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아파트에서는 2억 원넘게 전셋값이 떨어졌고, 계약이 끝나도 신규 세입자가 없어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이자를 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깡통전세’란 집값이 전셋값(+대출금)이하로 떨어지면서 집을 처분해도 세입자가 자신의 전세 보증금을 날린다는 뜻이다. 지금 대한민국 전세시장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역전세난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내 피 같은 ‘보증금’은 어떻게 지켜야만 할까
글 정철진(경제 컬럼니스트)
‘역(逆)전세난’. 정말 오랜만에 듣는 용어이다. 역전세난이란 전세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전셋값이 떨어져 집주인이 전전긍긍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한민국 부동산은 지난 2010년부터 2018년 10월까지 ‘전세난’이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3년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연간 12%, 2015년에는 연 13%나 상승했다.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관행을 보면 최근 8년간 세입자들은 갱신 때마다 약 20%가 넘는 전셋값 상승 부담을 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전셋값
얼마나 떨어졌나
한국감정원 월간 주택가격 통계 자료를 보면, 올 1월 말 기준 전국 17개 광역 시·도중 11개 지역의 아파트 전셋값은 2년 전(2017년 1월)보다 2.67% 떨어졌다. 지방쪽 낙폭이 컸다. 경남 거제시는 2년 전 대비 34.98%나 전셋값이 급락해 전국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울산광역시 전셋값도 -13.63%나 하락했다. 세종(-5.47), 강원 (-2.62%), 충북(-4.01%), 충남(-7.08%), 경북(-8.10%), 제주(-3.71%) 등 2년 전보다 전셋값이 빠졌는데 심지어 부산도 2년 전 대비 2.36% 전셋값이 떨어진 상태이다.
다만 아직 서울은 버티고 있었다. 서울은 오히려 2년 전 대비 평균 1.78% 오른 상황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서울도 작년 12월부터 전셋값 하락이 시작됐다. 급기야 올 2월엔 ‘월간단위’로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택 전세가는 0.43% 떨어졌고, 아파트만을 떼어놓고 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한 달 동안 0.69%나 하락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79㎡는 1월 중순 시세가 4억 1000만∼5억 원에서 2~3월 현재 3억 8000만∼ 4억 7000만 원까지 내려왔다. 특히, 강남권 고가 전세는 최근 2년 5~8% 넘게 떨어진 곳이 속출하고 있다. 가령 2017년 7억 원 전세라고 하면, 이번에 6억 5천 정도로 많게는 5천만 원까지 하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세 시장
갑자기 왜 이러나?
기본적으로 매매시장이 위축되면 전셋값은 상승한다. 매매수요가 전세수요로 바뀌면서 수요증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2015년의 전셋값 폭등은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고 전세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주택 매매시장은 거래량이 작년 대비 반 토막, 일부 지역은 10분의 1 토막까지 나는 ‘거래절벽’이 다. 향후 집값 하락을 예상하면서 많은 사람이 전세에 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지금은 전셋값이 떨어지는 걸까.
바로 공급량 때문이다. 올해 전국적으로 38만 가구가 입주한다. 약 25~28만 가구가 적정 입주공급량이라고 할 때 상당한 초과공급이다. 심지어 매년 ‘공급부족’에 시달렸던 서울도 올해 6만 가구가 입주한다. 적정 공급량인 4만 가구 대비 2만 가구가 넘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전세수요가 순간 급증해도 이를 소화해낼 공급이 충분하고(또는 넘치고) 결국 전셋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정부의 초강력 대출규제도 또 하나의 이유이다. 집주인의 돈줄이 ‘딱’ 막히면서 역전세난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 가령 A씨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한다고 가정 하자. A씨가 전세에 거주했던 사람이라면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해결하고, 주택 보유자라면 기존 주택을 팔거나 전세를 놓고 (이 돈으로) 잔금을 치른다. 그런데 지금 ‘거래절벽’에 매매는 멈춰 버렸고, 전세 시세도 떨어졌다. 따라서 수중에 현금이 없으면 잔금을 못 치러 새 아파트로 이사를 못 하면서 일종의 ‘연쇄부도’가 난 것이다.
집주인 돈줄이 마르면서 세입자에게 부족분을 내어주지도 못하고, 기존 집도 안 팔리고, 대출도 막히고, 새 아파트로 입주도 못 하면서 ‘역전세난’은 더 퍼지고 있다.
역전세난
어떻게 대처할까
역전세난에 대한 대처법은 크게 2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집주인과 세입자 입장이 다. 우선 집주인들은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쉽게 말해 현금 확보 전략이다.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지금부터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필요한데 돈이 마르면 원치 않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속속 전세계약만기가 돌아올 집주인이라면 어서 빨리 현금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 부 의 초 강 력
대 출 규 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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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 인 돈 줄 이 마 르 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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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 주 지 도 못 하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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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전 세 난 ’ 은
더 퍼 지 고 있 다 .
한편, 세입자 입장에선 대출이 많은 집은 피해야 한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세입자들에게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할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을 거부하거나 집값 하락 등으로 전세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울 때 주택도시보증공사 HUG 등 보증기관이 대신 전세보증금을 내어주는 주거안정 상품이다. 세입자 입장에선 HUG로부터 먼저 돈을 돌려받고, HUG가 따로 집주인에게 돈을 받아내는 구조이다. 특히 이제 가입 시 임대인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고, 보증금 한도도 수도권은 7억 원, 지방은 5억 원으로 상향 됐다. 현재 HUG의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료는 아파트는 0.128%이고, 빌라·다세대· 단독·오피스텔 등 아파트 외 주택은 0.154%이다. 전세보증금이 1억 원이라고 하면 연간 10만 원 정도를 보험료로 내면 된다.
역전세난,
매매가격도
떨어질까
최근 금융당국이 ‘역전세난’에 대해 공식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바로 전세자금 대출의 대규모 부실 우려 때문이다. 2018년 말 기준 은행권 전세 대출은 92조 3000 억 원으로, 2금융권 등까지 고려하면 국내 전세자금 대출 규모는 ‘100조 원’ 대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들이 무너지면 또 다른 금융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당국은 “문제는 없다”고 결론 냈다. 아예 “전셋값이 떨어지면 세입자는 반가운 측면도 있다”는 입장까지도 피력하고 있다.
지금 시장의 관심사는 역전세난이 극심한 전셋값 하락에 이어 매매가격 하락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에 모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6개월 이상 역전세난이 이어지면 집값도 떨어졌다. 그렇다면 올여름 이후엔 매매시장(집값) 방향도 확실하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