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는 장시간 운전의 오랜 친구이자, 지친 삶의 휴식처와도 같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1년 넘게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윤고은의 EBS 북카페’의 DJ 윤고은 작가를 만나봤다.
정리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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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생각하는
‘소설가’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나만의 집이 필요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 손을 떠나 책의 형태가 되면, 이제 ‘나만의 집’이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소설가라는 존재가 지도 제작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지도를 그리는 일을 하는 거죠. 누군가를 초대하는 기분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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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의 EBS 북카페’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책을 넘어 라디오를 통해 독자들과 교류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책만큼이나 라디오를 좋아하거든요.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 몇 가지 중에서 라디오 켜는 게 있었으니까요. 좋아하는 세계를 그 내부에서 바라볼 기회잖아요, DJ라는 게. 그래서 냉큼 뛰어든 거죠. ‘윤고은의 EBS 북카페’가 매일 두 시간씩 방송되고, 또 집과 스튜디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이 라디오가 훔친 셈인데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아무래도 책으로 독자를 만날 때는 제가 글을 써서 보내고 독자의 반응을 다시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라디오의 경우에는 훨씬 더 짧은 것 같아요. 생방송 중에 제가 어떤 말을 하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청취자가 그 말을 듣고 또 사연을 제게 보낼 수 있잖아요. 독자와 청취자, 비슷한 듯 다른 지점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느끼고 있어요. 물론 닮은 점이 더 많긴 하지만요.
독서 편식이 고민이라는 분들에게
고민 해결 방법을 알려주세요.
어차피 세상의 모든 책을 한 사람이 다 읽을 수는 없으니까, 내 마음을 이끄는 책들을 따라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어요. 독서 편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조급함을 느끼신다면 내 관심사를 조금만 옆으로 이동시켜도 좋을 거예요. 저는 책을 고를 때 키워드를 따라가거든요. ‘쓰레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서점 사이트에서 ‘쓰레기’라는 단어를 입력하는 거예요. 문학, 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등장하거든요. 그걸 따라가는 거죠. 아니면 책 큐레이션을 해주는 다양한 경로들을 쫓아가셔도 좋아요. 이를테면 ‘윤고은의 EBS 북카페’?(웃음) 다양한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다정한 동반자가 될 거예요. 요즘은 책을 눈으로만 읽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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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한국남부발전 직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가님의 책이 있나요?
소설집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에 직장 생활이 많이 나오죠. 단편 모음인데요, 그중에서 ‘우리의 공진’이란 작품을 보면 상사로부터 ‘볼일은 집에서 미리미리 보고 오라’는 말을 듣는 주인공이 나와요. 그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회사에서 만든 똥이니까요!’라고 대꾸하죠. 웃픈 느낌을 받으실 수 있는 작품이고요.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에는 재난여행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직장생활도 직장생활이지만 지금의 코로나19 상황과 겹쳐 보이기도 해서 공감하실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독서의 힘은 무엇인가요?
책은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통로예요. 시공간 이동이 가능하고, 언제든 열고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부피가 아주 작은 문이죠. 에너지라고는 책장을 넘길 정도, 그 정도만 있으면 되고요. ‘나’는 수많은 인생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그건 우리가 자주 망각하는 사실이기도 해요. 그걸 잊지 않도록 해주는 게 책이죠.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인생이 있거든요.
작가님의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제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이 최근에 <The Disaster Tourist >라는 제목으로 영미권에서 출간됐어요. 이 작품은 8년 전에 쓴 건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재난 관광이라는 게 또 새롭게 이야기되더라고요. ‘에코스릴러’라는 감상, 또 이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고 있어요. 8년 사이에 환경에 대한 제 관심도 더 커졌고요. 그래서 요즘 자주 받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음 소설로 또 채워나가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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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남부발전 직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설에 풍력발전기나 태양광을 등장시킨 적이 있어요. <해적판을 타고>라는 장편소설에서는 풍력발전기가 우리 삶의 은유처럼 등장하고요. 에너지산업 관련 뉴스를 일부러 더 챙겨보는 편인데, 이렇게 인터뷰 지면으로 한국남부발전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2020년은 모두에게 어려운 숙제 같은데, 어쩌면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의 안부를 더 자주 묻게 되는 시기일 수도 있겠죠. 견과류를 꼭꼭 씹어 먹듯이 하루하루를 알차게 기억하시기를, 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