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봄빛 속살 드러낸 남해 앵강만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이하 생략)’. 시인 윤동주는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파릇파릇 생기 넘치는 봄날, 남해로 달려가보자. 갓난아기 바라보듯 따사로운 봄볕 아래 남해의 자연은 배시시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중 넓은 바다를 품어 안은 앵강만은 보기도 좋고 걷기도 좋으니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그린 트래블 | 글 이은정 기자 사진 다랭이마을·용문사·남해바래길 제공

앵강만은 남해도 남쪽에 육지로 움푹 들어온 만이다. 항아리가 누운 것 같다고 사투리로 앵강으로 불렀다고도 하고 구슬픈 파도 소리가 꾀꼬리 우는 소리 같다고 앵강으로 불렀다는 얘기도 전한다. 이곳은 남해 상주면에서 남면까지 이어진 리아스식 해안이 바다를 끌어안은 형태라 바다 같지 않고 오히려 잔잔한 호수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앵강만은 우리나라 해안선 특징을 모두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남해의 특징인 몽돌해변에 동해의 자랑거리인 절벽이 있고 서해에 널리 분포한 갯벌까지 두루 품었기 때문이다. 금산과 호구산, 설흘산 등 앵강만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오르면 드넓게 펼친 푸른 바다와 그 속에 점점이 박힌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다채롭고 볼거리가 풍부하다.
물 좋고 산 좋으니 사람이 모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움푹 들어온 만을 따라 형성된 가천 다랭이마을부터 홍현 해라우지마을, 원천마을, 벽련마을, 두모마을 등 9개 마을이 모여 있다. 이들 마을의 공통점인 방풍림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육지의 3분의 2 이상이 산림이라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던 탓에 이곳 사람들은 바닷가에 논밭을 만들고 바다 앞에 나무를 심어 해일을 막았다. 소나무를 심고 그 주변에 활엽수를 더 심어 소나무가 막지 못하는 작은 바람까지 막아 마을과 농지를 보호했던 것. 그 방풍림이 이제는 좋은 여행지이자 휴식처로 제몫을 한다.
앵강만을 따라 걷기 좋은 남해바래길을 조성해놨으므로 따스한 봄날에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3월, 4월에는 두모유채꽃축제를 비롯해 다양한 축제가 열려 더 많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남해 최남단에 있어 한겨울에도 눈을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따듯한 곳이다. 그 덕분에 쑥과 시금치 등 봄나물이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민다. 다랭이마을의 볼거리는 단연 설흘산 기슭에 90도로 석축을 쌓아 만든, 108층이 넘는 계단식 다랭이논이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 한 배미(논을 세는 단위)가 모자라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작은 크기의 논부터 1,000㎡가 족히 넘는 큰 논들이 형성돼 있다. 지세를 그대로 살려 만든 만큼 곡선이 아름답고 무엇보다 산기슭에 논을 일군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랭이논은 아름다운 경관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에 이미 국가명승 제15호로 지정됐다. 그때부터 다랭이마을은 남해의 마추픽추로 불리며 다랭이논을 보려고 찾아드는 관광객들로 1년 내내 붐빈다. 남해의 귀중한 문화자산인 가천암수바위도 볼거리다. 남자 성기를 닮은 높이 5.8m, 둘레 1.5m의 거대한 수바위와 아이를 잉태한 배부른 여인 형상인 높이 3.9m, 둘레 2.5m의 암바위가 그 주인공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고 마을 안에 음식점이나 주점, 카페가 많아 여행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위치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남면로 679번길 21
홈페이지 http://darangyi.go2vil.org
문의 010-4590-4642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고승 열두 명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라 문무왕 3년에 원효대사가 보광산(금산)에 건립한 보광사가 전신이다. 현종 원년에 호구산으로 터를 옮기고 현종 7년에 대웅전을 건립해 용문사로 자리 잡았다. 호국사찰로 알려진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병활동의 근거지 역할을 하고 조선 숙종 때 수국사로 지정돼 보호받기도 했다. 현재 있는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재건한 것이다. 대웅전, 석불좌상, 명부전, 천왕각과 함께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유희경의 시집 『촌은집』을 간행하려고 만든 판목 ‘촌은집책판’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어 그만큼 볼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용문사 주위를 둘러싼 아름드리 소나무와 측백나무 등의 상록수림도 운치가 있다. 앵강만 바다를 바라보는 호구산 기슭에 자리해 있어 1시간가량 걸으면 정상에 도달한다. 다소 경사진 오솔길이지만 산책 삼아 걷기에 좋다. 북쪽과 남쪽에 각각 망운산과 금산을 마주 보는 호구산은 정상에서 북쪽으로 망운산을 넘어 하동 일대에 겹겹이 쌓인 산줄기와 광양 백운산, 멀리 지리산 줄기까지 볼 수 있어 또 다른 풍경을 선물한다.
용문사는 1996년부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시간을 내어 참여해도 좋겠다.

위치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홈페이지 http://www.yongmunsa.net
문의 055-862-4425

남해에는 ‘바래길’이라는 특별한 도보여행길이 있다. 바래는 물때에 맞춰 바닷가에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남해의 토속말. 가족과 생계를 위해 수없이 오갔을 바래길이 이제는 남해만의 아름다운 문화생태탐방로로 자리 잡았다.
앵강다숲길은 남해바래길 중 제2코스에 해당한다. 앵강만을 중심으로 남면, 이동면을 거쳐 9개 마을을 두루 거치는 코스로, 가천 다랭이마을 바다정자에서 출발해 홍현 해라우지마을, 두곡·월포해수욕장, 미국마을, 원천마을을 거쳐 벽련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원천에서 벽련마을까지는 미개통 상태라 원천마을까지 전체 길이 14.6km, 5시간 정도 걸린다.
이 길의 특징은 바다와 숲, 몽돌해변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다랭이마을에서 홍현 해라우지마을까지 이르는 3.5km 구간이 아름답다. 한쪽으로는 절벽 아래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다른 쪽으로는 숲 사이를 오르내리는 길이라 마치 해안 절벽을 낀 큰 산의 둘레길을 걷는 느낌이다. 두곡·월포 해수욕장은 그야말로 백사장 대부분이 몽돌이라 남해 해변의 특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따듯한 봄날에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혼자라도 쉬엄쉬엄 느리게 걸으면 절로 힐링이 될 듯하다.

위치 경남 남해군 이동면 성남로 99(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홈페이지 http://www.baraeroad.or.kr
문의 055-863-8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