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콘크리트 기법(외장재 없이 건물의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법)’으로 ‘프리츠커상’을 비롯해 세계적 건축상 150여 개를 휩쓸며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거짓말 같은’ 성공기를 들춰봤다.
커리어 up | 글 박근희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섹션 기자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빛의 교회’와 홋카이도의 평원에 있는 ‘물의 교회’는 ‘콘크리트로 쓴 시(詩)’라 평가받을 만큼 건축미가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노출 콘크리트 벽을 뚫고 투사된 자연광이 십자가 그림자를 만드는 ‘빛의 십자가’, 마치 물 위에 뜬 듯 인공호수 위에 조화롭게 세워진 ‘야외 예배당’은 건축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과거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던 일본 시코쿠의 섬 나오시마(直島)는 1987년 진행한 예술 프로젝트로 한 해 30만 명이 방문하는 문화와 예술의 섬으로 자리 잡았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근대 건축의 아버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5)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시작한 건축
오사카 변두리 고졸 출신의 권투선수였다. 학교에선 싸움이나 하는 사고뭉치였고, 함께 사는 가족이라곤 외할머니밖에 없었다. 생계를 위해 대전료를 벌었고 당대 최고 복서 하라다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 놀라 낡은 글러브를 벗어 던졌다. 가야 할 길을 잃은 청년은 백수로 지내며 잠시 방황했고 문득 중학교 2학년 시절, 목수가 고쳐주던 외할머니 집 지붕이 생각났다. 지붕을 해체할 때 천장에 큰 구멍이 생기자 어두침침한 동굴처럼 좁고 긴 공간 속으로 갑자기 빛이 비쳐 들었을 때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청년은 막연하게나마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건축과에 진학한 친구에게 부탁해 전문 서적 몇 권을 산다. 그리고 첫 목표가 생긴다. ‘책을 읽고 또 읽어 친구들이 4년 걸려 이해하는 것을 1년 만에 독파하자!’ 목표를 세우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오로지 책과 싸웠다. 의지와 정신력으로 목표했던 1년 만에 갖고 있던 모든 건축 책을 달달 외웠다. 이후엔 데생, 그래픽디자인, 인테리어 등 건축과 관계 있을 법한 분야를 통신교육으로 배웠다. 낮엔 아르바이트, 밤엔 통신교육을 받으며 주경야독했다. 그것이 안도 다다오(이하 안도) 건축의 시작이다.
안도가 오사카 도톤보리에 있는 고서점인 덴규(天牛) 서점에서 세계적인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 작품집과 운명적으로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는 당장 살 수 없는 그 책을 누군가가 사가지고 갈까 봐 서점에 들를 때마다 몰래 밑에 숨겨두곤 했다고 회상했다. 수개월 후에야 그 책을 손에 넣었지만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아 책 속의 도면들을 베껴 그리기 시작했다. 도면을 베껴 그리다 보니 슬슬 도면 속 건축물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곧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해 책에서 봤던 건축들을 직접 보러 가자!’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안도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꿈꿔왔던 유럽 건축 답사를 실행에 옮긴다. 러시아·핀란드·스위스·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프랑스·오스트리아·인도·미국 등을 돌며 최대한 많은 건축을 보겠다는 일념에 체력이 견디는 한 끝없이 걸어 다녔다.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비록 그가 프랑스에 도착하기 직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독자적인 건축관을 정립했다. 여행을 하면서 ‘건축이란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안도는 단순히 건축학과 관련된 책만 탐독하지 않았다. 『미야모토 무사시』, 『오층탑』 등을 감명 깊게 읽으며 건축가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 삶의 자세 등을 배워간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지독하게 걷고자 마음먹는다.
‘답사’로 발품 팔며 책의 한계 극복
안도는 독학하며 공간을 직접 체험해야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교토, 나라에 있는 일본 건축의 진수들을 부지런히 눈에 담는다. 그는 답사와 여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건축을 보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갔다. 단순히 건축물을 훑는 것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인간성과 인생, 그 건축이 완성된 시대성까지 읽어내려는 연습을 끊임없이 했다. 하지만 건축 전문대학을 나오지 않은 데다 건축기사 자격증마저 없었던 20대 초반의 안도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전공’과 ‘자격증’이라는 핸디캡이었다.
