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을 본 후 떡볶이집에서 우리는 저마다 영화의 한장면을 이야기하며 진한 감동의 여운을 만끽했다.
주요 장면이 거의 복기되었을 무렵 누군가 ‘근데 아까 악당이 차안에서 손에 들고 통화하던 거, 그거 뭐야?’라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카폰이라 불린 최초의 휴대전화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몇 년 후의 일이었던 것 같다.
글 박종훈(칼럼니스트)
1983년 모토로라가 내놓은 휴대전화 ‘다이나택 DynaTac ’은 길이 33cm에 무게가 1kg이 넘었다. ‘벽돌폰 brick phone ’이란 별명에 걸맞게 못을 박는 데도 사용할 수 있었으며, 한손으로 들면 금세 팔이 저려 와 긴 통화는 애당초 어려운 폰이었다고 한다.
1996년 모토로라는 휴대전화 역사에 또 한 획을 긋게 되는데, 바로 접을 수 있는 ‘폴더폰 folder phone ’을 내놓은 것이다. 최초의 폴더폰 ‘스타택 StarTac ’의 키는 9.4cm, 몸무게는 88g인데,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100% 부킹을 보장해주던 완소 희귀템이었다.
스타택 이후 휴대전화 업체들의 축소지향 경쟁이 본격화되 었다. 아직 아이폰이 상륙하지 못하고 있던 2008년, 국내 에는 이스라엘 업체 ‘모두 Modu ’의 휴대폰이 소개된다. 길이 7.21cm에 무게 40g의 모두폰은 당시 세계 최소형, 최경량 휴대전화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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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화 경쟁은 이제 멈추고 새로운 룰을 따르라고 선포한 이는 스티브 잡스다. 2007년 등장한 애플의 아이폰은 휴대전화를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며 스마트폰의 시대를 열었다. 터치 디스플레이가 중심인 스마트폰부터는 화면의 크기, 정확히는 화면의 대각선 길이가 중요 척도가 되었는데 초기 아이폰은 3.5인치(약 8.9cm)였다.
아이폰에 이어 안드로이드폰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며 이제는 반대로 화면 키우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으로 더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대화면에 대한 수요가 높아 졌기 때문이다. 대화면 트렌드가 자리 잡기까지에는 한손파와 양손파 사이의 세계관 대립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한손파의 태두였다. 아이폰은 한 손에 쥐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엄지손가락만으로 화면 전체를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잡스의 디자인 철학이었다. 아이폰은 잡스 사후 1년 만인 2012년에야 겨우 4인치로 늘어날 수 있었다.
아이폰이 잡스의 유언에 묶여 있는 사이 안드로이드폰의 대화면화는 거침없이 진전되었다. 삼성전자 갤럭시S는 2010년첫 등장부터 4인치였고 2011년 선보인 갤럭시노트는 5.3인 치였다. 2012년부터 쏟아진 5~7인치 크기의 안드로이드폰들은 폰과 태블릿의 합성어인 ‘패블릿 Phablet ’으로 불리기도 했고, 이즈음 스마트폰은 당연히 양손으로 사용해야 하는 기기가 되었다. 시장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던 애플도 결국 2014 년에 5.5인치 아이폰을 내놓게 된다.
스마트폰 10년,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해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은 지 10년이 넘어가며, 스마트폰 시장의 지형도 사뭇 달라졌다. 이젠 1~2년마다 스마트폰을 교체 하려는 욕구들이 줄어들고 있다. 값이 원체 비싸진 탓도 있지 만, 디자인이 모두 엇비슷해졌고 최신 모델들이 기능적으로 딱히 더 나아 보이는 게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하며 나타난 이런 현상은 애플과 삼성전자를 비롯한 모든 제조업체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어떻게 기기 수요를 창출할 것인가? 업체들의 위기 돌파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이다. 대표적으로 아이폰 판매가 기업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애플은 단숨에 ‘콘텐츠’ 기업으로 전환하려 한다. 음악, 뉴스, 동영상 서비스는 물론 건강관리와 의료 분야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좋은 서비스로 아이폰 수요를 유지한다는 복안이다.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적 접근이다. 서비스와 콘텐츠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고도로 발달한 하드웨어의 임팩트로 소비자의 감성과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흐름을 대변하는 것 중 하나가 ‘폴더블폰’이었 으며,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2019년쯤 선보일 것으로 예상해 왔다.
예상대로 삼성전자는 올해 1월 CES 가전전시회에서 ‘갤럭시폴드’를 선보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갤럭시폴드가 최초의 폴더블폰 타이틀을 얻지는 못했다. 작년 10월 스탠퍼드 공대생들이 만든 스타트업 ‘로욜 Royole ’이 화면이 접히는 ‘플렉스파이 FlexPai ’를 먼저 공개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화웨이도 이번 CES에서 ‘메이트X’라는 폴더블폰을 공개했다. 샤오미,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곧 폴더블폰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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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접어야(혹은 펼쳐야) 할까?
폴더블폰이라는 하드웨어 혁신은 이루어졌다. 이제 지켜 보아야 할 것은 뜻한 대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판단은 쉽지 않다. 1996년 폴더폰이 등장했을 땐 누구나 성공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가치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폴더블폰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다면 그것은 1,960~2,600달러라는 가격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야 그 값을 지불할 소비자들은 얼마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폴더블폰에 대한 논의는 주로 접는 방식에 맞춰져 있다.
플렉스파이나 메이트X는 화면이 바깥으로 접히는 아웃폴딩Outfolding 이고, 갤럭시폴드는 안으로 접히는 인폴딩 Infolding 이다.
그러나 접는 방향보다 본질적인 것은 접어야 하는 이유, 혹은 펼쳐야 하는 이유다.
폴더블폰은 화면을 둘로 나누어 멀티태스킹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용도라면 필요할 때 디스플레이를 하나더 붙여 사용할 수 있는 LG전자의 ‘듀얼 디스플레이폰’이 더실용적이지 않을까? 폴더블폰을 펼치면 게임이나 동영상을더 쾌적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거면 250만 원짜리 폴더블폰 대신 100만 원짜리 스마트폰과 100만 원짜리 태블릿을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못을 박을 수도 있던 벽돌폰이 이제는 말리고 접히는 폴더블 폰까지 진화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감동적이긴 하다. 그러나 동시에 소비자들은 왜 접어야(혹은 펼쳐야) 하는 지도 깊이 공감하고 싶어 한다. 제조업체들은 아마 나름의 답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그 답이 접히는 디스플레이만큼이나 자유롭고 창의적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