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유럽 중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피해가 큰 나라다. 이탈리아의 상황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의료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데, 위급에 처한 환자들은 물밀 듯이 이송돼 온다. 의료진들은 매 순간 누구를 먼저 살려야 할지를 놓고 고뇌에 휩싸인다. 이탈리아는 노인보다 청년의 삶을 선택하고 있는데, 이는 현 상황이 ‘전시(戰時)상태’임을 뜻한다.
글 박종훈(칼럼니스트)
코로나19 팬데믹 Pandemic, 세계적 대유행 국면이 전시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현재의 대응 방식,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전시에는 기존의 규칙이나 질서, 도덕과 윤리가 바뀌기 때문이다. 개인의 권리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뒤로 밀릴 수 있고, 기업과 민간의 사유재산도 공공자원으로 동원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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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and corona_ 출처 IEEE Signal Processing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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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군사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보력’이다. 정보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제 전장에서 전술을 지휘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게 활용되고, 후방에 있는 국민들의 삶과 생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시 상태라면, 이난리 통을 슬기롭게 넘기기 위해 필요한 정보력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2차 대전 때는 통신이 답이었지만, 지금은그 후예인 ICT 정보통신기술 가 답이 될 것이다. 실제 ICT는 이번 코로나19의 주요 국면마다 결정적 역할을 하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왔다. 캐나다의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블루닷 BlueDot ’은 세계보건기구 WHO 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 보다 열흘 앞서 코로나19의 창궐을 경고하며, 바이러스와 전쟁에서 IT 맹활약의 서막을 올렸다.
블루닷은 인공지능 AI 과 빅데이터를 이용한 바이러스 경보 시스템을 운영한다. 창업자 캄란 칸 Kamran Khan 은 감염병 전문가로 2003년 사스 SARS 사태 당시 토론토 병원에서 일했는데, 사스가 도시를 삼키고 병원을 마비시키는 것을 보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듬해 블루닷 개발을 시작했다.
코로나 대응에 AI가 필요한 이유
블루닷은 바이러스 발병지와 확산 경로 추적을 위해 각국의 비행기 운항 경로, 기후와 온도, 가축의 건강상태 등을 분석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반면 부정확한 글이 난무하는 소셜 미디어 SNS 는 참고하지 않는다.
백악관에서는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 대학연구 소, 정부 기관들을 모아 ‘코로나19 고성능 컴퓨팅 컨소시엄
COVID-19 High Performance Computing Consortium ’을 구성했다. 이 컨소시엄은 코로나19가 사람 세포에 침투할 때 핵심 역할을 하는 스파 이크 단백질 spike protein 의 기능 억제를 연구한다. 컨소시엄의 AI 를 통해 지금 생성되고 있는 데이터들은 향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연구와 치료제 개발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코로나19가 유전정보를 DNA가 아닌 RNA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나선구조인 DNA에 비해 RNA는한 가닥이어서 쉽게 끊어지기 때문에 변이가 매우 빠르고 다양하게 이뤄진다. 그 변이의 속도와 방향을 보다 잘 예측할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AI라는 게 과학자들의 판단이다. 지구촌의 대 코로나19 전쟁에서 보급창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의 진단 시약 중에는 인공지능에 의해 개발된 것도 있다. 시약도 계속 진화 중인데 6월경에 나올 신약은 코로나19의 변이 상태를 예측해 변종까지 잡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 인구 밀집 대도시의 증가, 활발한 지역 간 이동이 합쳐지며 바이러스 전파 속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한다 해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임상실험에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면, 이미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후가 될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와 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 될 공산이 큰데, 인간의 심리적, 정치적 판단이나 실수에 의한 오류를 최소화해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빠르고 정확하며 냉정한 AI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빅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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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itoring_출처 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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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정보 수단으로서 IT의 위력은 전 세계적 이슈가 된 한국의 ‘3T 전략’, 즉 공격적인 검사-추적-치료Test-Trace-Treat 전략에서도 확인됐다. 확진자의 동선 추적은 주로 휴대전화 위치 정보나 신용카드 사용내역 정보 수집으로 이뤄졌는데, 원래 이 정보들은 행정 관청의 요구만으로는 볼 수 없었으나,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개정된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일정한 요건 아래에서 정보의 수집 및 이용이 가능하도록 허용된 바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정보의 수집과 이용은 한층 고도화됐다.
