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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구름에
더 스마트한 세상이 들어 있을까?

지난 국회에 이어 최근 개원한 제21대 국회에서도 퇴근 시간 이후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하면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하게 하자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퇴근 후 업무 지시는 “자료가 회사 PC에 있어서…”라는 말 한마디로 회피할 수 있었다.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데이터가 ‘구름(클라우드)’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박종훈(칼럼니스트)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타격이 크다. 핸드폰을 바꾼 지 얼마 안 된 사람만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핸드폰일수록 분실로 인한 피해가 더 클 수 있는데,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가령 전화번호만 해도 그렇다. 당장 가족의 전화번호마저 누가 물어보면 선뜻 답하지 못하는 마당에,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나면 새 핸드폰을 마련한다 한들 어느 번호로 전화해야 할지, 누구에게 전화가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이런 분실로 인한 번거로움과 짜증을 미연에 없앨 방안들이 마련되어 있다. 가장 훌륭한 대비책은 ‘구름(클라우드)’이다. 2011년 애플의 연례행사인 세계개발자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클라우드(iCloud)’ 서비스를 소개했다. 당시로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인터넷을 통한 동기화’라는 기술적 개념을 잡스는 몇 가지 시연으로 간단하게 이해시켰다.

사람들이 마술 같다고 생각한 시연 장면은 이랬다. 먼저 가지고 있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저 멀리에 있는 구름과 연결해 둔다. 이어 아이폰으로 사진을 하나 찍자, 무슨 조화인지 그 사진이 아이패드의 앨범에 곧바로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리는 간단했다. 아이폰의 사진 앨범이 구름 속의 앨범과 실시간으로 ‘동기화’되고, 이것이 다시 아이패드의 사진 앨범과 ‘실시간’으로 동기화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사진뿐 아니라 전화번호부도, 사용하고 있는 앱도 동기화가 가능하다. 그러면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새 핸드폰을 장만한 후, 이것을 구름과 연결하기만 하면, 새 핸드폰을 분실했던 핸드폰과 똑같은 핸드폰으로 만들어 준다. 연락처도, 앱들도 모두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생돈을 내고 새 핸드폰을 사야 하는 속 쓰림까지야 어찌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데이터 분실에 따른 불편함만은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구름’은 물리적으로 말하면 애플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그것을 움직이는 각종 소프트웨어를 합해 부르는 말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란 의미로 구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애플만 클라우드가 있는 것은 아니며,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아마존도 모두 각자의 클라우드를 가지고 있다.

구름과 연결되면 무엇이든 스마트

우리의 일상생활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스마트폰보다 더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구름들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취미 활동을 하며, 업무를 처리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구름 속이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구름에 무언가를 요청하는 입력수단이며, 구름으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출력수단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스마트폰을 무시하는 것 같지만, 최근 등장하는 스마트 기기들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령 아마존이 작년 9월 발표한 2종의 웨어러블(Wearable) 기기를 보자. 에코 프레임(Echo Frames)과 에코 루프(Echo Loop)라는 이름이 붙은 이 기기들의 외양은 각각 안경과 반지다. 이 기기들에는 아마존이 개발한 인공지능 가상 비서 ‘알렉사(Alexa)’가 탑재되어 있다.

아마존은 국내에서 최근 보급이 늘어나고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가장 먼저 대중화시켰는데, 바로 2014년 선보인 에코(Echo)라는 제품이었다. 에코에는 인공지능 알렉사가 탑재되어 있어서, 가령 에코를 향해 ‘알렉사! 기분 좋게 해주는 음악을 들려줘~’라고 요청하면, 에코는 클라우드에 있는 아마존 뮤직 중에서 적절한 음악을 찾아 재생시켜 준다. 만약 자동차가 클라우드에 연결되어 있다면, ‘알렉사! 지금 곧 나가니 시동 걸어줘~’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에코 프레임(안경)과 에코 루프(반지)는 알렉사를 호출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들이다. 안경을 착용하고 알렉사에게 음악을 부탁하면, 안경테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려준다. 반지를 끼고 알렉사에게 통화를 원하는 사람과 연결을 부탁하면, 반지를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스마트폰을 뒤잇는 기기는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후보들은 스마트 글래스, 스마트 워치, 스마트 링 등이다. 스마트란 수식어가 붙어 그럴듯하지만, 사실 안경과 시계, 반지이다. 이런 일상 생활용품들이 포스트 스마트폰의 후보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구름’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댕댕이와 냥냥이의 취업 걱정

무엇이든 스마트 기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클라우드의 힘을 빌린다면, 보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스마트 기기가 되는 상황을 그려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냉장고들은 스마트한 인공지능 기능을 내세우고 있는데, 인터넷과 연결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요리 레시피를 즉석에서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장난감도 클라우드와 연결이 된다면 스마트 토이로 변신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나 인형이라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미리 탑재된 몇몇 효과음만 반복해서 내는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먼저 질문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가르쳐 주기도 하는 장난감 이상의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광고에도 등장하듯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는 이미 인공지능 스마트 스피커를 말벗으로 삼는 분들도 계시다. 홀로 사시는 노인분들에게 묻는 말에 대답해 주고, 생일 축하를 해주고, 끝말잇기 게임을 같이 해주는 스피커는 단순한 기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은커녕 전화로 안부 주고받는 것도 쉽지 않은 자식들과 비교한다면, 인공지능 스피커는 스마트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인간적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클라우드의 발전은 댕댕이과 냥냥이의 미래에 자못 위협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사람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선택할지, 아니면 대화가 가능하며 나의 기분을 파악해 때론 쾌활하게 때론 편안하게 대해주는 인공지능 로봇이나 스피커를 선택할지에는 쉽사리 답을 하기 어렵다.

누가 현실판 ‘지니’가 될 것인가

스마트 기기는 특별한 어떤 기기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클라우드가 있고 그것과 연결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에든 스마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사물인터넷이란 모든 기기가 인터넷으로 연결된다는 물리적 의미 외에, 모든 물건이 스마트 기기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구름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CLOUD 우리의 일상생활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스마트폰보다 더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구름들이다.

이렇게 보면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를 말할 때 핵심이 되는 것은 ‘어떤 기기이냐’가 아니라 ‘어떤 구름이냐’일 것이다. 애플도, 구글도, 페이스북도, 아마존도, 카카오도, 네이버도 모두 각자의 구름을 만들어 가고 있고, 자신들의 구름 속에 더 많은 비가 들어있다고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어떤 구름은 프라이버시를 더 잘 지켜준다고 말하기도 하며, 어떤 구름은 당신의 생각을 미리 읽고 알아서 다해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구름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모든 클라우드 서비스들이 호칭을 부르면서 시작하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사용자의 명령을 인식시키기 위한 절차적 요소로 둔 것이지만, 우리는 클라우드의 힘을 빌리기 위해 먼저 이름을 불러야 한다. ‘알렉사, 시리, 기가지니, 아리야…’ 앞으로도 우리가 불러야 할 이름들은 계속해서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그중 누가 알라딘의 지니처럼, 혹은 스카이워커의 R2D2처럼 나의 바람을 즉각 들어줄 것인지, 바야흐로 저 멀리 하늘 위에서 거대 구름층들의 심상찮은 충돌이 시작되고 있다. 과연 어느 구름 속에 더 스마트한 미래가 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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