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에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CEO’, ‘정보화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은 마크 저커버그.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이룰까 말까 한 일들을 서른세 살이란 젊은 나이에
모두 이루며 승승장구하는 그의 성공엔 무엇이 있을까. 답은 그가 만든 페이스북에 있다.
커리어 up | 글 박근희 조선일보 프라이데이 섹션 기자
2010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급히 열 살 딸에게 신장을 이식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 페이스북을 통해 뻗어 나간다. 페이스북 글을 본 세 아이의 엄마가 선뜻 신장 기부 의사를 밝히면서 수술이 순식간에 이뤄진다. 위급했던 순간 한 생명을 살린 글에 ‘좋아요’가 넘쳐난다.
2017년 여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미국 남부 텍사스주의 한 한국인 교포가 마을 사진과 함께 글을 띄운다. “어젯밤 허리케인 ‘하비’ 때문에 밤잠을 설쳤지만 저희 가족은 괜찮아요. 침수된 곳도 많던데 걱정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글이 올라오자마자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하비가 무사히 지나가길요’라는 댓글과 함께 ‘좋아요’가 빠르게 클릭된다.
사람들의 관계, 기업의 마케팅, 정치 등에 빼놓을 수 없는 소통 수단이 된 ‘좋아요’ 아이콘 하나로 세상을 바꾼 사람, 바로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마크 엘리엇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 ‘마크 저커버그’)다. 2004년 2월 4일 스물한 살인 그가 친구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스와 함께 설립한 더페이스북닷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세상의 중심에 마크 저커버그가 있다.
목적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위대한 무언가의 한 부분이며, 필요한 존재이고,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목적은 진정한 행복을 창조합니다.
‘사진 해킹 사건’으로 하버드대 유명 인사 등극한 ‘괴짜’ 혹은 ‘천재’
페이스북 탄생과 마크 저커버그의 성공기는 이를 실화로 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2010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속 마크 저커버그는 보스턴대학교 재학생인 여자 친구로부터 ‘재수 없는 인간’이란 말과 함께 결별 통보를 받는다. 이에 마크 저커버그는 상심해 기숙사로 돌아오고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하버드대학교의 예쁜 여학생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결별을 담담하게 알릴 수 있는 사이트 하나를 만든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 뜻밖의 위로와 격려, 응원 댓글이 달리며 접속자가 폭주하고 마크 저커버그는 이내 학교에서 유명 인사가 된다.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사이트는 하버드대 학생들의 지지에 힘입어 동부 지역의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그다음엔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다시 전 세계로 뻗어 나간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 영화에서처럼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그에 대한 화풀이로 자신이 다니는 하버드대학교 기숙사의 모든 여대생 사진을 해킹해 ‘페이스 매시’(Facemash, 한국판 ‘이상형 월드컵’)라는 사이트에 올려 학교 서버를 다운시킨 ‘경력’이 있다. 여기에 더해 학교 행정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며 주목받고 이 두 사건으로 마크 저커버그는 징계를 받았지만, 한편으론 마크 저커버그가 단순하면서도 강한 중독성을 가진 소프트웨어 개발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마크 저커버그는 이후 교내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던 윈클 형제의 제안으로 하버드 재학생들의 정보와 일상을 공유하는 ‘하버드 커넥션(Harvard Connection)’ 개발에 참여하고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친구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스와 함께 소셜 네크워크 사이트 ‘더페이스북닷컴’을 만들기에 이른다. 사실 페이스북이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페이스북은 전혀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는 아니었다. 이미 미국 안팎에선 ‘오르쿳’, ‘프렌드피드’, ‘마이스페이스’, ‘프렌스터’를 포함해 수많은 크고 작은 소셜 네트워크가 존재했고 그중 2001년 스탠퍼드 학생 오르쿳(Orkut)이 만든 ‘오르쿳’은 구글이 인수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런 치열한 경쟁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독창적인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결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시스템 체계를 구축하며 페이스북을 완성해나간 것.