올해 초만 해도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려면 여러 명의 조사관이 관계기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각종 개인정보를 수집해 취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완성된 역학조사 시스템은 확진자로 판명되면 즉각 여러 정보를 자동 취합해 10분 이내에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당연히 프라이버시 침해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특히 개인주의와 프라이버시를 우선하는 유럽 국가들은 한국의 3T에 대해 유교 문화를 벗지 못한 국민들이 국가에 순종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분석이나, ‘보건파시즘’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조롱이나 비판은 유럽 국가들이 아예 도시 전체를 봉쇄하고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면서 무색해졌고, 이제는 한국의 추적 기법을 배우려는 태도로 바뀌었다.
한국을 벤치마크하되, 중앙집중형 빅브라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감염 정보를 공유하려는 시도도 있다. 구글과 애플은 근거리 통신 기술인 블루투스를 이용해 수 미터 내에 있는 스마트폰 보유자들이 서로 코드를 주고 받는 분산형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 감염돼 그 사실을 앱에 등록하면, 그 사람의 코드가 저장된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발송된다. 분산형 방식은 내가 접촉한 사람 중에 감염자가 있었음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수 미터 떨어져 잠깐 스친 것인지 바로 붙어있었던 것인지를 구분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확진자가 감염 사실을 공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간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활용 사이의 균형에 대한 논의는 다소 추상적인 면이 많았으나, 전시와 같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어떤 상황에서 빅브라더를 활용해야 하는지 그 기준을 세울 근거들이 마련돼 가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관용을 만날 때
이 밖에도 ICT는 이번 코로나19 국면의 여러 장면에 등장하며 많은 화제와 화두를 낳았다. 대인 접촉 최소화로 감염 우려를 줄이기 위해 대형마트들은 소비자가 직접 계산하는 무인결제시스템 도입을 확대했고, 대형 음식점들은 로봇 서빙을 실시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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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한국이 가장 주목받는 나라가 된 데에는 고도의 ICT 인프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 ICT의 위력은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 큰 빛을 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을 겪고 나면 사회경제 체계가 급격히 변하기 마련인데, 그 변화를 헤쳐 나갈 동력이 ICT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경탄한 초단기간 내 원격교육 체제로의 전환은 한국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일 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질서 표준을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는 기대는, 성공적인 방역의 결과에 전 세계가 보내온 찬사에 도취해 나온, 소위 애국심의 발로만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고도의 ICT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격변의 시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번성하는 도시의 3요소로 ‘관용Tolerance-재능Talent-기술Technology’의 3T를 꼽았다. 관용과 인내가 있는 도시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창조적 기술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중 ‘관용’을 측정하는 지표로 플로리다 교수는 ‘게이 지수Gay Index’를 사용했다. 마침 코로나19 극복의 가능성이 높아지던 즈음,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클럽발 2차 대규모 감염 사태는 3T, 그중에서도 관용을 특히 눈여겨보게 만든다.
관용은 모두에게 요구된다. 바이러스는 국적, 신분, 종교,성 정체성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이든 시민과 공화국의 안전이 최우선일 때는 인내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모두 ‘역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고 혐오해서는 안 될 것이다. 테크놀로지와 함께 관용의 지수가 지금보다 더 높아져 전 세계의 인재들이 한국을 찾고, 그리하여 창의성 만발한 한국이 새로운 세계문화를 가꾸어 갈 가슴 벅찬 미래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