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한 남자가 미국 일주를 떠났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날카로운 눈빛. 언뜻 성질 사나운 할배처럼 보였다. 남자의 이름은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1902~1968).
『분노의 포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작가였다. 당시 스타인벡은 58세로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그런데 직접 차를 몰고 미국 일주를 하겠다며 나선 것이었다.
책+여행 | 글+사진 이준명 인용 『찰리와 함께한 여행』(궁리, 2006)
미국 일주의 동반자 찰리
스타인벡이 미국 일주를 선언하자 주변에서 모두 말렸다. 젊지 않은 나이에 길 위에서 객사라도 할까 봐 염려했다 할까. 게다가 스타인벡 같은 유명인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스타인벡은 캠핑용으로 개조한 트럭을 주문했다. 여행하면서 되도록 숙소나 음식점에 들르지 않고 모든 것을 차 안에서 해결하기로 한 것. 주문한 트럭이 도착하자 옆면에 ‘로시난테(Rosinante)’라고 써 넣었다. 로시난테는 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던 애마다. 돈키호테가 누군가.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고집쟁이 기사 아닌가. 자신을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더는 구시렁거리지 말라고 경고한 셈이었다.
그래도 16,00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혼자 가기에는 너무 심심했다. 그렇다고 까다로운 자신에게 맞출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프랑스산 푸들인 ‘찰리’를 데려갔다. 푸른빛이 도는 털을 지닌 찰리는 덩치만 컸지 겁쟁이다. 약간의 인기척만 있어도 요란하게 짖고 으르렁댄다.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대고 잘 때 훌륭한 감시견이 되어줄 터였다. 하지만 찰리의 가장 큰 역할은 따로 있었다. 낯선 사람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아침에 일어나 찰리를 풀어주면 주변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스타인벡은 커피 한잔 마실 동안 찰리를 내버려 두었다가 사람들이 성가시게 여길 즈음 데리러 간다. 그러면 찰리에게 관심을 보인 여행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는 것이었다. 찰리는 여행자와 사귈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절단이었다.
항상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스타인벡은 미국 일주 중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똑같은 표정을 발견했다. 지금 여기를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코네티컷주에서는 상점 주인이 로시난테를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아, 나도 갔으면 좋겠다!” “왜 여기가 맘에 안 드십니까?” “아닙니다. 여기도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가고 싶군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시면서 그래요?”
“그거야 상관없습니다. 아무 데나 가고 싶은 걸요.”
사람들은 명확한 목적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냥 아무런 구속 없이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스타인벡은 이런 상태를 스페인어 단어인 ‘바실란도(Vacilando)’를 빌려 표현했다. 어떤 사람이 바실란도하고 있다면, 그는 어딘가로 가려는 사람이며, 가려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목적지에 도착할지 말지는 괘념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는 모습이랄까.
스타인벡은 사람들의 이런 표정들 속에서 미국인의 일면을 깨달았다. 미국인은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200여 년 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이민자들 또한 새로운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결국 현재의 미국인은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행자의 후손인 셈이었다.
추억 속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드넓은 대륙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한 스타인벡은 마침내 고향 땅인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는 스타인벡이 젊은 시절을 보낸 도시이다. 가난 때문에 부두에서 일하고 공원에서 자는 힘든 나날을 보낸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차를 몰고 들어섰을 때 감회가 깊었다. 해협 너머로 그 옛날 치열한 삶을 살았던 도시가 찬란하게 펼쳐졌다. 저명한 작가가 되어 돌아온 자신을 반긴다는 듯이.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항구도시이다. 삐죽이 튀어나온 반도 끝에 있어 다리를 통해 오가곤 한다. 다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금문교(Golden Bridge)’이다. 길이 2,737미터짜리 다리가 파도가 출렁이는 해협 위에 걸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이 다리를 보기 위해 매년 천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몰려온다. 바다에서 안개가 밀려올 때면 다리가 하늘 위에 붕 뜬 것처럼 보인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역작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야트막한 언덕들 위에 세워졌다. 40여 개의 언덕이 연이어 있어 걸어 다니기 힘들다. 그래서 트렘과 비슷한 케이블카를 자주 이용한다. 언덕 하면 롬바르드 스트리트(Lombard Street)를 빼놓을 수 없다. 어찌나 경사가 심한지 도로를 꼬불꼬불하게 만들어 놓았다. 차들이 쩔쩔매며 언덕을 내려오는 모습이 재미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샌프란시스코의 전경도 일품이다. 오랜만에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스타인벡이 ‘태평양 상공의 푸르름을 배경으로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이 백색과 황금색의 아크로폴리스’라고 찬양할 만하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향해서
자신이 태어난 몬테레이에 들렀을 때 스타인벡은 또 한 번 실감했다. 미국인이 고향을 떠나 온 여행자라는 걸. 옛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변해버린 마을과 늙어버린 친구들의 모습에서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의 뿌리였던 고향도, 그곳을 떠나 있던 자신도 이미 변해버렸다. 고향에서 한낱 이방인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은 스타인벡은 도망치듯 몬테레이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미국 일주라는 거창한 계획마저 단축한 채 서둘러 뉴욕을 향해 차를 몰았다. 자신의 뿌리라고 여겨온 고향마저 사라진 지금, 그가 돌아갈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자신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곳, 즉 아내가 기다리는 집이었다.
스타인벡은 4개월여에 걸친 미국 일주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행을 정리해 『찰리와 함께한 여행(Travels with Charley)』을 출간했다. 책 제목에 찰리의 이름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찰리는 소중한 여행 파트너였다. 인간은 영원히 지구 위를 떠돌아다니며 사는 여행자이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처럼. 그러니 우리가 향할 곳은 과거 속의 고향이 아니다. 지금 두 발로 밟고 서 있는 ‘이곳’을 만끽해야 한다. 다만 스타인벡의 옆에 애견 찰리가 있었듯이, 인생이라는 고된 여행길을 함께 걸으며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