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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너머

색에 푹 빠지다

금산에서 나만의 봄을 찾아라
우리가 사는 땅, 한반도는 그동안 봄꽃 앓이를 심하게 해 왔다. 그런데 이번엔 예외다. 삶의 패턴이 외부적 요인으로 바뀔 때가 있는데,
요즘이 그렇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우리나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준비한 축제와 행사가 취소 또는 연기됐다.
특히 꽃축제는 100% 취소다. 그런데 어쩌랴, 상춘객들의 춘심을 꺾진 못했으니. 오히려 만개한 꽃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고
활기를 얻게 됐다며 즐거워한다. 생각보다 덜 알려진 나만의 봄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을 소개한다.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은 이맘때 홍도화와 산벚꽃이 만개한다. 춘심에 불을 지필 금산으로 떠나본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홍도화와 도화꽃이 나란히 피었다

농염한 자태 뽐내는 홍도화

홍도화는 낯선 꽃이다. 복사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복숭아나 무에 열리는 꽃이다. 꽃은 4~5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꽃잎 색이 붉어 홍도화라 부른다. 주로 겹꽃으로 펴 가지를 붉게 뒤덮을 만큼 화려하다. 복사꽃은 대부분 백도화나 삼색도화가 일반적이다. 홍도화 특히 겹꽃으로 피는 홍도화는 매우 희귀한 품종으로 복사꽃의 약 10% 정도뿐이라고 한다. 이 귀한 홍도화가 금산 남일면 홍도마을에서 꽃을 피운다. 워낙 희귀한 꽃이다 보니 금산군이 홍도화를 알리기 위해 2008년부터 축제를 열어왔다. 축제가 10년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지만, 아직 낯선 사람이 더 많다. 물론 이번 축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다. 지역경제를 생각한다면 매우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호젓하게 봄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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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고혹적인 색을 뽐내는 홍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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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홍도화 동산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풍경, 홍도화의 붉은색이 가슴을 흥분시킨다.

홍도마을은 북쪽에 덕기봉(542m), 동쪽에는 수로봉 (509.4m), 남쪽에는 구봉(565.8m)과 성덕봉(502.5m)이 에워싸고 있다. 이런 지리 지형 덕분에 홍도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마을의 형상이 소반 위에 얹어놓은 붉은 복숭아를 뜻하는 홍도낙반형(紅桃落盤形)의 명당이라는 뜻이다. 마을 입구 암반에 큰 글씨로 ‘도원(桃原)’을 음각해 놓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마을 입구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엔 팔각정자가 있다. 작은 개천을 따라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데 담벼락에는 홍도화를 주제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붉은색 꽃이 무채색 담에 색을 더해 활기차 보인다. 마을에는 논밭보다 검은 차광막을 씌워놓은 시설물이 더 많다. 인삼과 약초를 재배하는 밭이다. 쌉싸름한 인삼 향을 따라 밭두렁에 내려서서 차광막 내부를 들여다보면 초록색 물결이 넘실거린다. 지난해 같으면 홍도화를 보려고 많은 사람이 마을을 찾았겠지만, 올해는 한산하다. 몇몇 사람이 보이지만 대부분 홍도화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가들뿐이다.

홍도마을엔 약 7,500그루 이상의 홍도화 나무가 치명적인 붉은색을 발산하며 꽃을 피운다. 4.2km에 이르는 왕복 2차로 도로에 3,200그루, 홍도화 동산에 4,300그루다. 도로에서 홍도화 동산을 올려다보면 야트막한 산에 횃불을 피운 듯 붉은 꽃이 장관이다. 반대로 홍도화 동 산에서 도로를 내려다보면 개선장군을 환영하는 꽃길처럼 화려하다. 겹꽃으로 피는 홍도화는 거무칙칙한 나무에 마치 홍등을 단 것처럼 농염하다.
우리 선조들은 복숭아나무를 집안에 심는 것을 꺼렸다. 집안에 복숭아꽃이 피면 부녀자의 치마폭 안에 봄바람이 분다고 해서다. 복숭아꽃의 화려한 색감이 화근이리라. 심지어 홍만선(1643~1715)은 저서 《산림경제》에 ‘우물가에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좋지 않다’라고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홍도화에서 화장을 짙게 한 여성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꽃말은 ‘사랑의 노예’ 혹은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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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한가로운 홍도마을의 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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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홍도화 동산에 자리한 팔각정, 이곳에 서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벚꽃 구경을 놓쳤다면, 여기는 지금이 적기

홍도마을에서 옥천군 방향으로 30여 분을 달리면 금산군 군 북면에 닿는다. 여기서 군북면 주민자치센터 방향으로 우회 전을 하면 산꽃로가 이어진다. 이후 산덕입구 정류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임도가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달리면 보곡 산골마을에 닿는다.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다. 보곡산골은 보광리, 상곡리, 신안리 세 마을을 합해 지은 이름이다. 보곡산골은 국내 최대의 산벚나무 자생지 중 하나다. 서대산과 천태산 기슭이어서 평지보다 기온이 낮아 꽃이 늦게 핀다.

