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인문학
공원 산책으로 쌓은 내공
누구나 지친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 개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또 다른 모퉁이가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서 나만의 에너지 충전법 같은 것 말이다. 여행, 수다, 음식, 친구 등 여러 가지 방법 중 나는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면서 나를
텅 비우고 다시 채우는 방법을 찾아냈다.
에너지 인문학 | 글 이종은 동화 작가 그림 이은주
내 20대를 생각해보면 나아갈 길을 몰라서 엄청나게 헤매는 청맹과니 같았다. 뭔가 간절하게 찾으려고 기를 쓰며 살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는 더 모른 채 아주 긴 세월을 헤매고 다녔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자아를 평화롭고 우아하게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항상 초라했고 극심한 갈증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간절하게 알고 싶었던 만큼 도전한 일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지점토, 공예, 서예, 피아노, 요리, 꽃꽂이……. 심지어는 웨딩드레스 디자인 학원까지 기웃거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것 한 가지도 끝까지 가질 못했다. 대부분 중간에 그만두거나 끝까지 했어도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였을 뿐이다. 무엇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직업을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풍족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일이 필요했다.
뭔가를 포기할 때마다 나는 깊은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다. 내 자신으로부터 탈출해보고 싶은 욕구와 뭐가 되도 좋으니 지금의 나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절박함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아주 추운 겨울 날, 나는 뭔가를 찾아 헤매는 짓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작정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속초였고 택시를 대절해서 텅 빈 한계령을 종일 돌아다녔다. 택시를 운전한 청년은 헤어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저녁을 사도 될까요?”
그날 청년은 하루치의 수고비로 받은 돈을 음식 값으로 지불했다. 청년은 내가 자살이라도 하려고 설악을 찾아온 줄 알았던가 보다.
“살아보세요. 자살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젊은 나이에 일찍 선택해버리면 아깝잖아요.”
뭐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니라고, 절대 자살 따위는 생각도 안 한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년과 말을 주고받는 동안 나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내 삶이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기회를 머잖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그 느낌은 이튿날에도 경험했다. 혼자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권금성 부근의 작은 카페에서 언 몸을 녹이고 있을 때 아가씨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빈 테이블도 많은데 왜 그러지, 의아해하면서도 승낙했다. 아가씨는 마치 남의 말을 하듯 말했다.
“약혼자한테 차였어요. 서울에 죽치고 있으면 내가 뭔 짓을 할지 몰라 무서워서 여행 왔어요.”
아가씨와 나는 몇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아가씨가 이런 말을 했다.
“딱 일 년 후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까요? 그럼 우리 둘 다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 아가씨도 혼자 여행길에 오른 내가 자신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말하는 아가씨를 보면서 나는 전날 청년에게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모퉁이에 서 있고, 이 모퉁이만 돌면 찾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택시를 운전하는 청년을 우연히 만났듯, 약혼자한테 버림을 받고 설악을 찾은 아가씨를 우연히 만났듯, 내가 찾고자 하는 그 무언가도 분명히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나는 그 여행지에서 뜻하지 않은 에너지를 듬뿍 받은 채 돌아온 셈이었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훗날 나는 내가 찾아 헤매던 그 무언가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텅 비우고 나면 얼마든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된다. 안 풀리던 글도 술술 써지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새로이 떠오르기도 한다. 마치 낡고 싫증 난 헌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 산뜻한 기분이 된다.
또 다른 길 찾기의 시작
혼자 여행하며 방황하는 것도 지쳐갈 무렵 나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규 방송 종료 직전의 텔레비전을 넋 놓고 바라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글을 발견했다. 방송 작가 연수생 모집 광고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일까지 마감이었다. 무슨 신명이었을까, 그날 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냈다. 그날 밤의 일을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무당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듯 정신없이 글이 써졌어.”
