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인문학

음악을 듣는 식물

 

‘식물도 음악을 듣고 움직인다’고 말하면 모두 안 믿는 눈치다. 식물에게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면 병충해가 줄고 잘 자란다는 사실은 실험으로 증명되었고, 식물이 움직인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동물이 하는 일을 식물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인문학 | 글 이완주 농학박사 일러스트 이은주

“사람이 뭐에 미치면 돌아버리나 봐.”
내가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더 잘 큰다고 하자 동료들은 처음에는 귓등으로 듣더니 계속 말하자 “농담도 잘한다”며 웃었다. 그래도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자 “거짓말도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술 더 떠 “병도 덜 나고 해충도 덜 덤빈다”고 하자, “아까운 인물이 돌았군!”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돌아온 1988년, 2년 후 그곳의 교포 친구로부터 미국의 ‘식물음악’ 테이프를 선물 받았다. 한쪽 면에는 비빌디 사계가, 반대쪽에는 여러 가지 고전음악이 녹음되어 있었다. 그 테이프를 들려주었더니 작물이 잘 자랐다. 작곡가 연제문 선생에게 부탁해서 우리나라 동요풍의 음악을 만들었다. 식물을 위한 이 음악을 식물에게 들려주었더니 잘 자라고, 병해충도 줄어 농약을 최대 80%까지 줄였다. 이 결과를 발표한 1994년까지 무려 4년 동안 ‘음악의 효과’ 를 확인하는 반복 실험만 해왔을 뿐, 왜 음악이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원인을 알아보는 연구는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농업 부문의 박사 5백여 명이 포진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정평이 나 있는 농촌진흥청이니얼마나 많은 말이 오갔을까. 우리 연구실의 실원들도 다양한 전공과 학위를 가지고 있어 만만치는 않았다. 우리 청에서 유일한 약학 전공자 김 박사는 음악을 들려준 작물은 가바(GABA)와 루틴(Rutin) 성분이 안 들려준 것보다 적어도 2.4배 더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두 성분은 해충한테는 탈피를 못 하게 한다든지, 수명이 짧아지게 하는 등 치명적이지만, 인체에는 혈압을 낮춰주고, 혈관을 깨끗하게 해주는 생리활성물질이다.

그 당시, 우리 연구실의 연구원이었지만 지금은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작물생리학윤 박사는 보리에 병균을 접종하고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들려주지 않은 것보다 훨씬 병이덜 생긴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해충을 연구한 방 박사는 음악을 들려주면 해충이 알을 적게낳고 수명도 짧아지며 심지어 농사에서 가장골칫거리인 진딧물의 몸 빛깔이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식물도 음악을 듣는다

아직도 나는 처음 사람을 만나는 자리나, 강의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사기꾼입니다”라고 말문을 연다. 이 말에 언제나 방 박사는 화를 낸다. 그녀의 주장은 이렇다. “실장님은 우리가 밤새워 연구한 결과물을 사기꾼이 한 것이라 치부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미국에서 개발해 세계 32개국에서 쓰고 있다는 식물음악 ‘소닉 블룸(Sonic bloom)’도 관련 논문을 한 편도 발표한 바가없다. 다만 식물이 잘 크고, 그 효과가 유전자에 전해진다는 말만할 뿐이었다. 그러니 식물음악에 관한 논문은 모두 한국, 특히 우리잠사곤충연소(현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물생부)에서 최초로 발표한것이다. 그러니 우리 연구원들의 자부심과 실력을 실장인 내가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다만 그렇게 서두를 꺼내놓으면 듣는 사람들이웃으면서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음악을 듣다니요? 귀가 있나요?” 정말 난감한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묻고 대답한다. “식물의 귀를 보신 분이 있나요? 수십 년간식물을 연구한 저도 못 보았거든요.” 이럴 때 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반야심경』의 명구에 의지한다. 이는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뜻이다.

