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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너머

자연과 동화되어
풍경이 되는 곳

삼척, 그곳에 머물다
현대 문명은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안락함을 선사했다. 인간이 직접 해야 할 일을 줄여 시간의 여유를 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편리함뿐만 아니라 편안함이다. 이상하게도 편안함은 인공미가 빠질수록 더해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으로의 귀소본능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마음이 헛헛할수록 푸르른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일 게다.
강원도 삼척에서 자연과 동화돼 풍경이 되는 여행을 떠났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자연과 동화되어 절벽 위에 선 누각, 삼척 죽서루

관동팔경은 동해안에 있는 8곳의 명승지이다. 고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등이 있고 대관령의 동쪽에 있어 관동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조선 선조 때 송강 정철이 쓴 《관동별곡》 덕분에 관동팔경은 명성을 얻었다. 삼척의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에서 유일하게 맑은 강을 끼고 자리한다. 죽서루는 얼핏 보기에 경치 좋은 곳에 세운 오래된 누각처럼 보인다. 고려 시대부터 이곳을 지켜왔으니 장장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맷집 좋은 누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죽서루에 깃들인 옛사람들의 세계관은 놀랍기 그지없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품고 동화되는 것,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 그럼으로써 인공의 군더더기를 절제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삶. 이것은 수많은 금은보화나 명예보다 그들에게 더욱 중요한 삶의 가치였다. 문명의 편리함에 빠져 자칫 마음의 편안함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죽서루 앞에 서면 건축전문가가 아니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보인다. 누각을 받치는 기둥이다. 들쑥날쑥 하나같이 똑같은 높이가 없다. 평평하지 않은 천연 암반 위에 누각을 세우면서 17개의 기둥 중 9개는 자연 암반을 기초로, 나머지는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워 지은 까닭이다. 기술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오히려 목조 건축을 이해하는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이런 방식이 일반 건축술보다 더 까다롭다고 한다. 옛 선조들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랭이질’이라 불리는 전통 건축양식을 택했다.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며 돌을 깎아내는 대신 나무 기둥의 밑동을 잘라냈다. 돌과 나무를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로 잇는 것이다. 그랭이질이 제대로 된 기둥 위에 널판을 얹으면 그 위로 걸어 다녀도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한, 2층짜리 누각인데도 계단 없이 자연 암반을 이용해 드나들도록 설계됐다. 기둥이 홀수(17개)인 이유도 암벽 사이로 드나들기 편하게 한쪽은 기둥이 3개, 다른 쪽은 4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전통 건축의 진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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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선조들의 건축술이 고스란히 녹아 든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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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당대 최고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 글을 남긴 죽서루

죽서루에 머물다 간 이들

누각에 오르면 풍경이 장쾌하다. 기둥 사이는 벽이나 창호문 없이 모두 개방돼 있다. 바람 소리, 강물 소리, 풀벌레 소리가 일시에 어우러져 자연의 합주곡을 듣는 듯하다. 오십천의 푸른 강물과 어우러져 절벽에 우뚝 솟은 죽서루에는 어떤 이들이 머물렀을까. 죽서루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면서 당대 최고의 시인과 묵객이 줄줄이 찾아와 시조를 읊고 풍경화를 그린 명소이다. 누대 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현판이 그들의 흔적을 잘 말해준다. 그중에서도 조선 가사문학의 대표작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1536~1593)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 와서 내금강과 외금강,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명작을 남겼다.

“진주관 죽서루 오심천 내린 물이/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차라리 한강의 목멱에 대고 싶구나/왕정이 유한하고 풍경이 싫지 않으니/그윽한 회포도 많기도 하구나/나그네의 설움도 둘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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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죽서루 동쭉 연근당 자리 곁에 있는 자연 바위문(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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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암반을 이용해 지은 죽서루

조선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도 이곳에 들렀다.

