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효정 참고. 《Z세대 트렌드 2030》
개인을 중심에 두는 문화는 꾸준히 퍼져나가고 있다. 자신의 삶을 위한 투자를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다면 고가의 제품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가실비라는 ‘가격 대비 실사용 비용’의 줄임말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일상에서 사용 빈도가 높고 충분한 효용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제품을 소비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즉, 선뜻 구매하기에는 가격이 높지만 일상을 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거나 미래 삶의 발전시키는 정도,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만족 등을 고려한 미래지향적 소비가 바로 가실비다. 만약 사용하다가 싫증이 나면 가실비 제품들은 중고거래로 팔아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기존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가심비(가격대비 심리적 만족감)가 가격, 심리에 만족했다면 가실비는 이를 뛰어 넘은 소비 형태라 할 수 있다.
가실비는 ‘갓생’살기라는 인식과 연결이 된다. 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生)’의 합성어인 갓생은 좋은 습관을 쌓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를 추구하는 이런 생활 속에서 가실비는 현재를 더 잘 살기 위한 투자소비라고 볼 수 있다. 지갑은 얇지만 취향은 확실하기에 자신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단순한 고가품이 아니라 취향을 저격한,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고가품에는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것이다.
대표적인 상품이 니치향수다. 니치향수는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니키아(Nicchia)에서 파생된 단어로,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수를 위한 향수를 의미한다. 그 말인즉, 다른 향수들에 비해 고가라는 의미다. 20~30만 원대의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지만 자신을 위해 과감하게 산다.
향수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그동안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용도로 사용되던 향수가 자신을 위해, 자신을 위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향수 사용법과 방식도 바뀌었다. 외출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 침대에서 자신의 기분 관리용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단어가 ‘잠뿌’다. 잠뿌는 ‘잠자기 전 향수를 뿌리기’의 줄임말이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거나 익숙한 향을 침대나 몸, 잠옷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 만족감을 추구한다면 고가의 상품도 괜찮다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언제나 맡을 수 있도록 주변을 케어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음식에서 단연 떠오르는 건 오마카세다. 일본어 오마카세(おまかせ)는 ‘타인에게 일 처리를 맡기는 서비스’라는 뜻으로 일본 스시에서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우, 닭구이, 디저트, 커피 등 수많은 ‘–카세’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오마카세는 가격대도 높게 형성되어 있다. 소비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이왕 먹는 음식을 제대로 먹자’, ‘나를 위해서는 이 정도는 지불해도 된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전문가가 제공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의 심리도 작용했다.
가전에도 가실비 소비가 이어진다. 고가의 스타일러,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 건조기 구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과거 필수품이 아니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비싸지만 이런 제품으로 체감하는 만족도가 크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생각이다.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면서 가전도 일상을 쾌적한 환경으로 만드는 가실비템으로 변한 것. 가전제품이 가사를 대신해 주는 시간 동안 자신만의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가사 노동의 부담이 줄고 구성원 간의 가사 생활의 갈등, 감정 소비까지 줄어든 효과를 얻으니 최고의 가실비템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실비와 다른 현상도 나타난다. 짠테크, 앱테크, 무지출챌린지와 거지방(절약방)이 대표적인 용어들이다. 모두 절약과 연결되어 있다. 사치와는 반대로 보이지만 소소하고 성취감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기에 이 역시 갓생과 연결된다.
이중 최근 핫한 것이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채팅 서비스인 카카오 오픈채팅에 일명 ‘거지방’이라 불리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거지방에는 하루살이, 절약, 저축 등의 해시태그가 달려 있다. 오픈채팅에 들어가 자신들의 소비를 올리면 다른 이들이 평가한다. 예를 들면 ‘틴트를 사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입술 꾹 물어서 빨개지게 하세요’라고 답이 달린다. 해학적 요소가 많아 이런 대화들은 밈(Meme)이 되어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등으로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