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리포트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 지속경영 좌우한다

‘무엇을 제공하느냐’만큼이나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중요해진 시대에,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신기후체제 아래 각국 에너지 및 기후변화 정책에 부응하며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고 더 건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상했다.
트렌드 리포트 | 글 이은정 기자

재생에너지 100% 선언한 글로벌 기업 점점 확대

애플은 올해 4월, 전 세계 모든 사업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 중국, 인도 등 세계 43개국에 있는 리테일 매장과 사무실, 데이터센터 등은 물론이고, 총 23개 협력업체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모든 애플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애플의 청정에너지 프로젝트는 바이오가스 연료전지, 초소수력 발전시스템과 에너지 저장기술 같은 새로운 기술뿐만 아니라 태양광발전시스템, 풍력발전 등 다양한 범위의 에너지를 포함한다. BMW는 2020년까지 풍력과 태양광, 바이오가스 자가 설비를 구축하고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100% 재생에너지 사용 계획을 발표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맥주 제조업체 칼스버그그룹은 2022년까지 양조장에서 100% 재생가능 전기로 전력을 충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중국에 태양전지 패널 8,000개 이상을 설치하고 전 세계 18개 양조장 폐수에서 바이오가스를 추출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며 2016년에 이미 약 45%에 달하는 전력을 재생에너지에서 얻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했거나 계획하는 글로벌 기업이 점점 느는 추세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속되는 온난화에 대응해 지구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이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촉발한 계기로 작용한 것은 2014년 ‘RE100이니셔티브’다. RE100이니셔티브는 다국적 비영리단체인 기후그룹(The Climate Group)이 미국 뉴욕 기후주간 행사에서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 데 따른 것으로, 에너지 소비자인 기업들을 참여 대상으로 규제에 의한 강제 이행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올해 10월을 기준으로 구글, 애플, 제너럴모터스, 이케아, 나이키 등 세계 154개국 글로벌 기업이 가입했고 이 중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스위스 포스트 등 30곳이 넘는 기업이 이미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했다.

국내 기업에도 RE100 요구 압박 거세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 RE100이니셔티브에 가입해 공장과 사무실, 건물 등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가운데, 국내 기업에도 같은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SK하이닉스는 공급처인 애플로부터 납품 제품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LG화학도 BMW와 폭스바겐으로부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 같은 요구를 받았다. 네이버는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압력을 받아 이미 데이터센터에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 중이다. 문제는 글로벌 기업들의 요구는 갈수록 까다롭고 명확해지는 반면, 이런 요구조건을 맞추지 못해 거래가 무산된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실제로 LG화학은 BMW로부터 전기차 배터리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요구를 받고 폴란드 공장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했으나 거래가 결국 무산됐다.
이 같은 시대적 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나선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가장 먼저 시동을 건 것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중장기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을 발표하고 재생에너지 사용과 확대를 지원하는 단체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계획에 따르면 수원사업장 내 주차장과 건물 옥상 등의 공간에 4만2,000㎡ 규모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내년에는 평택사업장, 2020년에는 화성사업장에 태양광과 지열 등 약 2만1,000㎡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한다. 또 2020년까지 미국과 유럽, 중국에 있는 제조공장과 빌딩, 오피스 등 전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며 국내에서도 태양광 패널 설치 외에 다양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노력으로 2020년이면 모든 글로벌 사업장에서 약 3.1GW급 태양광 발전설비에서 생산되는 재생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국내 약 11만5,000여 가구(4인 기준)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SK하이닉스는 친환경적인 반도체 생산 공장을 전면에 내세운 ‘2022ECO비전’을 담은 지속경영 중장기 목표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2016년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BAU)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 폐기물 재활용률 95% 달성, 해외사업장 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 구체적인 목표와 실천사항이 명시돼 있다. 개발도상국에 30만 톤 상당의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지원하고,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재활용률 95%를 달성하며 중국과 미국, 유럽 등 해외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기업 경쟁력 가늠하는 필수요건으로 부상

한편,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와 압박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하나둘 변하기 시작한 가운데 국내에는 해결해야 할 우선과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의 핵심은 온실가스 감축인데, 국내 전력공급체계로는 이를 충족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RE100이니셔티브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시작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중국과 미국,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구매권을 사들여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할 수 있는 반면 국내에는 재생에너지 구매제도가 없어 불가능하다. 현재 기업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구매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내에 이 제도가 없으니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거나 온실가스를 기술적으로 감축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지 않으면 국내 제조업에 심각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 정책 변화 외에 국내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단체들이 국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고 국가재생에너지 전환 시점에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경제적 가치를 제고하는 측면에서 스스로 장기 수급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회사 내부에 탄소세제도를 도입하고 공정별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양만큼 세금을 걷어 이를 펀드로 조성해 재생에너지 구매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기업 전반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100%를 달성했다. 이처럼 각 기업에 알맞게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제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필수요건으로 부상했다. 실제 RE100 외에 탄소공개 프로젝트나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 등과 같은 국제 이니셔티브 대응이 국제신용평가사 및 투자사들에서 기업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았다. 기업의 지속경영을 좌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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