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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스포츠 중계를 만났을 때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버글스의 노래는 스포츠 중계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판소리가 오직 목소리와 북소리만으로 적벽대전을 그려내듯, 목소리만으로 경기의 긴박함과
선수들의 동작을 전달한 라디오 중계가 있었다는걸 젊은 세대는 믿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믿기엔 지금의 스포츠 중계는 너무나 시각적이며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박종훈(칼럼니스트)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중계방식이 확연히 달라진 스포츠 종목이라면 단연 야구를 꼽을 수 있다. 기록의 종목인 야구는 오래전부터 데이터를 중계에 활용해 왔다. 타자의 누적 기록과 투수의 누적 기록을 보여주는 것부터 특정팀 투수와 타자의 상대 기록, 2아웃 만루 같은 특정 상황에서 타자나 투수의 누적 기록을 보여주는 것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의 야구 중계 화면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은 이전과 질적으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시각효과’에 있다. 이전까지 데이터는 텍스트로 표시되었지만, 지금은 플레이 하나하나의 결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분석해 준다. 투수가 던진 공의 속도와 구종, 스트라이크 존 통과 여부를 보여주는 것은 기본 이다. 그 공이 지면으로부터 몇 미터 높이에서 던져졌는지, 공의 회전수를 분당으로 환산하면 몇 회나 되는지도 보여준다. 타격 순간은 360도 동영상으로 보여주며, 홈런이 나오면 공의 비거리, 타구의 속도와 발사 각도를 시각효과와 함께 보여준다. 이런 중계 화면이 가능한 것은 야구공의 궤적과 속도 등을 추적하는 레이더 시스템이 야구장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 이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곳은 덴마크의 ‘트랙맨 Trackman ’인데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위상배열 도플러 레이더 phase-array doppler radar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트랙맨 시스템은 광학 카메라를 이용한 공 추적 방식보다 정밀도가 월등히 높으며, 공의 움직임은 물론 주자와 야수들의 위치와 속도까지 데이터화해 야구장 안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야구에 비해 중계 화면이 밋밋했던 축구도 최근 시각효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스페인 프로축구리그 라리가 La Liga 는인텔의 ‘트루뷰 True View’ 기술을 도입해 경기장 둘레에 38대의 4K 카메라를 설치하고 30초 길이의 3차원 영상을 실시간으로 생성하고 있다. 이 영상들은 모바일 기기로 중계를 보는 사람이 시점을 바꿔가며 여러 방향에서 다시 보기 하는 데 사용 되고 있다.



집에서도 생생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VR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출처_웨어러블 엔터테인먼트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측 중계

트랙맨이나 트루뷰 기술이 방금 일어난 플레이의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것이라면, 아마존은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 벌어질 플레이의 성공 확률을 화면에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 AWS ’에 딥러닝 Deep Learning 같은 인공지능 AI 기술을 접목해 결과를 예측함으로써 스포츠 중계와 관전 방식에 일대 혁신을 꾀하고자 한다. 딥러닝은 대량의 데이터나 복잡한 자료 속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 내는 알고리즘으로, 사람의 사고방식을 컴퓨터에 가르치는 기계학습 Machine Learning 의 한 갈래다.
아마존은 이미 자동차 경주의 최고봉인 F1, 프로미식축구 NFL, 미국프로야구 MLB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예측 중계를 위해 협약을 맺었다. F1 경주용 차량은 보통 120개가량의 센서를 탑재하고 있어 그 자체가 데이터 생성 머신이기도 하다. 아마존은 차량의 시스템 데이터, 랩타임, 타이어 성능의 열화 정도, 차량의 위치, 날씨 등의 데이터를 AI 알고리즘에 넣어 특정 차량이 앞차 추월에 성공할 확률을 추산하여 중계 화면에 표시해 준다.

NFL 경기에서는 필드의 사령관이라 불리는 쿼터백의 패스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아마존은 중요 상황에서 AI로 패스의 성공률을 예측한 후 중계 화면에 표시해 준다. NFL은 2017년부터 선수들의 어깨 보호 장구 속에 RFID 태그를 심어 10초에 한 번씩 태그를 읽어 선수 움직임에 대한 막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아마존은 과거 3만 5,000회의 패스플레이 데이터를 학습시킨 알고리즘에, 선수들의 포메이 션, 쿼터백이 공을 던질 때까지의 예상 시간, 상대팀 수비수의 태클 성공 여부, 공을 받을 선수까지의 거리 등의 데이터를 입력해 패스가 성공할 확률을 1초 안에 추산해 방송 화면에 보여준다.