임도 가장자리에 산벚나무가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 있어 벗 삼아 걷기에 좋다. 걷기에 나선 사람들은 대부분 ‘보이네요 정자’로 가는 산책길 입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길은 차량이 함께 달리는 임도지만, 비포장인 데다가 굴곡이 심해 속도를 낼 수 없다. 이 임도를 따라 산을 한 바퀴 돌아 신안2리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구간을 ‘자진뱅이 둘레길’이라 부른다. 총 길이는 약 7.5km 남짓이다. 소요 시간은 3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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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산기슭에 산벚꽃이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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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뭉근하게 핀 산벚꽃

임도에 들어서면 인적이 드문 것을 실감한다. 숲속에 난 임도지만, 봄볕을 막기엔 산벚나무가 아직 품이 작다. 자진뱅이 둘레길에서는 모자가 필수 아이템이다. 산벚나무는 4월 중순부터 말까지 꽃을 볼 수 있다. 도심보다 열흘에서 보름 정도 늦은 편이다. 그러니 벚꽃 구경을 하지 못해 아쉽다면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산벚꽃의 매력은 이제 막 어린 새잎이 돋은 숲에서 새하얀 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모습이 마치 새벽녘 운무와 같아서 몽환적이다.

벚나무는 꽃이 피고 지면, 잎이 돋는다. 그러나 산벚나무는 꽃과 잎이 함께 핀다. 그래서 산벚꽃을 처음 본 사람들은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한 모습을 보고 절정이 지났다며 낙담한다. 벚꽃은 가까이서 보는 게 제맛이라면, 산벚꽃은 산과 함께 봐야 한다. 그러면 절정이 지났다는 볼멘소리도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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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산벚꽃을 배경으로 인삼밭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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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싱그러운 인삼밭

임도 주변에는 산벚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삼각형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를 마주한다. 자전리 소나무로 불리는 꽤 유명한 나무다. 300년 이상된 이 소나무는 원래 암수 두 그루가 나란히 자랐는데 수나무는 죽고, 암나무만 남았다. 조팝, 이팝, 개나리, 철쭉이 길목마다 산허리마다 피어 있다. 어린 산벚나무의 연초록 이파리와 꽃잎이 여러 꽃과 어우러져 봄날의 꽃 향연을 펼친다. 봄볕이 정수리를 뜨겁게 달굴 무렵 그늘을 찾게 된다. 그때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처럼 ‘봄 처녀 정자’가 나온다. 다시 힘을 내어 시나브로 오르다 보면 걸어온 만큼 걸어온 길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아주 간간이 산벚꽃을 쫓아 앞서 걷는 사람이 있을 뿐, 산은 낮잠에 빠진 듯 고요하다. 고요한 풍경을 한 아름 품을 수 있는 곳에 ‘보이네요 정자’가 있다. 정자가 보이면 얼추 자진뱅이 둘레길이 끝 나간다. 정자 이름처럼 정자에 올라서면 산허리를 휘감는 임도가 보이고, 듬성듬성 화사하게 만개한 산벚꽃이 보인다.

금산은 두 가지 색을 가졌다. 치명적이리만큼 고혹적인 홍도화의 선홍빛과 봄날의 신부 같은 수수한 산벚꽃의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온 나라가 뒤숭숭한 봄날, 정작 봄은 왔지만, 봄날의 기분은 빼앗긴 듯한 요즘이 아닌가. 돌이켜보니 어느 봄날이 이처럼 고요했을까 싶다. 짧은 봄나들이였지만 나만의 봄을 누렸다는 만족감에 호사스러운 여행이었다.

Travel Information

여행 팁

금산하면 인삼이 떠오를 정도로 금산은 인삼이 유명하다. 금산수삼센터, 금산인삼약령시장, 금산국제인삼시장 등 인삼으로 특화된 시장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여행을 마치고 알싸한 인삼향이 가득한 인삼 삼계탕으로 지친 몸을 일깨우면 어떨까. 아삭한 식감의 인삼튀김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인삼막걸리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다.

내비게이션 정보

▷홍도마을(충남 금산군 남일면 홍도1길 57)
▷보곡마을(충남 금산군 군북면 산꽃로 890)

문의

금산 관광안내소 041-750-2626
관광문화체육과 041-750-2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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