그랬다. 자정이 다 되어 쓰기 시작한 80매의 원고는 아침 무렵에 완성되었다. 밤을 새우며 쓴 원고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던 순간의 기억은 지금껏 새롭다. 청맹과니의 눈이 이제야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으니까. 내가 긴 세월을 찾아 헤맨 그 무언가를 비로소 찾은 듯만 싶어 터져 나오는 탄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나는 항상 원고지를 가까이에 두고 살았다는 점이다. 늘 두툼한 원고지가 책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도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도 글쓰기는 나와 전혀 관계없는 특별한 영역으로 생각해서가 아니었을까. 아주 가까이 있는 원고지를 돌고 돌아 먼 길을 걸어와 비로소 찾아냈던 것이다. 방송국에 보낸 원고를 시작으로 글 쓰며 사는 삶이 시작되었고, 등단에 성공하면 내 방황은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찾아 헤매느라 정신없었던 20대 시절의 방황처럼 30대 시절의 방황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까스로 작가가 되었지만 희망처럼 내 삶이 풍족해지거나 아름다워진 것도 아니었고, 내 자아가 평화롭거나 우아해지지도 않았다. 또 다른 길 찾기가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아주 오래전 내 스승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설로 등단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지? 하지만 등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기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란다.”
그 말씀이 옳았다. 지면에 글을 발표한다는 것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부담감이란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세월보다 훨씬 더 냉혹했다. 글이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써지질 않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좌불안석일 때마다 나는 혼자 생각하고는 했다. ‘아, 이렇게 미쳐가는구나.’
마음을 텅 비우고 가다듬는 마음
모퉁이 하나만 돌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길이 보일 거라고 믿던 자기최면도, “뭘 그렇게 조바심을 내? 쉬엄쉬엄 해” 하는 주변의 위로도, 진탕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다가 깨어나면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도 소용없을 지경에 이르면 나를 더는 그 공간에 놔둘 수가 없게 된다. 어디론가 도피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피난처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여행길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가방 하나 둘러메고 훌쩍 길을 나설 만큼 젊은 나이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공원 산책이었다. 햇살 가득한 공원으로 나서면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절로 심호흡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런 자유스러움보다 나를 더 설레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제도 보고 어제도 보았지만 오늘은 더 색다르게 보이는 공원 풍경이다.
엊그제도 도무지 글이 써지질 않았다. 그날 나를 힘겹게 한 것은 바닥난 열정이 아니라 과연 내가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상념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공원으로 나갔다. 몇 년 동안 수없이 오고 간 길이지만 비 오는 날 공원 산책은 전에 없던 일이라 살짝 들뜨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참 공원을 걷다 물 고인 웅덩이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주 반가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맹꽁맹꽁~”
비단결 부딪히듯 낭랑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벗처럼 반갑기만 했다. 흙탕물 속에서 울고 있으니 어디쯤에 있을지 알 길이 없었지만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맹꽁이를 찾았다. 그랬더니 지나가던 남학생 여러 명이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 같이 맹꽁이를 찾기 시작했다.
“어어, 저기 있다. 돌 바로 옆에 조금씩 움직이잖아.”
한 아이가 소리쳤고 우리는 큰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서로 바라보며 좋아했다. 받쳐 든 우산으로 후드득 빗소리 요란하고, 웅덩이에서는 맹꽁이가 신명 나게 울고, 신록 우거진 공원에는 인기척이 드물고, 어느새 내 마음 안의 복잡한 상념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고독한 몽상에 빠진 내가 거기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텅 비우고 나면 얼마든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된다. 안 풀리던 글도 술술 써지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새로이 떠오르기도 한다. 마치 낡고 싫증 난 헌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 산뜻한 기분이 된다.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불안한 방황의 길을 서성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열정이 바닥나면 재충전할 수 있는 공원이 바로 곁에 있고,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와 술 한잔 기분 좋게 기울일 수 있는 벗들이 있고, 읽고 싶은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또 있다. 예전처럼 누구에겐가 보여주기 위해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계속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내 삶이 여유롭거나 풍족하지 않아도, 좋은 작품이라는 평을 못 듣더라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두 고독한 몽상가가 되어 공원을 산책하며 얻은 내공 덕분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