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더불어 없던 길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기에 수동적이거나 피동적인 자세보다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이 생각은 전원개발처의 모든 구성원이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전원개발처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업무를 떠나 평소 꼭 지키는 소신이나 철칙이 있나요?

김구 선생의 <恐誤後來者(공오후래자)>라는 시를 가슴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선구자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토로한 시인데요, 제목인 ‘공오후래자’는 ‘나를 뒤따르는 자가 그르칠까 두렵다’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잘못된 길을 가면 저를 따라오는 후배들 역시 잘못된 방향으로 갑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늘 신중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도 늘 품고 있는 말입니다.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풀리지는 않겠지만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말을 믿어요. 큰일을 앞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 이 생각을 평소에도 품고 산다면 우리는 매 순간순간에 정성을 쏟을 수 있겠지요.

사무실 입구에 적힌 ‘더 나은 미래 에너지원을 향해 New Energy Pathfinder’란 글이 눈에 띕니다.

현재 국가 정책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이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는 화력발전은 폐지하고, 이산화탄소가 덜 발생하는 LNG복합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에 발맞춰 한국남부발전은 LNG복합 건설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LNG복합만이 탄소중립을 위한 미래 에너지원인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의문점이 남아 있습니다. 수력, 양수,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여러 가지 에너지원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한국남부발전은 화력발전에 특화되었지만 이를 넘은 미래 에너지원 발굴도 지속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원개발처의 슬로건을 ‘더 나은 미래 에너지원을 향해 New Energy Pathfinder’로 설정했습니다.

전력분야에 몸담은 지 35년이 되셨는데 기억에 남는 일도 많으시죠?

워낙 많은 일을 겪어 다양한 경험이 떠오르네요. 기쁜 순간은 승진했을 때죠(웃음). 돌이켜보면 35년 동안 모든 순간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공기업은 작은 실수에도 지탄의 화살이 날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죠. 그러다 보니 긴장하며 직장 생활에 임한 것 같아요. 현재 떠오르는 일은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한 경험입니다. 당시 현업으로 돌아가면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12권 정도의 원서를 번역하고 교재도 집필했죠. 당시에 가르친 신입사원 중에 최근 1직급 처장으로 승진한 사람이 있어요. 뿌듯한 일이죠. 그래서인지 이 시기의 경험이 참 보람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일은 없으세요?

본사에서 차장으로 일했던 40대 시기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밤 11시 정도 퇴근이 일상이었습니다. 한 8~9년 동안 그런 생활을 했죠. 지금의 근무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에요(웃음).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을 지나면서부터는 가족 앨범에 제 사진이 없더군요. 집사람은 힘들어하고 서운해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청춘을 다 바쳤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빠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뒤처지지 않게 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전력거래부장으로 근무할 때는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어요. 국제유가는 상승하고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아 적자 경영이 계속되었죠. 그러면서 한전과 전력그룹사 간에 정산조정계수가 도입되었죠. 그 과정에서 한전과 치열하게 논리 싸움을 했던 경험도 잊을 수 없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자랑스러웠던 일로 떠오른 건 있으세요?

하나를 꼽는다면 2020년 남제주에서 시운전실장으로 근무했을 때의 경험입니다. 건설 중 시운전 기간이 5개월 남짓이었죠. 제주도가 섬이라 연계선은 있지만 전력계통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낮 동안은 시운전이 불가능해 저녁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만 시운전이 가능했습니다. 직원들과 거의 매일 밤을 지새워가며 일해, 적기 준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의 전력계통에 기여한 이 일이 자부심을 느낀 일입니다.

35년간 근무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한전에 입사할 당시 중앙연수원의 슬로건은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 교육을 받으면서 공기업에서 일한다는 자긍심을 키웠죠. 국민에게 전기 요금 인상이라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러나 최근 세대들은 이러한 기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졌죠. 일한 만큼의 적정한 보상과 여가를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세대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남부발전이란 큰 배에서 승선했다면 함께 힘을 합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지닌 뛰어난 논리력을 바탕으로 끈기와 지속성을 가지고 일에 임해주길 기대합니다.

전원개발처 수장으로서 부서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우리 전원개발처 부서원들은 모두 고급 기술자들입니다. 자기 능력을 발휘하며 업무를 수행할 때 창의적인 발상을 많이 기대합니다. 자기 생각과 철학을 담아 다양한 실행 방안도 함께 고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기 역량 강화에도 힘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방안이 있을까요?

저도 신입사원 때 처음 맡은 과제를 받곤 했었어요.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의 업무는 주로 현장과 개념적 설계로 나뉩니다. 현장 업무의 해답은 현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장의 설비를 확인하거나 현장 근무자들과 대화를 통해 개선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할 때는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창조했기 때문이죠. 이는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막막할 때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빠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면 방향을 설정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대한건설협회, 한국발전인재개발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참여해 볼 것을 권합니다.

2023년이 저물어갑니다.
올 한 해는 어떤 해였나요?

전원개발처에 발령받기 전에는 신재생처장으로 1년간 근무해 2023년은 주로 신재생에 관련된 업무에 중점을 둔 한 해였습니다. 전원개발처에 발령받은 날, 진행 중이던 전남 나주호, 경기 탄도호 수상태양광사업을 수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일이 진행되어 웃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남제주복합 배터리를 활용한 시스템인 장주기배터리저장장치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사업자로 한국남부발전이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나름 선방한 해였다고 평가합니다.

올 한 해 고생한 자신을 위해 스스로에게 전하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요?

선물에 제한이 없다면, 딱 2주 동안 마음 편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히 즐길 수 있는 휴가를요. 휴가지는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다녀왔던 곳에 다시 가는 것도 좋겠네요.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집니다(웃음).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해도 좋겠어요. 동남아 여행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유럽은 아직 함께 가보지 못했거든요. 예전에 다녀온 체코 프라하가 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이곳을 아내와 함께 다시 방문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공기업이 방만한 경영을 하는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35년 동안 정말 열심히 근무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는데, 이런 보도를 보면 제 노력이 무너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두 명의 일탈을 전체 공기업 직원의 문제로 일반화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공기업 직원들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며,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남부발전 직원들은 언제나 자기 성찰을 통해 방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을 해주세요.

직장생활을 10부 능선으로 나눈다면 전 이제 9부 능선까지 올라왔습니다. 이제 하산을 준비할 때이죠. 동기들이나 제 전임자들이 하산할 때가 되면 허무하고 허탈한 생각이 든다고 말하더군요. 저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러나 쉼 없이 전진하며 달려가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후배들에게 하나의 성과물을 남겨줄 수 있겠지요. 앞서 이야기한 듯 ‘恐誤後來者(공오후래자)’라는 말처럼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바른길을 안내해 주는 선배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