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8년째 정글의 족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병만이 가장 감탄을 자아내는 순간은 변변한 도구 없이
나무와 나뭇잎을 엮어
‘정글 하우스’를 지을 때다. 한 번은 3층짜리 하우스를 짓기도 했다.
김병만이 보여주는 여러 능력 중 집 짓는 모습에 경탄하게 되는 것은 아마
흉내 내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것이 ‘집짓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 박종훈(칼럼니스트)
농경사회를 벗어나면서 인류는 삶의 기본요소인 의식주를 구매해서 얻고 있지만, 맘만 먹으면 흉내 정도는 내 볼 수 있다. 주말농장을 하며 잠시 농부가 돼 볼 수 있고, 재봉틀을 배워 간단한 옷을 지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은 좀 다르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기도 힘들다. 한때 가나안농군학교는 입학생들에게 집 짓는 법부터 가르쳤다고 한다. 집을 지을 줄 알면 세상 어디에 놓여도 일단 살 수는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김병만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짓고 싶은 공간에 자기 생활의 필요와 편의성을 고려해 집을 직접 지을 수 있다면, 집에 관한 모든 정보는 내 머릿속에 담기게 된다. 직접 지을 수 없다면? 그땐 살기 괜찮아 보이는 공간에 지어진 집을 물색해야 하고, 그 집의 내부 공간이 편리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또 물은 잘 나오는지, 방은 따뜻한지도 확인해봐야 한다.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도 집에 대해 전부 알기는 어렵다. 시끄러운 윗집과 민감한 아랫집 등 어쩌면 가장 중요한 정보는 살아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법이다.
디지털 혁명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지 오래지만, 부동산은 인터넷의 영향이 가장 적은 대표적 산업으로 꼽혀 왔다.
집에 대해 알아야 할 정보의 종류가 적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적고 그마저도 공급자와 중개자가 쥐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경제의 핵심인 데이터가 불충분하고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니 혁신이 일어나기는 어려운 구조다.
그런데도 최근 수년 동안 부동산 산업을 인터넷 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들이 지속해서 이뤄졌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곳들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시도를 통칭하는 단어가 최근 유행하는 ‘프롭테크 PropTech ’로, 재산 혹은 부동산을 뜻하는 ‘Property’와 ‘Technology’의 합성어다. 부동산의 매매, 임대, 중개, 관리와 관련된 정보 요구를 데이터와 기술의 결합으로 해결하려는 서비스들은 모두 프롭테크라 할 수있다.
앱 세대를 위한 부동산 서비스
-
프롭테크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느낄 수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 프롭테크 기업인 직방의 경우 맨 처음 중개 정보 제공 서비스로 시작했는데, 이는 인터넷 초기부터 존재했던 유구한 서비스 유형이기 때문이다. 직방은 과연 무엇이 새로워 국내 프롭테크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을까?
직방의 초기 차별화 요소는 원룸·오피스텔 정보 제공 중심이었다는 점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세대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라는 메가트렌드를 꿰뚫어 본 것이다. 혼밥과 혼술 등 혼라이프가 대세가 되고, 고시족이 늘어감에 따라 원룸과 오피스텔에 대한 정보 수요는 급증하게 됐다. 아파트 중심의 기존 부동산 중개 정보 서비스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새로운 수요였다.
그리고 이 정보를 원하는 20~30대는 정보검색에는 편안함을 느끼나, 직접 부동산에 들어가 중개사에게 이것저것 물어 보고 남이 사는 집에 들어가 둘러보는 일에는 불편함을 넘어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앱을 통해 보증금과 월세 정보를 비교해 알려주고, 집 내부 사진을 보여주는 직방이 더할 나위 없는 부동산 정보 서비스였다.
프롭테크 열기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어서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프롭테크 기업 수가 4,000개를 넘어섰고, 이들이 유치한 투자금액은 총 78억 달러에 달한다. 이들 프롭테크 기업은 모두 직방처럼 새로운 세대, 특히 인터넷으로 정보를 접하고, 구매 욕구를 느끼며, 매매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겨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의 프롭테크 기업 ‘오픈도어 Opendoor ’다.
