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재미드림 여기 빛드림

안동의 낮과 밤
정겨움과 그리움이 가득하더라
신세동 벽화마을 & 월영교

글. 이효정   사진. 한정선   영상. 최의인

터벅터벅 안동을 거닌다. 정겨운 벽화마을을 둘러보고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월영교를 바라본다. 그곳엔 그리움이, 애틋함이, 정겨움이 그득하다.

정감 어린 벽화를 만나는 길, 신세동 벽화마을

2000년대 들어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마을에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쇠퇴한 지역에 벽화를 그려 환경을 정비하고 관광객의 방문을 유도하여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09년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이 탄생했다. 신세동 벽화마을은 안동찜닭골목과 안동갈비골목이 있는 안동 시내인 운흥동 바로 옆의 작은 동네다. 영남산 중턱의 달동네였던 마을은 벽화로 인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도시재생 활동가들이 자리 잡았으며, 새로운 벽화와 전망대가 설치되고 마을에 활기를 더했다.

신세동 벽화마을로 가는 길에 제일 처음 본 벽화는 거대한 고등어다. 실감 나게 그려진 이 벽화를 시작으로 집과 조화를 이룬 벽화가 나타났다. 멋스러운 기와지붕이 있는 집의 황토 벽면에는 누런 소가 사는 외양간이, 담장 너머로 커다란 가지를 뻗은 나무가 있는 집의 벽에는 아이와 강아지가 자작나무 사이로 신이 나게 눈썰매를 타고 있다. 어떤 벽면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물을 긷기 위해 우물로 향한다. 신세동 옆 법흥동의 해동사 주변을 걷다 3층 건물 벽면 전체를 차지한 거대한 꽃 사이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벽화가 보였다. 본격적인 신세동 벽화마을의 탐방이 시작됐다.

벽화 탐방의 출발점은 동부초등학교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유명한 로얄독(Royyal Dog)이 그린 그라피티 벽화가 이곳에 있다. 로얄독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심찬양 씨는 미국에서 힙합 문화와 한국적 정서를 조화롭게 표현해 주목받는 작가다. 한복 입은 미셸 오바마 여사, 색동저고리를 입은 흑인 여자아이 등 외국인 여성과 한복을 조합한 모습이 그의 대표적인 그라피티다. 2019년에 그가 동부초등학교에 그린 그림인 ‘한복 입은 흑인아이, 벨라’ 역시 그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보여 준다. 거대한 벽화를 시작으로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벽화 찾기를 시작했다. 로얄독 작품의 반대 벽면에는 동네 주민의 얼굴이 있다. ‘일상 2009’라는 벽화 속에는 할머니와 손주들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그 옆으로 벽화가 그려진 지 7년이 지나 훌쩍 커버린 손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명의 손주에서 어느덧 손주가 한 명이 늘어난 모습이었다. 또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이 아이들은 훌쩍 자라나 성인이 되었겠지.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낡았지만 정감 어린 그림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나팔꽃, 다람쥐, 동네 멋쟁이 아저씨, 오줌 누는 개, 바닥에서 피어난 이름 모를 꽃 그리고 중간마다 나타난 토끼 조형물…. 벽화와 토끼 조형물을 따라 이곳저곳을 누비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헉헉대는 숨을 고르고 있으니 전망대에 앉아 있던 동네 어르신들이 “힘들어서 우야꼬”, “우리같이 늙은이도 맨날 왔다리 갔다리하는데 와 그리 힘들어 하노”라며 말을 건넸다. 평생을 이곳에서 사셨다는 어르신은 동부초등학교를 다녀 어린 시절부터 오르막길을 오르락내리락했다고. 천천히 걷다 보면 적응이 된다고. 전망대에 앉아 숨을 고르라고 하셨다. 느지막한 오후, 바람을 맞으며 일과를 마무리하신다는 어르신. 이방인이 어색할 법도 하건만 두런두런 어린 시절 이야기는 전해주셨다.

이곳은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곱게 가꾼 화분에서 피어난 꽃들과 객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는 이들.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달그락거리며 요리하는 소리…. 그림 찾는 재미가 더해진 이곳의 기분 좋은 산책을 끝내고 월영교로 발길을 돌렸다.