안도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까다롭다는 ‘1급 건축사’ 자격증에 도전한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상황에서 2급 건축사 자격 요건을 갖추려면 7년 이상 실무 경험이 필요했다. 2급 건축사 자격증을 딴 후 3년 뒤에라야 1급 건축사 시험을 치를 수 있다. 그는 목표를 세운 뒤 빵 두 개로 점심을 때우며 건축 전문 서적을 읽었고 쉬는 일요일엔 전차를 타고 나라나 교토에 있는 사찰을 찾아가 건축을 살펴보며 공부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그는 2급 건축사에 이어 1급 건축사 모두 단번에 합격하며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을 걷는다. 때마침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1969년 아내와 직원 한 명을 두고 처음 사무실을 열었을 땐 의뢰가 없어 매일 천장을 바라보며 몽상하거나 책을 읽는 게 일과였다. 그러던 중 나라의 긴테츠(近鐵) 학원 앞 부지를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 도전해 입상하며 ‘무한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공터만 보면 제멋대로 상상해 건축 계획부터 하고 토지 소유주를 찾아가 계획한 건축 설계를 역으로 제안했다. 물론 대개 거절당하기 일쑤였지만 그는 일련의 과정에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철학을 갖게 됐다.
‘재미있는 발상’ 인정받아 뉴욕 MoMA, 프랑스 퐁피두 센터서 개인전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1976년 오사카에 건축한 ‘스미요시의 연립 주택’으로 일본 건축학회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1980년대 후반엔 오사카 나카노시마에 있는 중앙공회당 재생안에 대한 건축 계획으로 그는 큰 설계를 도맡게 된다. 비록 재생안 건축 계획 제안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 설계안을 보곤 아사히 맥주 사장 히구치 히로타로가 “재미있는 발상”이라며 설계를 맡긴다. 비슷한 시기에 아사히 맥주의 라이벌 회사 격인 산토리 맥주 사장 사지 게이조도 뮤지엄 설계를 의뢰했다. 이후 교세라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까지 자유롭고 대담한 경영자와 문화인들을 만나면서 미술관, 공공건물, 교회나 절을 많이 지었다.
이즈음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게 된다. 1982년 프랑스 건축가협회 I.F.A로부터 개인전 초대를 받은 후 세계 건축 잡지에 등장하는 저명한 건축가들과 교류하며 해외파로 급부상하게 된다. 1991년엔 뉴욕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1993년엔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일본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게 된다. 현대미술의 세계적 전당인 두 곳에서 생존 인물의 개인전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람회는 건축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놓기에 좋은 기회지만 환영받기보다는 비판에 노출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안도는 스스로 비판의 장에 놓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땐 큰 불안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그 불안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경험들이 먼 훗날까지 스스로에게 큰 힘이 된다고. 비록 안도는 제도권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1995년 ‘건축계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1997년엔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 교수직까지 맡았다.
그는 강연에서 자신이 건축학을 전공하거나 설계사무소에서 수습 시기를 거치지 못한 것이 여전히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다만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자신의 인생과 부딪히는 방법이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뚜렷한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차근차근 이뤄나갔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그를 끊임없이 채찍질했으나 그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제도권 교육을 받는 학생들보다 더 치열하게 책을 읽고, 답사하며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해갔다.
환영받지 못하던 ‘콘크리트’라는 건축 재료로 50년 동안 지구에 아름다운 건축들을 남긴 안도 다다오는 현재 일흔다섯의 나이에 췌장암 투병 중에도 오사카에 있는 자신의 건축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그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이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만큼 하루하루를 전력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고.
안도 다다오의 성공 키워드 ‘오롯이 혼자’
▲복싱에서 배운 자립의 법칙_“복싱은 로프로 둘러싸인 사각 링 위에서 상대 선수와 마주한 채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극한까지 싸운다. 최후에 의지가 되는 것은 나 자신의 힘밖에 없다. 사회도 나에게는 하나의 링인 것이다.” 안도가 쌍둥이 동생에게 지기 싫어 프로 복서로 데뷔해 복싱에 열중했던 시간은 1년 반 정도였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 링 위에서 배운 자립의 법칙은 독학을 하거나 건축을 할 때도 적용했다.
▲목표 설정, 그리고 직진_20대 초반 안도는 건축사무소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의뢰인으로부터 “당신은 1급 건축가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안도는 그 길로 자격증에 대해 알아봤고 고졸 출신의 비전공자가 따려면 10년이 걸린다는 1급 건축가 자격증 코스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빵으로 혼자 점심을 해결하며 자격증 시험에만 몰두하느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 통해 역사의식과 혼자의 힘 자각_안도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큰 사건을 많이 목격했다. 1968년 홀로 유럽 건축 답사 중 베를린 공항에서 미국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사망 소식을 들었고 1979년 서울 공항에서 유럽으로 떠나려던 길에 박정희 대통령 암살 소식을 들었다. 2011년엔 나리타 공항 상공에서 ‘도호쿠 지방의 대지진’ 소식을 접했다. 그는 “여행지에서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과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일을 역사의식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과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