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트>로 90년대 청춘스타로 군림하던
배우 정우성.
어느덧 데뷔 26년차에 접어든 그는 중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조각 같은 얼굴과 우수에 찬 눈동자로
‘대한민국 대표 미남’이란 수식어가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는 정우성의 단면만 표현하는 단어다. 악역부터 정의에 찬 역할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에게 신선한 모습을 전달하는 그는 소신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울 줄 아는 배우다.
글 이화정 씨네21 기자 사진 씨네21 제공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정우성).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면 승진 기회가 따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순호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소녀 지우(김향기)를 증인으로 세우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지우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는 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정우성은 이 질문의 울림이 컸다고 한다. <증인>은 돈, 명예, 권력, 편견, 이기심, 속임수 따위가 아닌 진실, 정의, 소통 등의 가치를 긍정하는 영화다.
소통과 치유, 정의로움 등 여러 유의미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인물이 정우성이라 믿음직스럽다. 더불어 그의 최근작이 <인랑>(2018), <강철비>(2017), <아수라>(2016), <더 킹> (2016)이었던 것을 상기하면<증인>에서 우리는 보통의 정우성을 만나는 반가움 또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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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 은 사 람 이 란 좋 음 , 정 의 로 움 이 라 는 가 치 를 추 구 하 는
사 람 이 라 고 생 각 한 다 .
<증인>의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
따뜻했다. 지우라는 아이가 던지는 질문, 그 질문에서 비롯된 울림이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이 워낙 드세지 않았나. 권력을 쥐고 놓지 않으려는 인물이나 대의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들. 무거운 캐릭터들을 연이어 맡는 와중에 이런 잔잔한 울림을 주는 시나리오를 받아서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휴먼 드라마 장르에 거의 출연하지 않았다.
근 몇 년 동안 인간 본연의 성숙함을 찾고자 하는 한 개인의 이야기보다 사회의 불합리에 질문을 던지는 대의적이고 시의성 강한 이야기에 주로 출연한 것 같다. 영화는 특히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된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보니 최근엔 이런 장르의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영화 에서 낭만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와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결국 시대가 안정되고 개인의 삶을 돌아볼 준비가 됐을 때 자연스럽게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나리오도 많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나 또한 그런 시나리 오를 많이 접하게 될 것이고.
<인랑> <강철비> <아수라>처럼 장르와 캐릭터가 분명한 영화를 찍을 때와 <증인>처럼 평범한 인물을 연기할 때, 캐릭터의 준비 과정도 다를 것 같은데.
순호는 편안하게 접근했다. 순호에 대한 큰 그림은 그렸지 만, 기본적으로 리액션이 중요한 인물이라 ‘이렇게 연기해야 지’ 확정짓고 현장에 간 적이 없다. ‘지우가 어떻게 하는지 봐야지, 그리고 거기에 맞춰야지’ 그런 식이었다. 현장의 공기를 충분히 느끼며 연기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좀 더 디테일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장르적 특성이 강하면 인물의 감정선 또한 명확하다. 그런데 <증인> 같은 작품에선, 상대의 말과 표정과 숨소리에 맞춰 거기에 맞는 표현을 할 수 있다. 혹은 상황과 상관없는 리액션으로 색다른 표현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오히려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이 연기할 때는 더 재밌는 것 같다.
리액션이 중요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김향기 배우와는 어떻게 소통하며 합을 맞춰나갔나.
순호가 지우를 바라보듯 정우성이 김향기를 바라봤다. 김향기가 연기하는 지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바람이 없었기 때문에, ‘향기가 지우를 연기할 때 편안한가?’ 하면서 상대배 우의 감정 상태를 살피려 했다. 자연스럽게, 어떤 선입견도 없이 김향기라는 배우를 바라보고, 그 순간의 느낌에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 그게 소통의 방식이었다.
지우는 순호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평소 정우성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인가.
사회에는 좋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 특히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나 국가의 녹을 먹고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 촬영할 때 스탭들과 농담처럼 이런 얘길 했다. 우리 이거(‘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플래카드 만들어서 국회 앞에 걸어놔도 되지 않을까? (웃음) 좋은 사람이란 건 마냥 성격이 좋아서 마땅하지 않은 요구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좋음, 정의로움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유엔난민기구 활동 또한)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줘야지’라는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저 함께 나누고 알아야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한 감독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우성이란 배우에게 어떤 것들을 기대했다던가.
출연을 결정했을 땐 좋아했고, 촬영 들어가기 전 준비 과정 에선 난감해했다. 광화문 거리에서 무리에 섞여 걸어가는 순호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나. (웃음) 감독님도 의상팀도 난감해했지만 정우성다운 순호를 찾아가는 게 맞겠다고 빨리 생각을 정리한 것 같더라. 그렇기 때문에 정우성이 더 잘해야 했다. 정우성이 연기하는 순호의 감정을 사람들이 100% 믿게끔. 그리고 그게 나인데 어쩌겠나.
정우성답게 하면 되는 거지.
올해 계획은.
감독 입봉을 준비 중이다. 준비가 길어졌는데, 지금이 적기 라는 생각도 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