허공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무수한 물질이 존재하며, 물질로 보이지만 그곳에는 엄청난 공간이 있다.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 사이의 공간이 오히려 물질보다 더 넓다. 식물에게는 귀다운 귀가 없는 대신,온몸이 귀 역할을 한다. 재밌는 예를 하나 들어볼까. 사실 물질이라는 것은 우리 눈에 돌이나 인간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허공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모든 물체는 세포로 이뤄져 있다. 세포안에는 원자가 있고 원자 안에는 전자와 그 중심에 핵이 있다.원자의 크기는 대략 1천만분의 1mm, 예를 들어 머리카락 두께의  1백만분의 1, 핵은 원자 크기의 10만분의 1이다. 즉 원자가 올림픽경기장 크기만 하다면 핵은 그 경기장 안에 있는 동전 크기. 원자는대부분 전자가 움직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 수 있을까? 『반야심경』을 말할 때마다 새삼 불교에 찬탄하곤 하는데, 어찌2천 년 전에 명상으로 이런 사실을 알았을까!

고등학교 어떤 선생의 말씀이 기억난다. 유카와 히데키라는 일본 사람이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그는 늘 주머니에 불교 경전을 넣고 다닌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중간자의 존재를 예견했고 마침내 중성자를 발견하는 데 공헌했다.

따라서 귀가 없는 식물은 온몸이 귀 역할을 한다. 식물세포에는 동물세포에 없는 세포벽이있다. 동물이 등뼈로 몸을 지탱하는 것처럼 식물을 지탱하는 기관이 세포벽이다. 온몸이세포벽인 식물체는 딱딱해서 음악의 음파에의해 진동하고 이 물리적인 자극은 바로 안쪽에 있는 세포막에 전달되고, 세포막의 진동은세포질을 자극해서 전기적이고 화학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이런 사실은 음악을 들려주면서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보면 볼 수 있다.이런 결과는 대부분 우리 실원들이 알아낸 일이다. 내가 할 일은 도대체 식물이 갖는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사기꾼, 미친 사람’을 면하려면 이런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식물도 움직일 수 있다

움직일 수 있다고 ‘동물’이라고 했지만 식물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책을 뒤져보고 공부를 해보니 알 수 있었다. 18세기 초, 생물분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칼 폰 린네(Linne)는 “식물은 동물이나 인간과 달리 조직이나 기관이 움직이거나 활동할 수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1백여 년이 흐른 19세기 초에 들어서자, 진화론자이자 식물학자인 찰스 다윈(C. Darwin)은 “식물도 움직인다”며 덩굴손이 독립적인 운동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저서 『식물의 운동력(Power of movement in plants)』에서 “어떤 식물이든 주의 깊게 관찰하면 자라는 동안에는 움직이는 것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는데, 이런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후 많은 사람이 ‘동물이 할 수 있는 일은 식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개망초는 아침저녁으로 꽃잎을 여닫고, 매자나무나 수레국화의 수술은 벌의 날개바람을 느끼면 즉시 꽃가루가 터져 나오는데 0.045초밖에 안 걸린다. 자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람도 서슴지 않는 크로커스 암꽃, 태풍과 선풍기 바람을 기억해서 반응하는 미모사 등도 그런 예다. 이런 특성들을 알자 나는 어느새 식물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의 첫 생명체인 식물은25억 년 전에 지구에 출현했고, 6천만 년에 걸쳐 진화를 거듭하여 유인원이 나타났으며, 그 몇 종 중 200만 년 전 직립원인 호모에렉투스가 서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 나타났다. 그러니 식물은 진화에 관한 한 지구에서 인간의 대선배 격이다.

우리 아파트 베란다 화단에 지난 몇 년 동안 자라고 있는 서향(瑞香)은 12월 하순부터 꽃망울을 살찌우더니 예년처럼 2월 초순에 은은한 봄 향기를 내뿜는다. 그러고 나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몇 달 전부터 꽃대를 키운보세난이 설날을 전후로 꽃망울을 터뜨린다. 가을에는 꽃밭에서 추석을 알리는 꽃무릇이붉디붉은 꽃을 피운다. 겨우 서너 평 남짓한 꽃밭은 해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는 소식을 말해준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글 어딘가에 이렇게 봄을서술했다.

“제가 있는 산속에는 봄이 늦게 찾아옵니다. 도시에는 벚꽃이 눈발처럼 진 지 오래인데 산에는 이제 산벚꽃 피어 화사한 꽃그늘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있는 산은 일 년 중 요즘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산벚꽃 필 때쯤이면 나무란 나무가 다 연둣빛과 연초록의 잎을 내어 연두색 어린잎들과 연분홍 산벚꽃이 뭉게뭉게 모여 이루는 풍경은 아름다운 한 장의 채색화아닌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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