“누가 하늘을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그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들판 저 멀리 산 봉우리에는 감푸른 빛 서려 있고/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시인은 본래 남모르는 한이 많다지만/깨끗한 이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요/온갖 인연 모두 떨쳐버리고 긴 낚싯대 들고는/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천하를 발아래 두었던 당시 명사들 또한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알고 자연과 어우러진 이곳에서 지난 삶을 반추하지 않았을까. 죽서루 아래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상념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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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작은 조명 하나만 밝혀도 분위기는 한결 감성적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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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한산한 가을날의 맹방해변

맹방 명사십리, 편안히 걷고 머물다

삼척시 맹방 바다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사십리’로 손꼽히는 곳이다. 명사십리란 4km에 걸쳐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해안을 뜻한다. 상맹방부터 덕산마을까지 쭉 이어지는 고운 백사장과 울창한 해송 숲은 맹방해변의 자랑이다. 맹방 해변을 즐기는 법은 여러 가지다. 우선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겨보자.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것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다. 차창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코발트 빛 바다를 조망한다. 눈부시게 흰 백사장 위로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점점이 서 있는 맹방해변 표지판과 감각적인 조형물이 가을 해변의 낭만을 더한다. 바다 옆 해송 숲은 맹방해변 산림욕장으로 이어진다. 2km에 달하는 해송 산책로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다. 길은 목재 데크길, 흙길, 보도블록으로 변화무쌍하다. 조금씩 길을 연장한 탓이다. 높다란 해송이 바람에 흔들리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가을 풀벌레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가 메마른 가슴으로 스며든다. 온갖 사건 사고로 인해 정서가 무뎌진 도시인의 마음마저 뒤흔든다. 운동기구와 데크로드 전망대를 거쳐 산책이 비로소 끝난다. 입구로 나와 맹방 해변산림욕장 안내도를 보고 기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그냥 길인 줄 알았던 산책로 일부가 돌고래 모양이었던 것. 길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그냥 걷기만 했다. 길 위에 있을 때는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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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한산한 가을날의 맹방해변

산책로를 빠져나와 맹방 바다를 향해 선다. 가을이 깊어지면 높은 가을 하늘을 닮아 바다 빛깔도 더욱더 푸르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동쪽 바다지만 붉은 기운이 밀려온다. 어두워지기 전에 밤을 준비한다. 언택트 여행 트렌드에 딱 맞는 차박 캠핑이다. 캠핑이라 할 것도 없다. 차를 세우면 바로 그곳이 여행자가 머무는 공간이니까. 차박 캠핑에 필요한 준비물은 많지 않다. 차 뒷좌석을 눕혀 잠자리를 마련할 만큼의 매트, 추운 밤을 덥혀 줄 침낭, 잠시 머물다 갈 미니 테이블과 접이식 의자면 족하다. 아쉽다면 감성적인 가랜드와 코튼볼 라이트를 트렁크에 매달고 분위기를 내보자.

나만의 시간을 음악으로 채워줄 무선 스피커와 은은한 조명, 살아있는 불빛을 비출 캔들도 차박 캠핑을 추억으로 채운다. 짐을 잔뜩 싣고 다니는 오토캠핑에 비하면 차박은 매우 미니멀하다. 먹을 것도 현지 음식을 포장해 와서 간단히 해결한다. 물건으로 채우는 대신, 비워진 시간과 공간을 편안하게 누리는 것이 포인트다. 흔적도 없이 조용히 왔다가 사라지는 차박 여행, 언택트 시대, 자연주의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임이 분명하다.

Travel Information

여행 팁

삼척에 왔다면 싱싱한 해산물을 빼놓을 수 없다. 삼척 번개시장이라 불리는 작은 새벽시장은 삼척의 새벽을 만나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새벽잠이 많다면 삼척항을 방문해볼 것. 싱싱한 횟감을 골라 식당에서 먹거나 포장도 가능하다.

내비게이션 정보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9-3 죽서루

문의

죽서루 033-570-3670

한국남부발전 삼척발전본부 사우가 추천하는 맛집

맹방해변과 장호해변을 옆에 낀 삼척은 청정 바다처럼 깨끗하고 시원한 해산물이 일품이다. 그중에서도 건조한 날씨 탓에 사라진 입맛을 돋우는 물회가 삼척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꼽히고 있다. 어느 한 곳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가게가 즐비한 만큼 물회가 먹고 싶다면 마음에 드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어느 곳을 가든 만족할 만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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