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리포트
버려지는 폐열이 새로운 가치를 얻다
단순하게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업사이클링이 대세다. 에너지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버려지는 폐열을 새로운 자원으로 인식하고 에너지 효율을 크게 향상시키는 에너지 업사이클링이 유한한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고 환경오염까지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다.
트렌드 리포트 | 글 이은정 기자
업사이클링(up-cycling)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recycle)의 합성어다. 이 용어를 처음 언급한 독일 디자이너 리너 필츠는 ‘낡은 제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업사이클링은 기존에 쓰임을 다했다고 버리던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더해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1993년 스위스 형제 마르쿠스 프라이탁과 대니얼 프라이탁이 트럭을 덮던 방수 천으로 만든 프라이탁 가방이 최초이자 대표 사례다. 이후 업사이클링은 소비재뿐만 아니라 산업분야, 공간 등으로 범위와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하며 빠르게 번져나갔다. 에너지 업사이클링은 에너지 부문에 이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기존에 버려지던 폐열을 새로운 자원으로 인식하고 에너지 효율을 크게 향상시키는 것을 말한다.
50% 이상 버려지는 폐열은 자원 낭비에 환경문제까지 야기
열은 주변에서 흔히 접하고 찾을 수 있으면서도 가장 다루기 힘든 에너지원 중 하나다. 석유나 석탄, 가스 등과 달리 저장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폐열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용하는 과정에서 쓰이지 못하고 외부로 빠져나가는 모든 열을 말한다. 보일러 배기가스열이나 발전소 냉각수열 등 에너지를 사용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발생하고 폐가스, 폐온수, 폐증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사용하는 열에너지는 50% 이하이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려진다는 점이다. 대형 발전소의 경우 50%를 웃도는 폐열을, 30년 이상 노후한 발전소는 65% 정도의 폐열을 그대로 허비하게 된다. 폐열은 생산된 에너지가 쓰이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이므로 유한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며, 폐열 자체가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폐열을 회수해 활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7% 정도 줄일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 이 때문에 폐열을 새로 활용하는 에너지 업사이클링은 유한한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고 환경오염까지 줄이는 대안으로 부상했다. 특히 열병합 발전이 보급되면서 폐열을 새로 활용하는 업사이클링은 더 활발해졌다. 열병합 발전은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주변에 난방이나 온수로 제공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유럽은 환경선진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미 오래전부터 에너지 업사이클링을 활발하게 추진해왔다. 그 결과 덴마크는 전력 수요의 절반을, 핀란드는 39% 정도를 폐열을 새로 활용해 충당한다. 스위스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베즈나우발전소도 발전과정에서 나오는 폐열을 지역난방 시스템인 REFUNA를 통해 인근의 11개 마을에 난방용으로 제공한다.
재밌는 것은 에디슨도 이미 오래전에 폐열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아봤다는 점이다. 그는 1882년 뉴욕 맨해튼에 세계 최초로 상용발전소를 건설했을 때 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온의 증기를 인근 건물에 난방열로 판매했고, 폐열발전시설을 집집마다 구비하는 주거문화를 구상하기도 했다.
관련 산업분야에서 폐열 활용방안·기술 개발 착착 진행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다양한 영역에서 업사이클링에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철강분야와 화학공장, 대형 선박, 열병합발전소 등 운용 과정에서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에 주목하고 이를 회수해 새로 활용하는 방안을 활발히 연구 중이다.
한국전력공사와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은 2년 전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 등의 엔진 배기가스 등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하는 차세대 발전설비의 원천기술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대형 선박의 배기가스 온도가 저감장치를 따로 달아야 할 정도로 높다는 점에 착안해 온도저감장치 대신 폐열회수장치를 설치해 폐열을 새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전과 현대일렉트릭은 현재 성능 및 실증시험을 진행하며 내년에 제품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일찌감치 철강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가스로 전기를 만들어 비용 절감에 나섰다. 포항제철소의 경우 부생가스 대부분을 공정 에너지원으로 회수해 사용하거나 자가발전 원료로 활용해 총 전력 소비량의 68%를 자가발전으로 생산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기존에 산업단지 내에서 이뤄지던 자원순환 네트워크를 확대해 지역사회 주민 편익과 자원 재활용을 높이는 지역친화형 자원순환 네트워크를 꾸준히 추진했다. 산업단지 내 입주기업에서 발생한 폐열을 회수해 음식물폐기물 건조설비나 농가 비닐하우스, 공공시설과 주거시설 등 에너지가 필요한 곳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 산업단지인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는 폐열을 주변의 다른 여러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스팀하이웨이를 구축해 주목받았다. 폐열을 발생시키는 기업과 폐열이 필요한 기업이 스팀하이웨이에 접속배관만 연결하면 된다. 스팀공급기업은 폐열을 활용해 이익을 얻고 스팀수요기업은 공장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그만큼 절약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산업은 폐열을 새로 활용하는 업사이클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폐열 재활용으로 경제효과 톡톡
에너지 절약과 환경문제 해결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빠질 수는 없다. 서울시는 일찍부터 의정부 등 지역발전소에서 버려지는 폐열을 지역난방과 전력으로 활용하는 에너지 업사이클링을 시행했다. 지역난방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은 물론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생태산업단지를 구축해 산업단지 입주기업에서 발생하는 부산물과 폐열을 다른 기업의 에너지로 재자원화하고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데 앞장섰다. 도는 생태산업단지 운영으로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경제효과와 2억 톤의 환경오염 저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쓰레기소각장에서 발생하는 소각열로 고온의 증기를 만들고 이것으로 온수를 만들어 온실을 덥히는 데 사용하는 전남 보성의 경우처럼 폐열을 업사이클링해 농업에 적극 활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은 2015년 산업폐열의 농업적 활용을 확대하기 위해 산업폐열 분포 지도를 작성하고 산업폐열의 농업적 활용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한편, 이 같은 대단위·대규모 움직임 외에 실생활에서 에너지 업사이클링을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예도 있다. LED칩 전문제조업체인 세미콘라이트가 촛불에서 버려지는 열과 LED칩을 업사이클링한 LED스탠드램프 ‘쉐어라이팅’이 대표적이다. 자사에서 생산하는 1억 개의 LED칩 중 5%에 달하는 쓰지 못하는 칩을 활용해 만든 이 제품은 기존 스탠드처럼 전기를 따로 연결하지 않고 단순히 촛불만으로 빛을 만들어낸다. 촛불은 빛을 낼 뿐만 아니라 열도 함께 내보내는데 이때 열은 따로 사용되지 않고 그대로 버려진다. 쉐어라이팅은 온도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제백효과로 버려지는 촛불의 열을 전기로 전환하고 이 전기로 LED빛을 증폭시킨다. 일반 초 대비 100배가량 밝기를 자랑하는 이 제품은 현재 빛이 귀한 동티모르나 스리랑카, 베트남 등의 오지마을에 기부돼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 폐열은 더는 버려지는 운명에 머물지 않는다. 발전한 기술과 사람들의 인식 전환에 힘입어 새로운 자원으로 당당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에너지부문의 업사이클링이 얼마나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주목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