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

사막에서 깨달은 인간의 책임

사하라 사막과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1935년 12월 29일 앙투안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가 조종하는 비행기가 프랑스 파리를 이륙했다. 15만 프랑의 상금이 걸린 파리-사이공 간 장거리 비행 대회에 참여한 길이었다. 정비사인 프레보가 고독한 여정에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 2시 45분 비행기가 사막의 고원에 부딪혀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에게는 고작 5시간을 버틸 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책+여행 | 글+사진 이준명 작가 인용 『인간의 대지』(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사하라 사막에 추락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

대지에 묶인 인간의 숙명

생텍쥐페리는 작가로 유명하지만 본업은 비행기 조종사다. 1926년 라테코에르 항공에 입사해 우편물 수송기를 몰았다. 당시 비행기는 엔진이 불안정해서 툭하면 고장 나기 일쑤였다. 생텍쥐페리도 비행 중 여러 번 불시착을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사태가 심각했다. 수통이 터져 마실 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낙하산을 펼쳐 아침 이슬을 가솔린 탱크에 받았다. 녹황색을 띤 역겨운 물이었지만 갈증을 참을 수 없어 꿀꺽 들이켰다. 그러자 물에 녹아든 독성 때문에 구토와 경련이 밀려왔다.

생텍쥐페리는 평생 동안 비행기를 타고 대지 위를 날아다녔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 위에서 드넓은 대지를 내려다보길 좋아했다. 하지만 사막에 추락하고 보니 인간이란 대지에 매여 있는 존재였다. 하늘을 날며 자유를 만끽하다가도 언젠가는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사막의 배라고 불리는 낙타와 몰이꾼

사막으로 가는 머나먼 길

사하라 사막을 체험하러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갔다. 사실 거대한 사하라 사막의 서쪽 끝에 살짝 발만 담그는 셈이다. 밴을 타고 사막 초입에 있는 마을까지 가는 데만 한나절이 걸렸다. 해가 떨어질 무렵이 돼서야 사막 언저리에 도착했다. 숙영지까지는 낙타를 타고 가기로 했다. ‘사막 하면 낙타’라지만 흔들리는 낙타 위에서 균형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등이 꽤 높아서 까딱 잘못해 떨어지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안장을 꽉 붙잡고 흔들리는 사이 첩첩이 쌓인 모래언덕 너머로 해가 저물어간다. 능선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저녁노을에 모두 넋을 잃었다. 일렬로 늘어선 우리 일행은 어느새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이 되어 있었다. 햇살 반대편으로 다리가 길어진 그림자가 친구라도 되는 양 우리를 따라 걸었다.

어둠이 찾아올 무렵 숙영지에 도착했다. 낙타를 타고 오느라 말도 나누지 못한 일행들이 이제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모래바람을 맞은 얼굴들이 죄다 꾀죄죄하다. 사막의 바람은 스카프로 가려도 입안이 서걱거릴 정도로 모래가 많다. 사막에서 모래는 단팥빵의 팥소와 같은 존재다. 아무리 모래가 귀찮아도 깡그리 없애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다. 모래가 없으면 사막도 없으니까. 모닥불 주변에 모여 놀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별들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은하수가 그 사이를 흐르며 은빛 물방울을 사방에 퍼뜨렸다. 바람 소리에 섞여 간간이 낙타의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적막한 밤. 사막에 추락한 생텍쥐페리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황량한 길

서로 돕는 인간의 소중함

사막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사방이 온통 모래언덕이기 때문이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숙영지 뒤편의 모래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그나마 더위를 피해보겠다고 아침나절에 출발했는데도 햇살이 뜨겁다. 사방에서 모래 섞인 후끈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의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물을 마셔도 입안의 갈증만 해소될 뿐 걸쭉한 피가 혈관을 통과하지 못한 채 끈적댔다. 서둘러 언덕에서 내려와 텐트 속으로 몸을 피했다. 얼음을 가득 넣은 콜라 한 잔만 마실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생텍쥐페리는 덥다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물이 떨어질 때까지 도와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타들어가는 목을 붙잡고 사막 위를 걷고 또 걸었다. 탈진해서 사막 위에 푹 쓰러지길 여러 번. 열기가 피어오르는 사막 저 멀리 반짝이는 호수가 보였다. 신기루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갈증과 피로에 납덩이 같은 몸을 일으켜 또다시 걷는다. 이때처럼 사람이 그리운 적이 없었다.

“우리는 인간의 일을 하고 인간의 근심거리를 안은 채 살아간다. 우리는 바람, 별, 밤, 모래, 바다와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자연의 힘에 맞서 머리를 쓴다.… 사흘 전부터 나는 걸었고, 목이 말랐고, 모래 속에서 발자취를 좇았고, 이슬을 내 희망으로 삼았다.
나는 나와 동류인 인간을 만나려 무진 애를 섰다.
지상 어디에 살고 있는지 까맣게 잊은 채 지냈던 나와 동류인 인간을.”

생텍쥐페리는 사막에 추락하고 나서야 인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홀로된 인간은 잔인한 대지 앞에서 무기력한 희생양일 뿐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연대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야말로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공동체 전체의 손실이자 구성원 모두의 손실이다. 공동체로 묶인 우리는 모두 형제이기에 타인의 죽음은 내 가족의 죽음이나 다름없다.

옛 카라반처럼 일렬로 나아가는 낙타 행렬

고난에 끝까지 저항하라!

생텍쥐페리는 사막을 5일 동안이나 헤맸다.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사람이 나타났다. 사막을 횡단하던 베두인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생텍쥐페리를 발견한 것. 기적적으로 구조된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는 이집트 카이로로 옮겨졌다. 호텔에 도착한 생텍쥐페리는 아내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행방불명된 생텍쥐페리의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4년 후 생텍쥐페리는 추락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 『인간의 대지』를 출간했다.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은 서로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당신이 사막에 불시착한다면 절대로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는 당신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료들을 배신하는 것이며, 공동체에 손실을 입히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해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인간의 대지』 표지(Gallimard, 1972)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 생텍쥐페리
칡흑 같은 사막의 어둠을 밝히는 모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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