인터넷 쇼핑으로 주택을
오픈도어는 소프트뱅크 그룹 손정의 회장이 작년에 4억 달러를 투자해 일약 관심을 끈 창업 5년 차 기업으로 기업 가치는 이미 40억 달러에 육박한다. 오픈도어의 작동방식은 이렇다. 판매자가 오픈도어 홈페이지에 부동산 정보를 올리면, 오픈도어는 지역 부동산 정보, 최근 팔린 유사한 집, 시장 트렌드를 참조해 가격을 책정해 제안한다. 판매자가 가격에 만족하면 온라인으로 계약 동의서에 서명 한다. 그런 다음 집을 방문해 상태를 평가하고 수리할 곳을 점검해 수리를 마친다. 판매자는 판매 완료 시한을 설정할 수 있는데, 그 기간 안에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픈도어가 일단 구매한다.
구매자는 오픈도어 앱과 홈페이지를 통해 이 회사가 소유한 집이나 판매자가 올린 집을 모두 살펴볼 수 있고, 지역의 에이전트를 소개받을 수도 있다. 오픈도어 소유의 집이라면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을 통해 아무 때고 자유롭게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 방문 예약은 따로 필요가 없고 오픈도어 앱으로 출입코드를 받아 원하는 집의 문을 열 수있다. 사고 싶은 집을 결정하면 온라인으로 구매 신청을 하고, 집 점검 일정을 짜거나 감정평가를 의뢰하고, 오픈 도어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Opendoor의 홈페이지와 앱서비스 / 출처 Opendoor
오픈도어의 특징 중 하나는 ‘90일 바이백 buyback 개런티’ 프로그램인데, 막상 살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90일 이내 집을 반환할 수 있고, 오픈도어가 이를 되사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홈쇼핑들의 전매 특허, ‘써보고 맘에 안 들면 무조건 반품과 환불’ 정책이 무려 수십만 달러 주택의 매매 과정에도 적용된 것이다. 오픈도어의 성장은 지표로 쉽게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 23개 도시에서 주택 5만 채를 매매했다. 고객 수는 4만 명 이상이고, 직원 수는 1,300명이 넘는다. 올해 직접 구매한 주택만 5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
한 가 지 분 명 한 것 은
프 롭 테 크 서 비 스 들 은
우 리 사 회 에 서 집 이 갖 는
의 미 를 고 스 란 히 비 춰 줄
것 이 란 점 이 다 .
-
프롭테크가 드러내 주는 집의 의미
-
이쯤에서 자연스레 해보는 질문 하나. 우리나라에도 오픈도어와 같은 서비스가 등장할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당장 집 매매 시 부과되는 취득세 때문에라도 어렵다. 우리나라는 실거래가의 1.1~3.5%를 취득세로 내야 한다. 그러니 90일 바이백 프로그램 같은 건 애당초 어렵다. 보다 근본적 이유는 집의 70%가 아파트 형태이고, 규격화된 아파트의 가격은 공급자가 정한 분양가를 기준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종합적인 주거 여건보다는 강남으로부터의 거리, 교육 및 학원 환경 등에 따라 분양가와 거래가격의 서열이 얼추 정해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매매 대상이 되는 집은 주택 하우스 을 의미하며, 대여로 이용하는 아파트나 콘도를 집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주택은 제각각 지어졌고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가격 감정과 수리상태 여부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집의 대명사인 아파트는 준공 연도에 따라 상태를 예상할 수 있고, 가격은 단지별로, 동네별로 사실상 정해지다시피 한다.
주거 형태와 기능, 집에 대한 생각, 집의 가치는 역사적,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산의 의미는 나라마다 문화권역마다 다르고, 프롭테크의 형태 역시 그것에 맞게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오픈도어의 홈페이지와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다는 호갱노노의 홈페이지를 접속해 보라. “집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한국에서 언젠가 오픈도어와 같은 서비스가 출현한다면 그때 한국 사회에서 집의 의미는 지금과는 사뭇 달라져 있을 것이다.
작년 11월 출범한 한국프롭테크포럼에는 현재 약 80여 개 기업이 가입해 있다. 건설과 시공 등 중개사이트부터 인테리어 업체는 물론 VR 가상현실 , 블록체인 기업들도 속해 있다. 이들은 생태계를 이루고 상호 결합하며 한국형 프롭테크 서비스를 계속 우리 앞에 내놓을 것이다. 어떤 것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프롭테크 서비스들은 우리 사회에서 집이 갖는 의미를 고스란히 비춰줄 것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