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Jan. Feb Vol.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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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Jan. Feb Vol.115

얼마나 애쓴 한 해였는지 모르겠다. 2020년, 단언컨대 어느 누구도 애쓰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당연했던 일상은 포기해야 했고, 소중한 인연들과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으니까. 안간힘을 다해 일상을 제자리로 돌려놓고자 모두가 노력 했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제자리다. 만남이 조심스럽고 여행은 바람뿐인 이 때, 사진 속에 제주의 자연을 담아 작은 위로를 건네 본다. 비록 사진 속에서지만, 올해는 부디 풍경 너머 제주를 만끽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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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너머 제주

Words. 최선주 Photograph. 정우철

얼마나 애쓴 한 해였는지 모르겠다. 2020년, 단언컨대 어느 누구도 애쓰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당연했던 일상은 포기해야 했고, 소중한 인연들과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으니까. 안간힘을 다해 일상을 제자리로 돌려놓고자 모두가 노력 했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제자리다. 만남이 조심스럽고 여행은 바람뿐인 이 때, 사진 속에 제주의 자연을 담아 작은 위로를 건네 본다. 비록 사진 속에서지만, 올해는 부디 풍경 너머 제주를 만끽하길 바라면서.

곶자왈 네 이름을 부르기까지

제주 한경면 일대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장소가 곶자왈이었다. 몇 년 전, 곶자왈인지도 모르고 지인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간 곳이 곶자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곶자왈을 제대로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어 ‘곶’과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뜻하는 제주어 ‘자왈’의 합성어. 곶자왈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까지 곶자왈은 하나의 덤불숲에 지나지 않았다. 돌무더기 위에 뿌리내린 숲은 토양이 부족하고 울퉁불퉁한데다 불도 잘 붙지 않아 개간이 어려웠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곶자왈이 인정받게 된 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면 믿겨지겠는가. 지금은 ‘환상숲’이라고도 불리우며 과거와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 곶자왈. 숲 따라 걸으며 이곳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곶자왈은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조천읍 교래리와 선흘리, 구좌읍 송당리를 비롯하여 안덕면 화순리, 한경면 저지리 등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해안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그 중 보전상태가 양호한 한경-안덕 곶자왈지대, 애월 곶자왈지대, 조천-함덕 곶자왈지대, 구좌-성산 곶자왈지대를 제주의 4대 곶자왈이라고 부른다.

곶자왈 이끼는 척박한 토양을 대신해 나무뿌리에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곶자왈을 산책하다보면 만날 수 있는 제주 사투리 이정표.

곶자왈을 걷는다는 것

한경-안덕 곶자왈지대는 환상숲곶자왈공원을 검색하면 쉽게 갈 수 있다. 원래 환상숲은 정시마다 숲 해설사가 50분 동안 동행하며 숲 해설을 해주는 곳인데 숲 해설사 없이 자유롭게 산책하면 20분가량 소요된다. 아쉽게도 찾았던 때가 1월 중순이었던지라 숲 해설을 들을 수 없었다. 안내소에서 숲 해설 대신 곶자왈에 대한 설명이 담긴 안내지와 귤을 받고 곶자왈로 들어섰다. 안내지에는 산책 중에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 식물들을 찾으며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름부터 생소한 ‘자금우, 천리향, 소엽맥문동’이라는 식물과 워낙 유명해서 익숙한 ‘동백나무’가 그 주 곶자왈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이었다. 미션처럼 네 가지 식물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자금우와 동백나무 밖에 담을 수 없었다. 식물을 찾는 것 말고도 중간마다 제주 사투리가 담긴 이정표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걷다가 “벤는 것에 을큰다 맙서.(변하는 것에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라는 뜻이 적힌 이정표를 발견했다. 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환상숲 곶자왈을 걷다가 만난 글귀여서였는지 더욱 와닿았다.

빠르게 또 쉼 없이 변하는 사회의 속도가 버거워 지친 사람이라면, 곶자왈에 꼭 와봤으면 한다. 척박한 돌 땅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잘려도 또 자라는 생명력으로 오늘도 버티며 또 변화하며 곶자왈이라는 공간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며 걷는 동안만큼은 치유가 될 테니.

