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

한 여인을 사랑한 두 남자의 사랑

프랑스 파리와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

여기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애원하고 있다. 제발 내 손을 잡고 교수대에서 탈출하라고. 남자의 이름은 클로드.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가 쓴 『파리의 노트르담』의 등장인물이다.
하지만 클로드의 행위는 세상에 드러나선 안 되는 금지된 사랑이다. 그가 금욕을 서약한 성직자이기 때문이다.
책+여행 | 글+사진 이준명 인용 『파리의 노트르담』 민음사, 2005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성당

낭만의 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대부분 하늘 높이 솟은 에펠탑을 꼽을 테다. 하지만 1889년에 세워진 에펠탑은 파리를 대표하기에 좀 부족하다. 파리가 지닌 유구한 역사를 드러내기엔 너무 어리다 할까? 그래서 에펠탑보다는 1163년에 건축이 시작된 ‘노트르담 성당’을 꼽는 이도 많다. 성당이 자리한 시테섬이 파리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에는 가톨릭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에펠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노트르담 성당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한다. 성당 앞에 서면 높이 69미터인 종탑의 당당한 모습에 압도당한다. 실제로 종탑은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까지 파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전망대였다. 솔직히 철골로 세워진 에펠탑은 파리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다. 모파상과 같은 예술가들은 파리의 경치를 해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노트르담 성당은 다른 건물들과 위화감 없이 녹아든다. 센강과 어우러진 성당 뒤편의 자태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느낌마저 준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형형색색의 빛이 방문자를 반긴다. 꽃잎 모양의 격자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워 넣은 ‘장미창’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북쪽의 장미창이 의미 깊다. 노트르담이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북쪽 장미창은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예언자와 성인들이 둘러싼 모습이다. 성당이 품은 뜻을 예술로 표현한 작품이랄까.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노트르담 성당은 형벌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성역(聖域)으로 묘사된다. 일단 성당 안으로 들어오면 죄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 세속의 법률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성모 마리아의 품이기 때문이리라.

두 남자의 상반된 사랑

『파리의 노트르담』의 메인 테마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두 남자의 사랑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인 클로드는 성직자임에도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에 매혹됐다. 욕망에 사로잡힌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고 시도하지만 야경대장 페뷔스가 끼어드는 바람에 실패했다. 에스메랄다가 자신을 구해준 페뷔스에게 연정을 느끼는 결과만 초래한 채. 질투에 눈이 먼 클로드는 페뷔스에게 상해를 입힌 뒤 죄를 에스메랄다에게 뒤집어씌웠다. 누명을 쓴 에스메랄다는 재판에서 마녀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빠진다.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또 한 사람은 성당의 종지기인 카지모도이다.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카지모도에게 자신을 키워준 클로드 신부는 주인이나 다름없다. 카지모도는 신부의 지시에 따라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다 야경대에게 붙잡혔다. 형틀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던 중 군중을 향해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아무도 추악하게 생긴 카지모도를 동정하지 않고 비웃기만 했다. 그때 에스메랄다가 나타나 카지모도에게 물을 먹여주었다. 카지모도는 고통받는 이를 동정할 줄 아는 에스메랄다의 심성에 감복하여 사랑에 빠진다.
사실 클로드와 카지모도 둘 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클로드는 세속적인 사랑이 금지된 성직자이다. 그래서 떳떳이 나서지 못하고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에스메랄다를 손에 넣으려 한다. 클로드는 교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에스메랄다에게 목숨을 구해주는 대신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너는 죽든지 아니면 내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신부의 것이 되어야 해! …… 무덤이냐 아니면 내 잠자리냐!”라며.
카지모도의 경우에는 추악한 외모가 걸림돌이다. 곱사등이에 외눈박이인 그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일으키는 악마 같은 존재다. 그래서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에스메랄다의 짝이 되기에는 너무 모자라다고 생각하기에, 오직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만 궁리한다. 심지어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외모에 혐오감을 느낄까 봐 그녀 앞에 나타나는 것조차 꺼린다.
클로드의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일방통행이다. 자신이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만큼 보상받기를 원한다. 그로 인해 클로드의 사랑은 집착으로 점철된 소유욕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카지모도는 항상 상대방의 마음을 살핀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그의 사랑은 배려심 가득한 헌신이다. 존경받는 성직자인 클로드가 끝내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반면에, 무식한 종지기인 카지모도는 평생 멸시를 받으며 자랐음에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위고가 사랑한 노트르담 성당

위고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낭만주의 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1830년경 고슬랭 출판사와 맺은 계약 때문에 난처한 지경에 처했다. 작품을 기한까지 넘기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었던 것. 기한은 다가오는데 작품에 진전이 없자 위고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자루처럼 생긴 커다란 모직 옷을 뒤집어쓰고는 목에서 발끝까지 꿰매버렸다. 놀러 나가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을 자루 안에 유폐해버린 셈이었다. 그렇게 약 6개월의 시간이 흐른 1831년 1월 위고는 기한에 맞추어 『파리의 노트르담』의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
『파리의 노트르담』은 약 9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소설이다. 이런 작품을 6개월 만에 쓰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시간에 쫓겨 날림으로 쓴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위고는 소설을 쓰기 위해 3년여에 걸쳐 자료를 모아두고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은 15세기 파리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소설의 성격이 짙다. 책을 읽다 보면 위고가 얼마나 자료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감탄할 정도다. 예를 들어 위고는 소설의 한 꼭지를 할애하여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외관을 자세하게 기술했다. 그리고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성당을 훼손한 인간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갑자기 소설의 흐름을 뚝 끊고 인문학적 지식을 늘어놓는 것은 위고 문학의 특징이다. 또 그가 단순한 러브 스토리를 쓰려고 펜을 든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위고의 이와 같은 노력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노트르담 성당을 복원하기 위한 기금이 모금됐다. 그리고 1845년부터 대대적인 성당 복원에 들어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노트르담 성당은 사건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클로드 신부와 카지모도의 거처이면서, 가엾은 처녀 에스메랄다의 피난처로 그려진다. 이 외에도 등장인물과 관련된 모든 사건이 성당과 그 주변에서 펼쳐진다. 성당을 빼놓고는 이 소설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나 할까. 그래서 프랑스의 문학사가 랑송은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더 생생한 것은 그 그림자가 도시를 덮고 있는 성당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이 소설 속에서 진정한 넋을 가진 유일한 개인이다”라고 평했다.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이 노트르담 성당을 방문한다. 그리고 광장에 서서 햇살 아래 빛나는 종탑을 올려다본다. 저 위 어딘가에 카지모도가 보이지는 않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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