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우리가 힘겨운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자꾸만 미루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 현자들은 지금 자신이 집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항상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함으로써 이를 잊지 않습니다. 또 그들은 인생 전체를 좌우할 중요한 배움과 연습을 5년 계획을 세워 완성해갑니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인간관계를 과감히 정리할 줄 알고, 몰입과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을 거절할 줄 알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쉽게 만들 줄 압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바꿔놓을 통찰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목표에 이르는 가장 쉽고 간단한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교보문고 북소믈리에
기업문화 오디세이 | 글 신상원 기업문화 테라피스트, 『기업문화 오디세이』 저자, 신과기업SHIN&company 대표
마침 이 글을 쓰는 오늘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 그래서인지 떠오른 드라마가 하나 있었는데, ‘미생’이다. 그래, 오늘은 ‘미생의 날’이다. ‘우리 직장인’들을 웃고 울린 미생에서, 필자가 기억하는 명장면이 있다. 장그래 팀이 심혈을 기울여 제안한 요르단 프로젝트가 임원들과 사장단에 부딪혀 난관을 겪던 장면이다. 그때, 사장단과 임원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모두의 마음을 움직인 장그래의 한마디가 있었는데, 바로 ‘우리는 상사맨’이었다.
스탠퍼드 대학의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 교수의 의사결정 모델에 따르면,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두 가지 기본 모델을 사용한다고 한다.
첫 번째 모델은 ‘결과 계산에 따른 의사결정’ 모델인데, 여러 대안의 가치를 측정하여 그중 더 높은 가치를 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의사결정 모델인데,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회사가 돈을 많이 주고 복지 수준이 높을까? 어떤 후보자가 내 세금을 깎아줄까?’ 같은 질문들.
두 번째 모델은, ‘정체성에 따른 의사결정’ 모델이다. 인간은 또한 자신의 정체성에 기초해 결정을 내린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1) 나는 누구인가? 2) 이것은 어떤 상황인가? 그리고 1) 나 같은 사람은 2)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모델은 이해관계나 결과 분석보다는 기준과 원칙,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나를 어떻게 볼까?’에 기초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상에게 상담을 한다’고 할까? 자기 안에 이상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놓고 그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이 회사에 다니는 게 어울릴까? 어느 후보가 더 인간적으로 보이지?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옷을 입을까?’
소속집단의 문화가 의사를 결정한다
또 다른 실험이 기억난다. 안전교육 영화 홍보를 가장한 실험팀은 미국 한 지역의 소방관들에게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안전교육 영화를 보러 오시면 200달러 상당의 팝콘 기계를 드립니다.” 솔깃한 제안일 수밖에 없었는데, 예상외로 참가율이 바닥이었다. 어떤 소방관들은 화를 냈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왜? 이해를 위해 다른 제안은 어떤 것이었나 보자. “지역민들을 위한 안전교육 프로그램에 이 영화가 적합한지 소방관들께서 검토해주세요.” 대가도 전혀 없었는데, 이번에는 참가율이 높았다. 여기에 깔린 의사결정 모델이 바로 정체성, 즉 자아상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소방관’이, 화염을 뚫고 안전을 지키는 우리가, 그깟 사은품 때문에 움직일 사람으로 보이는가?”
이처럼 정체성에 기초한 의사결정은 소속 집단의 ‘문화’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 어느 지역 소방관 사회의 문화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에 따르면 정체성은 ‘호명’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즉, ‘소속한 집단이 나를 어떻게 불러주는가’에 따라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우리 곰 부족을 지키는 전사이다!’라고 호명을 받으면, 그는 곰 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전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디즈니가 직원들을 ‘배우(cast)’라고 호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자아상을 배우로 동일시하고 있다. 예컨대 청소하는 사람은 ‘청소하는 역할을 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배우’로서 일을 한다. 기능은 청소부이나, 정체성은 배우인 것이다. 구글의 ‘구글러(Googler)’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민주화하는 전사’들이고, 아모레퍼시픽의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Asian Beauty Creator)’들은 아시아의 미를 세계에 전파하는 전도사들이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대한의 하늘길을 대표하는 대사(ambassador)’의 정체성에 모욕을 주었기 때문에 조직 전체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로자의 날이다. 누구는 노동절이라고 한다. 맞다. ‘근로자’와 ‘노동자’는 다르다. 문화가 호명한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로자도, 노동자도, 미생도 ‘(다름 아닌) 한국남부발전의 당신’의 정체성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기업 부족의 인류학 탐험가’이자, ‘조직문화의 치유사’로서 필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여러분에게 답을 부탁하고 싶다.
“우리 한국남부발전‘맨’은 누구인가? ‘우리(!)’ 한국남부발전‘맨’이라면 난관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