저지오름에 올라 보니

제주의 상징 오름을 보고 싶어 곶자왈에서 차로 5분 정도 소요되는 저지리로 향했다. 저지오름이 있는 제주 한경면 저지리는 작은 마을이다. 제주도를 무수히 찾았지만, 사실 저지리를 여행해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고로 여행이라 함은 낯섦에서 오는 매력이 크기에 호기심으로 저지리를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곳을 가볼까 고민하다가 저지리에 왔으면 저지오름에는 꼭 올라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기억나 저지오름으로 향했다. 한겨울임에도 저지오름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오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저지오름은 나만 몰랐을 뿐, 이미 유명세가 자자한 곳이었다.

원래는 닥나무가 많았던 저지리의 특성을 따서 ‘닥몰오름’이라 불렀는데 마을 이름이 ‘저지’로 되면서부터 저지오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7년에는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공도 크다고. 예로부터 초가집을 덮을 때 사용했던 새(띠)를 생산하던 저지오름에 마을 주민들이 나무를 심어 지금의 울창한 숲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망대까지 오르는 데는 1시간 남짓 걸린다. 경사가 완만한 곳도 있지만, 평지로 이루어진 곳도 있어서 웬만하면 쉽게 오를 수 있다. 물론, 힘이 아예 안 든다면 거짓말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한림읍 일대와 산방산, 한라산, 이시돌오름, 금악오름 등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제주는 반은 해가 뜨고, 반은 먹구름이 잔뜩 꼈는데 그 모습에 역시 제주는 날씨가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변덕을 부리는구나 싶었다. 저지오름에 오르던 때만큼은 날씨가 좋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변덕을 멈춰준 날씨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저지오름이 보이는 저지리 마을의 모습.

저지오름에서 내려다보는 제주 바다는 더없이 푸르다.

신창풍차해안은 일몰 맛집이라지

해가 곧 질 것 같아 서둘러 향한 신창풍차해안. 시기가 시기인지라 드라이브로 답답함을 해소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제주도는 특히 해안도로가 잘 되어 있어 드라이브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한국남부발전 국제풍력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이 있다. 바로 신창풍차해안이다.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이 지역의 조건을 활용하기 위해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사실 드라이브하기 좋다고는 하나, 그 풍경이 워낙 빼어나서 차를 정차하고 들렀다 가는 사람이 더 많다. 마치 외국에 온 느낌이 든달까. 한낮에 와도 좋지만 해가 지는 저녁에 찾으면 더 운치 있다. 언젠가 날씨 좋은 가을에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잠시 쉬어갔는데 일몰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었다.

신창풍차해안의 일몰을 보려면 싱계물공원을 찾으면 된다. 싱계물공원은 제주 사투리로 ‘새로 발견한 갯물’이라는 의미인데 갯물은 용천수를 의미한다. 공원 안에 조성된 다리를 따라 신창등대까지 걸어갔다 올 수 있다. 바다와 풍차가 어우러진 싱계물공원에서 멀리 보이는 차귀도와 수월봉의 일몰까지 눈에 담았다면, 신창풍차해안은 다 본 거다. 낮에는 해가 비춰주어 겨울의 일몰을 담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 덕분에 겨울의 일몰은 담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가을 신창풍차해안의 일몰을 대신해본다.

신창풍차해안의 겨울 풍경.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하기 좋다.

한국남부발전 국제풍력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이 있다. 바로 신창풍차해안이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저지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제주.
멀리 산방산, 한라산, 이시돌오름, 금악오름이 보인다.

신창풍차해안의 가을 일몰 풍경.
일몰을 보려면 시간과 날씨가 중요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클랭블루

신창풍차해안에서는 이미 유명한 클랭블루. 카페와 갤러리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카페 곳곳의 인테리어가 남다르다. 신창풍차해안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이 곳의 매력. 특히 2층에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신창풍차해안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이 포토존에 서면 어떻게 찍어도 인생샷이다. 성산유기농말차라테와 클랭블루제철주스가 맛있다는 건 안 비밀.

  • 제주 제주시 한경면 한경해안로 552-22

찐 맛집의 냄새 만덕식당

차귀도가 보이는 노을해안로에 있는 만덕식당. 분위기? 없다. 멋? 없다. 있는 게 뭐냐고? 맛이다. 노부부가 서빙과 요리를 도맡아 한다. 해물뚝배기와 갈치조림이 맛있다는 주인 할머니의 추천에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할머니는 “양념을 밥에 올려놓고 사정없이 비비세요”라며 시범을 보여줬다. 사정없이 비비라는 할머니의 말대로 양념을 한 숟가락 떠서 비벼 먹었더니 여행의 고단함이 금방 잊혀졌다. 칼칼한 양념과 두툼한 갈치가 밥도둑이 따로 없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다.

  • 제주 제주시 한경면 노을해안로 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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