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리포트

에너지 하베스팅

일상에서 전기를 수확한다고?

일상생활 곳곳에서 전기에너지를 모아 쓸 수 있다면 어떨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에너지 하베스팅이다.
자연 및 주변 에너지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 활용 기술인 것. 에너지 고갈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트렌드 리포트 | 글 이은정 기자

자연에는 무수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태양빛, 바람, 물 등이 모두 자연 에너지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누르는 압력에너지가 생기고 따듯한 차 한잔에 몸이 따듯해지면 그만큼 열에너지가 발생한다.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면 빛에너지가 나오고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면 진동과 열에너지가 생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에너지다. 문제는 우리가 쓰고 있거나 쓸 수 있는 에너지는 극히 일부라는 데 있다.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은 이런 에너지를 모아 전기로 바꿔주는 개념이다. 에너지를 수확한다는 의미 그대로, 일상에서 무심히 버려지는 에너지를 수집해 전기에너지로 전환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1954년 미국 벨연구소에서 태양전지기술을 발표하면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이후 꾸준히 발전해 현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2015년 미국 MIT 공대에서 ‘미래 10대 유망기술’로 꼽았으며 미국 과학 매체인 「POPULAR SCIENCE」에서는 ‘세계를 뒤흔들 45가지 혁신기술’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주요 기술로 부상

버려지는 에너지도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에너지 하베스팅이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지구 온난화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지구는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겨울만 해도 북반구인 미국은 살인적인 한파로 꽁꽁 얼어붙었고 남반구인 호주는 잇따른 폭염주의보에 시달렸다. 일례로 미국 뉴햄프셔주 마운트 워싱턴 지역은 기온이 영하 38℃, 체감온도가 영하 69.4℃까지 떨어졌고, 호주 시드니 서부 펜리스 지역은 반대로 47.3℃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이상기후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이에 지구 곳곳에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이 줄을 잇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 하베스팅이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단순히 에너지 사용을 줄이자는 의미가 아니라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 재사용할 수 있는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로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기기들이 빛이나 소리, 움직임 등의 정보를 포착해 수집하고 이를 활용하는 IoT 시대에는 이를 가능케 하는 수많은 센서에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일일이 설치하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이때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에너지 하베스팅이다. 센서가 주변에서 에너지를 수확해 전기에너지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배터리 전력의 필요성이 줄거나 아예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전·압전·열전·RF 등 다양한 원리에서 응용

에너지 하베스팅은 크게 광전효과, 압전효과, 열전효과, RF기술 등 4가지 원리를 가장 많이 활용한다. 가장 먼저 개발된 광전효과는 빛을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금속 등이 고에너지 전자기파를 흡수할 때 전자를 내보내는 현상으로, 이를 활용한 대표 사례가 바로 태양광전지다. 압전효과는 압전 특성이 있는 물질에 압력이나 진동을 가하면 전기가 생기고 반대로 전기를 가하면 진동이 생기는 현상이다. 가스레인지에 압력을 가하면 전기 스파크를 발생시키는 장치가 압전효과를 이용한 대표 사례다. 이 방식을 활용한 에너지 하베스팅은 압전소자라는 장치에 압력을 가해 전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수시로 누르는 리모컨이나 스위치 등에 압전소자를 설치하면 압력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전환되면서 배터리가 필요 없게 될 수 있다. 열전효과는 버려지는 폐열에서 전기를 얻는 방식이다. 금속 같은 전도체에서 한쪽에 열을 가하면 다른 부분과 온도차가 생기면서 전기가 발생하는 열전 현상을 이용한다. 열전효과를 이용하면 우리 몸의 체온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다. 가령 피부에 부착된 부분과 공기 부분의 온도차를 이용하면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고 여기에 열전소자를 설치하면 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을 뜻하는 RF도 에너지 하베스팅에서 주목받는 기술이다. 전자기파를 수집해 전기로 바꿀 수 있는 것. 현재 이 같은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 연구는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해결 과제 산적 VS 대안 기술 속속 등장

영국 시장조사 기관인 아이디테크엑스(IDTechEx)에 따르면 전 세계 에너지 하베스팅 시장 규모는 2022년에 52억 8,07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실제로 널리 대중화된 태양광전지 외에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일상에서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도쿄역 개찰구 앞에는 이용자들이 밟고 지나가는 지하철역 바닥에서 전기를 얻기 위해 발전마루가 설치돼 있다. 압력을 전기로 바꾸는 압전소자를 이용해 이 역은 이용자가 많은 날에는 하루 960kW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알려졌다. 이스라엘에서도 도로, 철도, 공항 활주로에 압전 발전기를 설치해 도로를 통과할 때 발생하는 압력, 진동에너지로 신호등, 철도 차단기, 가로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멀리 갈 것 없이 국내에서도 크고 작은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해에는 한양대 연구진이 탄소나노튜브를 꼬아 만든 인공근육을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하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최첨단 실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명칭은 트위스트론. 연구진은 이 실을 응용하면 휴대전화를 배터리 없이 작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가령 트위스트론 실로 꿰맨 티셔츠를 입고 숨을 쉬면 호흡에 따라 생기는 가슴 넓이의 변화가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또, 국내 기업 크루셜텍은 배터리가 필요 없는 지문인식 스마트카드를 출시했다.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과 초저전력 지문인식 솔루션을 접목해 개발한 이 제품은, 신용카드 결제에 흔히 사용하는 포스 단말기나 출입 단말기 등에는 IC 구동을 위해 자기장이 발생하는데 여기에 카드를 갖다 대면서 유도되는 전류만으로 지문인식을 구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밖에 한전 전력연구원이 배전설비 관리를 위한 IoT용, 무선센서용 에너지 하베스팅 전원장치를 개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더 많은 분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발전 효율을 높이고 내구성, 유지 보수 문제 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단점은 출력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태양광전지는 흐리거나 비가 오면 제 몫을 다할 수 없고, 압전효과를 이용한 도쿄역에도 이용자가 줄어들면 발전량이 줄어든다. 물론, 전문가들은 에너지 하베스팅이 다양한 장소, 다양한 행위에 의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인 만큼 다양한 대안 기술이 등장한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신의 체온으로 휴대폰을 충전하고 신발을 신고 걷는 동안 전기에너지를 축적해 집 안 조명을 켤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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