MLB 경기 중계에서는 도루 성공 확률을 미리 계산하여 보여 준다. 앞서 말한 트랙맨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자의 과거 도루 데이터, 현재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는 리드 거리, 투수가 던진 공을 포수가 받을 때까지의 시간 등을 종합해 실시간으로 도루 성공 확률을 화면에 보여준다.

세계 스포츠 산업의
요즘 최대 고민은
젊은층의 관심을
붙잡는 것이다.


영화, 게임과 경쟁하고픈 스포츠 중계

그러면 스포츠 중계는 왜 이리 새로운 시각효과 도입에 적극 적인 것일까? 방송 중계 화면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시각적 인데 말이다. 스페인 프로축구협회의 설명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라리가는 인텔의 기술을 도입한 이유가 넷플릭 스나 디즈니와 경쟁하기 위해서라 밝혔다. 라리가는 지금 다른 유럽국가의 프로축구리그 혹은 다른 프로 스포츠 중계와 경쟁을 넘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들과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기, 스포츠 중계는 그 자체로 흥미 진진한 콘텐츠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PC가 보급되고 인터 넷이 연결되고, 아무 때고 스마트폰으로 넘쳐나는 볼거리들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스포츠 중계는 소비자의 유한한 관심과 시간과 돈을 놓고 영화, 드라마, 뉴스, 게임은 물론 개인방송들과도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놀라운 시각적 효과와 반전이 잠시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콘텐 츠들과 비교하면, 언제 터질지 모를 한순간의 희열을 맛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긴장하며 기다려야 하는 스포츠 중계는 확실히 구닥다리 콘텐츠다.

세계 스포츠 산업의 요즘 최대 고민은 젊은 층의 관심을 붙잡는 것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야구 중계를 잘 보지 않는다. 힙합스럽고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가 빠르게 이어지는 농구는 그나마 낫지만, 공 하나 던지고 나면 흐름이 끊기는 야구나 90분간 뛰어다녀도 한두 골 나기 어려운 축구는 도무지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은 아닌 것이다. 이런 현상과 대칭을 이루는 것이 e스포츠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광이다. 프로게이머들의 현란한 플레이를 보며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환호하자, e스포츠 중계는 인터넷 방송에서 케이블TV 방송으로, 이제는 지상파 방송으로 진출하고 있다. 급기야 어른들은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이지 만, e스포츠를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 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AI의 예측정확도와 VR의 현실 재현율이 100%에 가까워지면 또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어쩌면 스포츠 없는 스포츠 중계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타자의 타구 방향을 예측하는 중계를 선보여 야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출처_MBC SPORTS+ 화면 캡쳐


스포츠 없는 스포츠 중계도 가능할까?

그런 이유로 앞으로 스포츠 중계는 더욱 현란하고 다이내믹 해질 가능성이 높다. 라리가는 가상현실 VR 과 증강현실 AR 기술을 축구 관전에 적용한 앱을 개발 중이다. 아마존의 AI를 이용한 플레이 예측 기술과 VR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미래의 스포츠 중계는 어떻게 변모할까? 우리는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잠깐의 준비시간이나, 프리킥을 차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AI가 예측한 잠시 후의 플레이를 가상현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예상한 대로 전개되는지를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방식은 분명 새로운 즐거 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우려도 생긴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며, 실제의 중계방송과 AI와 VR이 만드는 가상의 중계방송을 섞어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뭐가 뭔지 헷갈리지는 않을까? AI가 예측 하고 VR로 보았던 대로 경기가 진행되지 않으면, 선수가 일부러 실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지는 않을까?
몇십 년 후쯤 AI의 예측 정확도와 VR의 현실 재현율이 100% 에 가까워지면 또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어쩌면 스포츠 없는 스포츠 중계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경기를 뛰기도 전에 가상의 중계방송으로 결과를 이미 알게 될 것이다. 선수들은 굳이 땀 흘려 뛸 필요 없이 예측 결과에 따라 연봉을 받을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걸 스포츠 중계라 말할 수 있을까? 라디오를 들으며 실제 경기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던 시절의 스포츠 중계보다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은 항상 명과 암을 동시에 가져온다. 그리고 매사 그렇듯 가장 어려운 것은 명과 암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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