위기는 정면 돌파, ‘해커톤’ 행사에서 이용자들과 직접 만나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도 온라인상에서 지구촌의 국경을 허물어 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많은 이용자가 몰려 생각지 못한 단점들이 불거졌다. 특히 이용자의 개인정보 유출은 ‘좋아요’ 대신 ‘나빠요’가 등장할 뻔한 페이스북 최대의 위기였다. 마크 저커버그는 단점이 발견되거나 이용 시 문제점이 예상될 때마다 단점을 줄이고 개선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6주에 한 번씩 하룻밤에 걸쳐 진행되는 ‘해커톤(Hackathon)’은 페이스북의 단점을 보완하고 페이스북을 혁신으로 이끈 대표적인 행사다. ‘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인 해커톤은 마라톤처럼 쉬지 않고 기획에서 프로그래밍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1999년 캐나다에서 컴퓨터 암호 개발 이벤트로 끝날 뻔한 이 해커톤 행사를 실리콘밸리는 물론이고 세계 각 기업, 정부에서 도입할 만큼 성공적인 경영법의 하나로 활성화한 건 페이스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이스북의 해커톤은 페이스북 직원뿐만 아니라 실제 이용자들과 협력하는 색다른 행사였다. 행사에 참가하는 이용자들은 하룻밤 동안 흥겨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하며 그 아이디어를 페이스북 직원들과 함께 구현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페이스북 직원은 물론, 마크 저커버그도 직접 이 행사에 참여해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페이스북을 대표하는 ‘좋아요(Like)’ 버튼과 타임라인 등의 아이디어도, 한국인 사용자들을 위한 음력생일 표시도 해커톤에서 발굴, 채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마크 저커버그는 끊임없이 이용자들과 협력해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소통하며 혁신을 거듭했다. 또한 그들과 함께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이용자들에게 페이스북의 단점쯤은 언제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닫힌 세상 열고 흩어진 세상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목표 향해 ‘직진’
마크 저커버그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열린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면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이른바 ‘사회적 유틸리티’를 이뤄내고 싶었던 것. 그래서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화위복의 반전으로 이끌어 배움의 기회로 삼았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페이스북 탄생의 전초가 된 ‘페이스매시’로 인해 학교에서 징계 조치를 받는 등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내는 대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더 나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썼다.
페이스북 창업 후 다니던 하버드대를 중퇴한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5월 모교에서 졸업식 축사를 해 화제가 됐다. 그는 13년 만에 모교로 귀환해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이날 졸업식 축사에서 “우리 세대의 과제는 모든 이가 목적을 갖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목적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위대한 무언가의 한 부분이며, 필요한 존재이고,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목적은 진정한 행복을 창조합니다.”
마크 저커버그의 명언을 통해 본 성공 전략’
“온 마음을 다해 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된 출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배움의 길이며, 진일보한 아이디어와 결과물을 창출해내는 반석이다.”
인텔의 소셜 미디어 전략가이자 소셜 마케팅 전문가인 예카테리나 월터는 마크 저커버그가 실제 삶에서 겪고 부딪히는 문제를 풀고 의문을 실행하는 저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분석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을 실천하고, 의문점을 풀어보려는 의지가 강하고, 일을 벌이면 끝을 보고야 마는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 저커버그의 열린 생각이 그 원동력이다.”
“주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허위의 비난에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나아가라.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말을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하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늘 “무엇인가를 개선하려면 틀을 깨뜨려라”라고 강조한다. 정답은 틀 아닌 틀 밖에 있다는 것. 그는 또한 일단 저지르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옳다고 생각하거나 믿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주문한다. 관계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이 사람이 아니다 싶을 때는 즉시 바꾸고, 비전과 문화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없다면 헤어지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완벽을 추구하는 것보다 실행해보는 것이 낫다.”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꿈을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소셜 네트워킹을 깊이 파고들어 고민했고, 얼개를 세웠으며 세부적인 서비스 기능들을 하나씩 완성해 붙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호스팅 비용을 지불했다. 그렇게 스스로 “실패해도 괜찮다”며 학교 과제를 하듯 고민하며 하나하나 완성해간 것이 오늘날의 ‘페이스북’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말한다. “가장 큰 위험은 어떠한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이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전략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