무덤 속 편지 한 장

신세동 벽화마을의 인근에 있는 월영교는 길이 387m, 너비 3.6m의 국내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다. 다리는 2003년에 만들어져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나무와 다리 중앙의 팔각정인 월영정 덕에 예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월영교는 한 장의 편지 덕분에 세워졌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1998년 안동 정상동 택지개발 현장에서 남자 유골과 여러 통의 편지가 발견됐다. 대부분 글을 알아보기 어려웠는데 유일하게 한 통의 편지만이 읽을 수 있었다. 유골 주인의 부인인 원이 엄마가 쓴 거로 추정되는 편지.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어린 자식과 배 속에 아이를 품은 몸으로 남겨진 부인의 편지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한지 위에 먹먹하게 쓰여 있었다.

400여 년간 땅속에 묻힌 편지와 함께 많은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그중 눈에 띈 것이 한지로 쌓인 한 켤레의 미투리다. 미투리는 삼이나 모시를 꼬아 만든 신발이라 대부분 황토색을 띠는데 이 미투리는 군데군데 검은색이 섞여 있었다. 이 검은색의 정체는 미투리를 감싸고 있던 한지의 글로 인해 밝혀졌다. 훼손이 심한 한지 속 글 중 ‘내 머리 버혀…’, ‘이 신 신어 보지…’라고 희미하게 남은 글자로 검은색이 바로 원이 엄마의 머리카락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병이 낫기를 바라며 자기 머리카락을 미투리로 만든 것이다. 이런 사연 속 부부의 사랑을 기리며 안동댐 아래로 흐르는 물 위로 월영교가 개통되었다. 다리 중간에 있는 월영정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전망대가 사연 속 미투리 모양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원이 엄마의 편지와 무덤에서 발굴된 부장품들은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초승달 배 띄워 무릉도원을 만난 월영교

월영교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히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나 해 질 녘 야경이 매력적이다. 물안개는 봄과 늦가을, 초겨울에 볼 수 있는데 낙동강을 감싸는 산세와 다리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이외에도 봄의 벚꽃철, 가을의 단풍철, 눈 내리는 겨울철의 모습도 아름다워 계절별로 많은 이가 찾는다. 이번 방문은 야경을 목표로 방문한 거라 아쉽지만 다른 풍광들은 다시금 이곳을 방문할 기회로 남겨 두었다.

월영교는 안동민속촌이나 월영공원을 통해 걸을 수 있다. 어느 방향에서 걸어도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기 충분했다. 삐거덕거리는 월영교 위에서 이곳저곳 야경을 바라보고 월영교 옆 수변 ‘원이 엄마 테마길’을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강 한 가운데에서 “에헤라~” “좋다.” “여가 천국이여. 좋오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loT 기술을 접목한 초승달 모양의 전동보트인 ‘문보트’에 탑승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트로트 노랫가락도 신나게 들려왔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누군가 “어마이가 좋은가봅니더”라며 말을 전했다. 문보트에 탄 사람들의 일행이었다. 90살이 넘은 노모가 몇 년 만에 아들, 딸이 만나 신명이 났단다. 기분 좋게 살랑이며 불어오는 밤바람과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이 옆에 있으니 이곳이 천국이란다. 천천히 깊어져 가는 어둠 사이로 유유히 흘러가는 물길을 가르며 뭉그적뭉그적 들어오는 문보트를 바라보자니 원이 엄마 사연이 떠올랐다. 몇 해 만에 만난 이들이 이리도 반가워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고 하는데 영영 만나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버린 임이 보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애끓었을까. 그 그리운 마음의 깊이를 알 수는 없지만 이 풍경을 그리움으로 대신 짐작해 본다. 강물에 떠오른 아련한 달과 불빛이 영롱한 월영교 모습을 앞으로 밀려올 그리움 하나로 품어본다. 애틋한 월영교의 사연과 함께.

TIP


색다른 월영교를 촬영하고 싶다면!

안동댐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안동루 인근으로 가면 영락교, 월영교, 영가대교 등과 건너편의 산세까지 모두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단, 거리가 멀어 반드시 400mm 이상의 망원렌즈가 필요하다. 날씨가 좋은 해 질 녘에 방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