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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을 따라
길을 나서다

예던길
참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러나 다시 가고 싶고,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은 많지 않다.
한번 다녀간 곳을 찾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테니까. 안동 도산면에 있는 예던길은 기회가 되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재차 걸어도 지겹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또 머물러도 정겨운, 그래서 다시 가고 싶은 곳, 안동 예던길이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강물에 물그림자가 투영된 고산정

예던길의 주인공 퇴계 선생

어느 때부터인가 지갑이 가벼워졌다. 신용카드처럼 현금 대신 사용할 결제 수단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천 원짜리 지폐를 언제 사용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카드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당시에 가장 많이 사용하던 지폐가 천 원권이다. 그래서일까, 천 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퇴계 이황 선생의 얼굴이 친근하게 여겨졌다.

퇴계 선생은 1501년에 태어나 1570년에 생을 마감했다. 70년을 산 셈인데 당시 평균수명보다 훨씬 장수했다. 선생은 조선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교육자, 화가, 그리고 정치인이었다.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선생은 정치인 보다 철학자, 특히 성리학자로 더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선생은 긴 생애에 비해 관직 생활을 한 기간은 몇 해 되지 않는다.
1534년(중종 29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관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승진을 거듭했지만,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부모 봉양을 명분 삼아 낙향했다. 낙향 이후에도 수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번번이 이유를 들어 고사했다. 천 원권 뒷면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퇴계 선생이 생존할 당시 도산서당을 배경으로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溪上靜 居圖)’이다. 그림의 뜻은 ‘냇가에서 조용하게 지낸다’인데, 이것은 선생의 호 ‘퇴계(退溪)’와 일맥상통한다. 퇴계는 ‘시내로 물러나 있다’라는 뜻이다.

안동 도산면 토계리에는 퇴계종택에서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예던길’이 있다. ‘예던’은 ‘가던’, ‘다니던’이라는 뜻이다. 퇴계 선생이 지은 <도산십이곡>에 ‘녀던길’이라는 표현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 길은 선생이 숙부 송재 이우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청량산으로 가면서 걸었다고 한다. 선생은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란 호를 지어 부를 정도로 청량산을 사랑했다. 이런 연유로 이 길을 퇴계 오솔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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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낙동강을 따라 걷는 예던길에는 낚시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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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농암종택 장독대에서 바라본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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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농암종택에서 바라본 절경

퇴계 선생이 감탄했던 예던길

예던길의 백미는 가송리 농암종택 일대다. 가송리(佳松里)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다. 청량산의 기운을 그대로 이어받은 장군봉과 건지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골짜기 사이로 낙동강이 굽이져 흐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깎아지른 단애, 소나무를 휘감는 바람 소리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울림, 은빛 반짝이는 모래사장, 현기증이 나도록 맑디맑은 강물. 모든 풍경이 조화로운 까닭에 곧추선 절벽의 모습에서 서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친근한 우리 산하의 풍경이지만 뭐하나 부족할 것 없을 정도로 충만해 보인다. 신록 짙은 한여름날의 아름다운 자연이 펼치는 향연은 자연 속에 깃든 사람의 마음마저 맑고 밝게 만든다. 500여 년 전, 퇴계 선생도 이 길을 오가며 아름답다 감탄했으리라. 풍경이 이처럼 아름다운 까닭에 예부터 안동에서는 이곳을 영남의 금강산이라 부르며 최고의 경승지로 꼽았다고 한다.

농암종택을 둘러싼 풍경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수직으로 곧은 절벽과 부드러운 산허리, 굽이치는 낙동강의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중동이 어우러진 완벽한 풍경이다. 농암종택은 고려 말인 1370년에 농암의 고조부인 이헌이 지었다. 원래 도산서원 인근 분천마을에 있었는데 1976년 안동댐 건설 때 마을이 수몰지에 편입되자 문중의 종손이 이곳으로 옮겼다. 그때 종택 본채와 함께 별채인 긍구당과 명농당, 분강서원 등도 이전했다. 조선 전기 ‘어부가’를 지은 문신이자 문인인 농암 이현보(1467~1555)가 이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지금은 17대 후손이 650년 이상 대를 이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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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아름다운 풍경에 자리한 고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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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안동댐 순환도로에서 바라본 월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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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드라이브 하기 좋은 안동댐 순환도로

