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교육방송에서도 마이클 샌델의 강의 영상 전체를 방영할 정도였다. 유명한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라는 이유로 입소문을 탄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정의롭다고 할 수 없는 현 한국 사회에서 ‘정의’가 주목을 받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인문학 책으로는 드물게 밀리언셀러에 육박한 판매고를 기록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를 접해보고 싶었다. KOSPO Writer | 글 김현종 하동발전본부 2발전소 계측제어부
‘정의’라는 말은 흔히 쓰인다. 심지어 군사독재 정권을 이은 전두환 전 대통령도 정의사회 구현을 제창해 경찰서, 파출소에도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의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저마다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등 수많은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대에서 정의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도덕적 딜레마와 사례를 들어 정의를 말하며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지를 서술했다. 하지만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는 책이 아니다.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1953년 미네소타에서 태어났고,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 책에서 ‘공동체주의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해, 공동체주의의 4대 이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부터 30여 년간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그의 강의는 현재까지 하버드대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설득력이 있는 부분과 납득되지 않는 부분을 구분할 것이다. 이 책에는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칸트의 자유정의론, 롤스의 평등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론 순으로 이론을 요약, 비판한 내용이 나온다. 이를 요약하고 궁극적으로 마이클 샌델이 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비판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리주의: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정의는 쾌락과 행복의 극대화, 고통의 최소화이다. 벤담이 생각하는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의 극대화이다. 이런 공리주의의 가장 큰 한계는 사회에만 관심을 가져서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모든 행복을 계량하고 통합하고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밀은 위 문제 제기에 반론하며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자유 옹호’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인간의 행복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밀의 주장은 사회 발전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존중한다면, 장기적 행복을 얻으려는 사회 발전의 원리상 개인의 권리는 실제로 필요치 않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밀은 쾌락에도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며 공리주의도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분하여 질적 측면을 계량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밀의 주장은 쾌락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질적 측면의 구분을 주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철학보다 오락을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쾌락의 즐거움과 고급스러움에 대한 판단은 별개임을 알 수 있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과 미덕, 선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과 미덕은 모두 다를 수 있으므로 까다로운 문제이다.
자유지상주의:
자유지상주의에서 말하는 정의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에 따르면 시장경제에서 얻은 부로 인한 불평등은 전혀 부당하지 않으므로 침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가는 계약을 집행하고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며 평화를 유지하는 일만 하는 최소국가를 지향한다. 즉, 최초의 자원이 합법적이고 자유로운 교환이나 선물로 얻은 것이라면 개인의 소유이므로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 시장에서 사람들의 선택은 무조건 자유롭지만은 않다. 책에서 예로 든 자원군은 대학등록금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나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불공평, 강제와 관련이 있다. 자유주의는 구체적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가려내기 전에 사람들의 욕구와 기호를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향과 욕구에 의문을 품지 못하게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도덕적 가치, 삶의 의미는 모두 ‘정의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이 부분이 오류로 보인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물론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대리출산, 동성혼 등 다양한 문제에서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이 대립하는 ‘정의’는 올바른 분배 문제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다.
칸트의 자유정의론:
칸트가 말하는 정의는 순수 실천이성을 연습하여 도덕의 최고 원칙에 도달하는 것이다. 칸트의 논리는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이성’이 우리의 의지를 통제할 때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에게 도덕적 가치란 결과가 아닌 동기와 관련된 것으로, 숨은 동기가 아닌 ‘의무동기’만이 행동에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칸트는 정의와 도덕을 자유와 관련 지어 이해했는데, 그에게 자유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며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칸트의 이러한 논리는 너무 이상적이다. 구체적이지 않아 칸트의 정의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칸트는 어느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예를 볼 때 칸트의 정의는 실생활에 적용되지 못할 것이다.
롤스의 평등이론:
존 롤스가 말하는 정의는 ‘무지의 장막’에서의 결정이다. 원초적으로 평등한, 즉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라면 공정하다는 말이다. 도덕적 임의성을 배제한 것이다. 롤스에 따르면 조던이 농구에 재능을 타고났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 열매를 독차지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재능과 노력하려는 의지조차도 결국 혜택 받은 환경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의 대가마저도 도덕적 자격을 주장할 수 없다는 롤스의 주장은 미심쩍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의’는 능력과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그의 분배원칙은 목적론적이다. 그가 말하는 도덕적 삶도 행복을 목표로 하지만 그 행복은 공리주의의 쾌락과 다르다. 그의 행복은 고상한 것에서 쾌락을, 천박한 것에서 고통을 느끼는 ‘미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가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안겨줄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덕적 판단과 견해의 고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고, 그 자격은 어떤 미덕과 영광에 포상할 것인가에 따른 것이다. 고대는 미덕에서, 근대는 자유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자유’에 동의하면서도 정의 문제에서는 심판이라는 끈을 놓지 못한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과 미덕, 선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과 미덕은 모두 다를 수 있으므로 까다로운 문제이다. 이것은 근현대 정치철학이 풀어야 하는 숙제이다. 칸트와 롤스는 그런 삶의 시각 차이 속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정의와 권리의 기본’을 찾으려 시도한 것이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부와 권리와 의무, 권력, 기회, 영광을 어떻게 분배하며 그것을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문제이다. 이 분배의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은 행복, 자유, 미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판단과 원칙, 행동과 이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자신의 도덕적 판단과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생각, 개인 권리에 대한 가치관이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 깊게 뿌리내린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정의와 공동선에 대해 바른 이성을 사용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여 바른 이상을 찾고, 함께 추구할 목적성을 탐구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예화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를 비판할 때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칸트와 롤스를 이야기할 때는 무언가 그럴듯한 정의사회의 청사진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결국 결론에 이르러서는 그저 “함께 잘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로 끝나버렸다. 모든 구성원에게 분배할 의무와 권리를 적합한 이상에 맞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는 항상 ‘누가?’라는 불안한 의문을 남긴다. 즉, 저자의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다. 우리는 정의가 실현될 수밖에 없는 안전한 ‘시스템’을 원한다. 그러나 저자는 어떤 방안도 제시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