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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이 아닌
메가폰을 잡다

배우 정진영
배우로서 30여 년간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했던 정진영.
그가 ‘감독’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관객에게 손을 내밀었다.

뉴스엔 박아름 기자 사진 뉴스엔 제공




흉내가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영화 ‘사라진 시간’으로 감독 데뷔에 나선 배우 정진영이 첫 영화를 연출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정진영은 ‘사라진 시간’을 작업하기 전, 다른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작업본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라진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제가 다른 감독들과 다른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관습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작성하던 시나리오가 점점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어 ‘내가 왜 이렇게 가고 있지?’ 싶어 그 시나리오를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이후 ‘어디에 사로잡히지 말고, 흉내가 아닌 마음 내키는대로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어요. 세상에 유능한 감독들이 많고 관객들의 눈을 꿰뚫은 분들도 많이 계신데 제가 지금 실력으로 도전하면 그분들을 능가할 수 없을 뿐더러 ‘자유롭게 썼을 때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정진영은 기존 영화적 문법과는 다른 스타일의 ‘사라진 시간’이 관객들에게 낯설고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도 이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정진영은 말했다. 특히,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중간에 시나리오를 보여준 적이 없는 정진영은 누군가에 보여줄 경우,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고 결국 모난 돌이 동그란 돌이 될 것이기에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기 위해 자신만의 철칙을 영화 촬영 전까지 지켜나갔다고 한다.

배우 조진웅을 생각하고 쓴 시나리오
정진영은 ‘사라진 시간’을 집필할 때 배우 조진웅을 떠올렸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이 어떻게 움직일까, 어떤 표정일까’를 머릿속에 그리고 가야 한다며 그러면 누군가를 모델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조진웅이라면 이렇게 했겠지’ 하면서 글을 작성했다고 한다.

“사실 불안한 것도 있었어요. 근데 어차피 내가 이상한 일을 하고 나중에 비난을 받더라도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조진웅 배우에게 보여줬어요. 초고를 쓰자마자 보냈는데 하루 만에 ‘하겠다’고 답이 와서 너무 고마웠죠. 보통의 경우, 주연배우의 의견을 묻고 시나리오를 고쳐주는데 조진웅 씨는 ‘내가 나온 부분 토씨 하나도 바꾸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더 행복했고 이 시나리오를 믿어준다는 게 정말 고마웠어요.”

이에 조진웅은 “굉장히 묘한 작품이었다. ‘이런 걸 어떻게 상상하고 쓰셨지?’라는 생각을 했다. 고민의 깊이에 대해 여쭙고 싶었다. 작품에서 오는 향이 굉장히 묘했고 현장에 들어가서 액팅을 하고 리액션을 하면 완성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서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출연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관객을 만나다
  • 이준익 감독, 김유진 감독 등도 정진영에게 큰 힘이 됐다. 정진영은 조진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준 후 다른 감독들에게도 시나리오를 가져갔고, 특히 이준익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줄 때 가장 많이 긴장됐다며 당시 상황을 언급했다.

    “이준익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정독해 정말 입이 바싹 말랐어요. 근데 좋은 시나리오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죠. 이어 ‘근데 이게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평가가 분명히 엇갈릴 수 있어. 그건 네가 감당해야 해’라고 하셨어요. 냉철한 말씀이셨지만, 좋은 시나리오라고 하셔서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후 김유진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고 욕을 먹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네가 이런 걸 쓸지 몰랐다’고 해주셔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진영은 첫 영화로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이에 정진영은 “어렵다기보단 논리적인 해석 경로를 통해 이야기가 와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단순하고 쉬우며, 오히려 관객들이 웃으면서 볼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근데 제가 생각하는 화두 같은 것들이 다소 관념적일 수 있어요.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있고, 남들이 규정하는 내가 있는데 우린 끊임없이 그걸로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저는 결국 ‘나는 뭘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관객들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보듯 ‘사라진 시간’ 속 이야기의 파도를 타고 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운 도전일 수도 있었지만, 그 화두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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