농암종택에서 챙겨볼 곳은 농암이 태어났다는 긍구당(肯構堂)이다. 긍구당은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으로 현판은 조선시대 명필 신잠(1491~1554)의 글씨다. 누마루에 오르면 나무 틈 사이로 예던길 자락이 굽어 보이고 낙동강 물소리가 들려온다. 긍구당을 나서서 강변 방향으로 가면 애일당(愛日堂)에 닿는다. 애일당은 농암 선생이 부모님을 위해 지은 정자다. ‘애일’이란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부모님이 살아 계신 나날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농암 선생은 여기서 아버지를 포함한 아홉 노인을 모시고 어린아이처럼 색동 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농암 선생의 나이 70세를 넘은 시점이다. 이 같은 효행을 들은 선조 임금은 착한 일을 많이 했다는 뜻의 ‘적선(積善)’이라는 글씨를 하사했다.

농암과 퇴계 선생은 서른네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격의 없는 벗처럼 지냈다고 한다. 서로의 거처를 찾아 유상곡주를 즐기고 학문적 교감을 나누며 말이다. 세대를 초월한 두 선생의 교제는 학자다운 반듯함과 문인다운 힘, 그리고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풍류가 있다.

모름지기 이만한 풍광도 없을 터

농암종택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한 굽이 돌면 가파른 산기슭에 정자 하나가 보인다. 퇴계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한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금난수(1530~1604)가 지은 고산정(孤山亭)이다. 정유재란(1597년) 때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킨 금난수는 스승 퇴계 선생을 쏙 빼닮았다. 최소한 벼슬을 마다하는 여유와 고산정을 짓고 일동정사라 부르며 학문을 향한 열의가 그렇다. 금난수는 스스로 고산주인(孤山主人)이라 불렀다.

고산정은 팔작지붕을 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이다. 단출하다. 하지만 고산정이 앉은 자연의 품은 매우 높고, 깊고, 넓다. 바로 아찔하리만큼 곧추선 벼랑,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넓게 펼쳐진 은빛 모래톱이 그렇다. 퇴계는 제자 금난수가 있는 고산정을 자주 찾아 노닐었다. 선생의 집이 있는 도산에서 청량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찾거나 그저 고산정에 오고 싶어서 찾기도 했다지만 모름지기 빼어난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 왔을 듯하다. 그리고는 외병산과 내병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경을 바라보며 자연을 노래했을 것이다. ‘서고산벽(書孤山壁)’, ‘유고산(遊孤山)’, ‘고산견금문원(孤山見琴聞遠)’ 등이 퇴계 선생이 쓴 대표적인 시다.

지금의 예던길은 500년 전 퇴계 선생이 걷던 그 길과 다른 게 많을 것이다. 그 이격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넓어서 맞닿을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쉼을 얻고자 했던 마음은 퇴계 선생이나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예던길을 거니는 동안 어느덧 마음 한쪽에 여유가 들어앉았다. 내친김에 안동호 드라이브까지 즐겨보자. 안동댐 외곽을 순환하는 약 9.5km의 길이다. 안동호반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여름에 찾기 좋은 곳이다. 안동 여행 첫 코스 혹은 마지막 코스로 일정을 잡으면 좋다. 서안동 IC에서 자동차로 20여 분거리다.

여행 팁

안동 향토음식 헛제삿밥은 양반가 제례음식을 나눠 먹었던데서 유래했다. 서원의 유생들이 평소 먹기 어려웠던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핑계로 제례음식 헛제삿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설이 있다. 입가심은 안동식혜가 좋다. 찹쌀 고두밥에 고춧가루, 무채, 생강채 등에 엿기름을 넣어 발효시킨 음식인데 매콤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참고로 안동에서는 흔히 알고 있는 식혜를 단술이라 부른다.

내비게이션 정보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3 농암종택

문의

농암종택 054-843-1202, 안동관광안내소 054-856-3013

한국남부발전 안동발전본부 사우가 추천하는 맛집

안동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맛집 투어다. 찜닭으로 유명한 안동구시장 찜닭골목에 위치한 유진찜닭의 찜닭에는 주방장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범한듯 보이지만, 푸짐하고 안동찜닭 특유의 짭조름한 맛으로 많은 손님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주소 안동시 번영1길 47
전화 054-854-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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