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푸르트’, ‘유럽의 맨해튼’….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를 빗대는 말이다.
황제의 대관식을 주관했던 마인강변의 유서 깊은 도시는 뉴욕의 맨해튼을 본뜬 ‘마인 하탄’이라는 별칭이 익숙하다.
뢰머 광장으로 대변되는 중세풍의 건축물에서 시선을 돌리면 독일 도시 중에서는 유별나게 빌딩숲이 펼쳐진 광경이다.
글 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수소 열차, 에너지 자립 신풍속
프랑크푸르트는 시대를 넘나드는 반전들이 매혹적이다.
현대건축물로 꾸며진 세련된 보행자 거리는 중세의 광장과 만나고, 빌딩 숲 너머에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 머리를 내민다.
매끈한 트램이 오가는 거리에는 대문호 괴테의 호흡이 서려있다.
교통의 요지인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열차에는 친환경 에너지의 흔적이 도드라진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수소 열차를 도입한 에너지 선진국이다. 열차뿐 아니라 수소연료로 이동하는 수소 버스가 다니며 수소를 연료로 하는 택시도 성업 중이다. 대중교통에서부터 재생에너지는 빠르게 정착했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고 2050년까지 전력의 80%를 친환경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에너지원에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30%를 넘어섰다.
‘에너지 자립마을’ 역시 지속적인 테마다. 독일 동부의 펠트하임 마을은 태양광, 바이오, 풍력 등 자체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하며 나머지 에너지는 인근 마을에 판매한다.
독일 전역에는 100만 개를 넘어서는 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돼 지붕에서 만든 에너지를 자신이 직접 사용하는 에너지 자급자족은 흔한 풍경이 됐다. 태양열 에너지로 운영되는 공공 자전거 공유시스템으로 도시는 활력이 넘친다.
한편,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반슈타트는 대표적인 에너지자립형 스마트시티로 2,500여 개 주택의 전력이 100% 신재생에너지로 채워진다. 건물 외벽은 3중으로 설치된 태양광패널로 단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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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공공 자전거 공유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독일 기업의 태양광 운영 임대역.
02 빌딩숲 너머 구도심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고풍스러운 풍취가 서려 있다.
황제의 대관식 열린 뢰머 광장
변화의 중심이라는 보호색을 걷어내면 프랑크푸르트는 한층 단아하게 다가선다. 뢰머 광장, 괴테 하우스 등은 프랑크푸르트의 풋풋한 사색을 돕는 매개들이다.
뢰머 광장은 중세의 독특한 프랑크푸르트와 마주하는 공간이다. 광장에는 한때 로마인들이 주둔해 ‘뢰머’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다른 유럽의 광장처럼 위압스럽거나 웅장한 규모가 아니다. 오히려 앙증맞은 ‘고딕’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동화같은 풍광에 친밀감이 전해진다.
뢰머 광장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우아함과 정교한 건축미가 도드라진다. 시청사 건물은 적갈색의 석조건물로 1405년 시의회가 프랑크푸르트 귀족의 저택을 구입해 개조한 곳이다. 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시청사 2층 방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52명의 실물 초상화가 내걸려 있다.
뢰머 시청사 건너편 목조가옥들은 체크무늬로 단장된 듯한 차림새다. ‘오스트차일레’로 불리는 이 가옥들은 15세기 쾰른 지역의 비단상인들을 위해 지어졌다는데 비단만큼이나 화려한 외관이 도드라진다. 황제의 대관식도 열렸던 엄숙한 광장은 이방인들이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광장 한가운데는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가 인파 속에 저울과 칼을 들고 서 있어 엄중했던 시간을 홀로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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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마인강 풍경과 어우러진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와 중세시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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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르네상스풍 외관이 돋보이는 오페라하우스.
문향과 사색 깃든 괴테의 거리
프랑크푸르트의 고풍스런 풍광은 대문호 괴테의 숨결이 더해져 품격을 높인다. 뢰머광장에서 마인강변을 잇는 일대가 괴테가 뛰어놀고 산책을 즐겼던 동선들이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외손자였던 괴테는 어릴적 시청사 안 넓은 방에서 숨바꼭질을 즐기기도 했다.
뢰머 광장에서 10분 거리에는 괴테의 집이 들어서 있다.
히어슈그라벤 23번지, 괴테가 태어나 20여 년을 머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거작을 써내려간 공간이다. 그의 생가는 괴테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복원돼 대문호의 삶을 고스란히 추억하고 있다.
괴테 하우스에서 전해지는 느낌부터 옛 향기는 완연하다.
1층은 바로크 양식이고, 낡은 피아노가 있는 2층은 로코코풍이며 괴테가 태어난 3층은 루이16세풍이다. 중세로 향하는 프랑크푸르트 여행은 18세기 건축양식을 고루 갖춘 괴테의 집을 거니는 것만으로 넉넉히 차오른다.
괴테와 프랑크푸르트의 건축물들은 묘하게 연결돼 있다.
괴테대학, 괴테광장으로 명명된 공간 외에도 차일 거리 끝성카타리넨 교회는 괴테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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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강변 유적과 예술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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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구도심 뢰머광장 주변으로는 노천바가 온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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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오래된 윤곽들은 골목 어귀, 혹은 첨탑 아래에서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 더욱 인상적이다.
붉은색 고딕 탑이 도드라진 대성당의 공식 명칭은 성바르톨로메우스 대성당이다. 쾰른 대성당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한 외관의 성당은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이 혼재돼 있다. 성당 아래로는 쉬른 미술관과 마인강이 이어진다.
쉬른 미술관은 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됐던 프랑크푸르트의 과거를 복합 예술 공간으로 되살린 곳이다.
탁 트인 마인강변의 풍취는 오밀조밀했던 거리와는 대조를 이룬다. 삶과 강을 분리하는 큰 경계 없이 중세 유적과 강줄기는 가깝게 연결된다. 강물에는 성당과 오랜 건물, 노천 카페와 빌딩숲이 함께 담긴다.
보행자 전용인 아이제너슈텍 다리를 건너면 박물관 거리다.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도열한 마인강변 남쪽 길목에는 매주 토요일이면 벼룩시장이 들어선다.
세계적인 박람회가 연중 열리는 번잡한 도시는 애틋한 정서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