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건강한 치아를 80대까지 유지하기 위해선 불소가 필요하다.
치약 속 불소 성분이 치아의 표면을 강하게 만들고, 충치를 예방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 불소를 태양전지에 첨가하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글 권예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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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을 코팅하는 불소
1980년대 말에만 해도 순수한 불소를 보기 어려웠다. 흔한 원소지만 반응성이 매우 커 자연 상태에서는 광석 등 화합물의 형태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소를 분리해내는 실험을 하는 도중 목숨을 잃은 화학자들까지 있었다. 그만큼 불소의 반응성이 크다는 의미다. 1886년 프랑스의 화학자인 앙리 무아상이 불소 분리에 성공했고, 이 공로로 190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 불소는 우리 생활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치약은 물론 프라이팬 이나 에어프라이어 등의 코팅에 사용돼 표면에 음식물이 들러붙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불소 성분이 에너지및 차세대 소재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연달아 보고되고 있다.
불소로 차세대 태양전지 안정성↑
중국 베이징대, 네덜란드 에이트호번대 등 국제공동연구진은 차세대 태양전지로 손꼽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불소를 첨가하면 태양전지의 안정성이 크게 향상된다는 연구결 과를 발표했다. 현재 상용화된 실리콘계 태양전지보다 페로브 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저렴하고, 제조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값싼 유기물과 무기물을 결합한 물질 로, 실리콘과 달리 유연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휘어진 건물이나 건물 외벽 등에도 부착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2009년 등장 이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빠르게 성장 했다. 빛을 전기로 변환하는 효율은 4%에서 10년 만에 6배 이상 높아져 현재는 25%를 넘어섰다. 실리콘 태양전지와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상용 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는 할로겐 금속 박막이 쓰이는데, 이 박막이 습기와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사용을 거듭할수록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져 긴 시간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공동 연구진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이루는 층과 층 사이에 불소를 첨가해 안정성 문제를 해결했다. 주입된 불소는 할로겐 박막과 강력하게 결합하고, 이 결합이 표면을 코팅하듯 보호층을 형성해 태양전지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약 속 불소가 치아의 표면을 코팅해 세균으로부터 치아를 보호하는 것처럼, 태양전지 속 불소도 태양전지의 성능을 저하하는 결함이 넓게 퍼지지 않도록 방지한다는 것이다.
‘꿈의 신소재’도 불소로 빠르게 제조
불소의 활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불소를 이용하면 반도체 물질의 제조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초 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은 불소를 이용해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기존보다 3배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초소형 · 고성능 전자기기 개발을 위해 2차원 물질을 반도체용 소재로 상용화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 소재를 산업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존 반도체 제조 공정에 적용할 만큼 큰 크기로 합성하기 어려울뿐더러, 제조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IBS 다차원 탄소 재료 연구단은 그래핀의 성장 과정에 불소를 적용해 제조 시간을 3배 이상 단축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제조 법은 분당 12㎜의 속도로 그래핀을 제조할 수 있다. 기존 기술로 10㎠ 크기 그래핀을 제조하는 데 10분이 소요됐다면, 개발된 기술로는 이 시간을 3분 정도로 단축할 수 있는 셈이다.
흔히들 화학 산업이라 하면 탄소 물질을 떠올린다. 하지만 탄소 못지않게 중요한 원소가 바로 불소다. 불소는 산업을 비롯해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성능을 모두 가진 원소다. 방수 의류, 스마트폰의 터치패널 또 오늘 소개한 태양전지와 차세대 소재에서 불소는 제품의 성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 불소를 분리해내는 실험 도중 목숨을 잃은 연구자들, 즉 ‘불소 순교자’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