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충전
2017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돌아보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0월 21일 폐막식을 끝으로 열흘간의 축제를 마쳤다. 총관객 19만 2,991명을 동원하며 지난해보다 무려 17%나 증가한 관객수를 자랑한 22회 부산국제영화제. 76개국에서 온 300편의 영화가 상영됐는데 그중 단연 돋보였던 화제작들을 소개한다.
문화 충전 | 글 손지혜 기자
<유리정원>
해마다 영화제의 개막작은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개막작에 관심이 집중됐다. 배우 문근영이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온 <유리정원>은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이야기와 주제, 은유, 색다른 미장센으로 영화제가 끝난 후에도 회자되고 있다.
엽록체를 이용해 인공 혈액을 연구하던 과학도 재연이 후배에게 연구 아이템을 도둑맞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긴 후 어릴 적 자신이 자랐던 숲속의 유리정원 안에 스스로를 고립한다. 첫 소설의 실패로 슬럼프에 빠져 있던 무명 작가 지훈이 우연히 재연의 생활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훔쳐보며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을 소재로 쓴 소설을 연재해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 어느 날 충격적인 미제 사건의 범인으로 재연이 지목되고 이 사건의 흐름이 지훈의 소설 속 이야기와 같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친 것도 아닌데 의지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삶이 짓밟히고 내동댕이쳐지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투명하고 순수한 배경 덕분에 더 아프게 다가온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파격적인 제목과 달리 따듯한 이야기로 일본 열도에 신드롬을 몰고 온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영화제 관객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을 타고 야외상영 및 영화 출연진의 내한 행사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의 닻을 올렸다.
이야기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쿠라가 우연히 은둔형 외톨이 남학생인 ‘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키면서부터 시작된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기에 슬픈 이야기도 무덤덤하게 들어줄 수 있는 ‘나’에게 사쿠라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점점 둘 사이에는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추억들이 쌓여간다. 성인이 된 후 남아 있는 마지막 추억의 보물을 찾으며 새롭게 나타나는 이야기들은 보는 이들에게 삶의 아름다움과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치를 되새겨준다.
<마더!>
교외의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중년 시인과 젊은 아내. 어느 날 이 저택에 낯선 부부가 찾아오고, 시인 부부는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낯선 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아내는 낯선 이들의 방문이 불편하기만 하고, 마침 낯선 부부의 짐에서 남편의 사진을 발견하는데 오히려 이들을 환대하는 남편의 모습이 의심스럽다. 이어 남편은 일생일대의 시를 발표하여 큰 명예와 인기를 얻게 되고 그와 동시에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팬이 계속해서 집을 찾아온다. 점점 더 공격적이고 무례한 행동들을 보이는 이들 때문에 아내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데… 영화 <마더!>는 줄거리만 보면 행복했던 부부가 낯선 이들과 만나며 겪게 되는 혼란과 사건 사고를 다루는 듯하지만 사실 두 남녀와 집, 이방인이라는 요소를 통해 신과 자연, 남과 여, 선악과 등 굉장한 종교적 혹은 역사적 전개를 선보이는 작품이다.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숱한 관심과 흥미, 질문을 자아낸 <마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세 번째 살인>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된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세 번째 살인>. 티켓 예매가 시작됨과 동시에 온라인 발매분 좌석이 전석 매진되며 최고의 화제작임을 입증했다.
9월에 열린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어 “현대 일본 사회 가족에 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주 새롭고 흥미로운 시선 _CINEVUE”, “놀랍고도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흠잡을 데 없는 촬영 _SCREEN DAILY” 등의 극찬을 받은 <세 번째 살인>은, 승리밖에 모르는 변호사 ‘시게모리’가 자신을 해고한 공장 사장을 살해하여 사형이 확실시되고 있는 ‘미스미’의 변호를 맡아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를 그린 법정 드라마로, 살인 사건이라는 강렬한 소재를 통해 ‘진실’에 대한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다마을 다이어리> 등 가족애를 잔잔하게 그린 작품을 내놓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서스펜스와 수수께끼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