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화석연료에 원전의 위험성으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 문제,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 지구적인 화두다.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는 이 같은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트렌드 리포트 | 글 이은정 기자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1997년 교토의정서 이후 18년 만에 새로운 파리협약을 체결했다. 파리협약은 ‘산업혁명 시기와 비교해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섭씨 2℃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피해가 심각한 작은 섬 국가를 배려해 1.5℃까지 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후변화는 오래전부터 세계적 화두였다. 1906년부터 2005년까지 100년 동안 지구의 평균 온도는 0.74℃ 상승하고 한반도는 무려 1.5℃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 속도대로라면 2100년께 지구 온도가 최고 4℃ 상승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지구 온도 상승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노력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온실가스의 80%는 이산화탄소. 이산화탄소는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주로 발생하므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지구 에너지를 책임져온 화석연료는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과 절박함이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는 이 같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독일·덴마크 등 곳곳에서 자립 모델 속속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는 유럽을 중심으로 먼저 번졌다. 태양광, 풍력, 소수력, 지열 등 지역의 자연자원을 활용해 대규모 발전회사에 기대지 않고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곳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1970년대 핵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던 움직임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환경보호운동으로 발전하고 이를 도시 차원의 실천으로까지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경우다. 시와 시민이 함께 뜻을 모아 ‘에너지 절감과 다변화, 자원 순환, 녹색 교통’을 중심으로 꾸준히 에너지자립정책을 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일례로 프라이부르크에서는 모든 건물에 저에너지 건축물 기준을 적용하고, 단열시스템을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하는 패시브하우스 건축을 적극 지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20011년부터는 패시브 공법을 사용하는 건물에만 신축 허가를 내준다. 태양에너지산업과 연구를 장려하고 이런 기업과 연구소를 도시 내에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선다. 이처럼 철저한 계획과 시민들의 노력이 프라이부르크가 에너지자립도시의 모델로 자리 잡는 동력이 됐다.
독일 니더작센주에 있는 윤데마을은 곡물부산물·산림부산물·가축분뇨 등을 활용해 바이오에너지를 생산하며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바이오에너지자립마을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2006년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로 바이오매스를 사용하는 프로젝트로부터 시작했다. 특히 이곳은 주민들이 힘을 합쳐 에너지자립마을을 구현한 곳으로 해마다 이산화탄소 3,300톤가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덴마크 삼소도는 세계 최초의 에너지자립섬으로 꼽힌다. 10년간 정부 보조금과 주민 및 협동조합의 투자로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덴마크의 기후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신재생에너지 자립모델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삼소도는 풍력발전소와 태양광발전소 등을 통해 전력의 100%, 열 수요의 70%가량을 공급한다.
이 밖에도 유럽 곳곳에서 지역의 자연자원을 활용한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로의 변화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마을에 이어 서울·제주 등 도시 단위로 확장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 규모가 세계 9위인 데다,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하는 만큼 에너지 위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 7위 규모의 온실가스 배출국가다.
국내에서는 초창기 마을을 중심으로 에너지 자립 움직임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곳이 충남 아산의 예꽃재마을이다. 이곳은 에너지자립마을 1호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건물 설계부터 건축까지 에너지 절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마을에 있는 모든 집에 태양광 패널과 지열 설비를 설치했다. 이 덕분에 집집마다 사용하는 전기는 태양광으로 충당하고, 남은 전기는 한국전력으로 송전해 매달 전기료를 절감한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에너지 취약지역임에도 지열을 이용해 사계절 내내 난방과 온수를 필요한 만큼 쓴다. 현재 이곳의 에너지자립비율은 80~90%에 달한다.
전북 부안군 등용마을은 국내 최초로 주민들이 주도해 일군 에너지자립마을이다. 2003년 위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추진을 반대하면서 핵 폐기장 예정부지 인근에 주민들이 주도해 에너지자립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현재 등용마을은 태양광 발전설비, 태양열 난방시설, 온수기, 지열 냉난방시설, 나무펠릿 보일러 등을 갖추고 에너지를 생산한다.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절약을 두 축으로 진행해 현재까지 전기에너지는 100% 자립에 성공, 앞으로 마을 전체 에너지의 50% 이상을 자급한다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최근에는 마을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지는 추세다. 서울은 2012년부터 마을공동체지원사업을 통해 공동주택, 단독주택마을을 대상으로 현재 55개의 에너지자립마을을 운영 중이다. 국내 최고의 에너지 소비도시에서 가장 앞서가는 친환경에너지 생산도시로, 에너지 의존도시에서 에너지자립도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서울의 친환경에너지 생산량은 2012년 3만5천TOE(석유환산톤)에서 2016년 말 39만TOE로 늘었다. 전략사용량 또한 2011년과 비교해 3.24% 감소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1996년부터 풍력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한 제주는 현재 17곳에서 풍력발전소를 가동하며 에너지 자립에 앞장서고 있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전기에너지의 100%를 충당하는 세계 최초의 ‘에너지자립섬’으로 변신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중이다.
지속가능성 그리고 시민의 열망
전문가들은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의 핵심이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를 지속 가능케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해답은 독일 윤데마을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 바이오에너지로 자급자족하며 경제를 일군 독일 윤데마을은 최근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의 전기 생산비용이 크게 낮아지면서 바이오에너지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윤데2.0프로젝트’를 추진해 바이오에너지의 효율을 3배 이상 높이며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위기에 대응해나갔다.
전북 부안 등용마을도 눈여겨볼 사례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부터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정부 보조금이나 지원이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에너지 문제를 삶과 연결 지어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실천했다는 것.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해 보인다.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는 햇빛과 바람, 물, 땅의 힘에 시민들의 열망과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친환경에너지자립도시를 향한 변화의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